나를 위해 먹는 거룩한 행위

by 김형준

2022. 07. 26. 07:43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푸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퇴근 후 삼겹살에 소주 한 잔으로 푸는 사람. 남편과 아이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늦은 밤 치킨과 맥주로 푸는 사람. 인생이 걸린 시험을 준비하면서 받는 부담을 달달한 음식으로 위로를 받는 사람. 이럴 때 먹는 음식은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고칼로리, 폭식, 불규칙한 시간 등으로 인해 건강을 위협받습니다. 과거에 비해 먹을 게 풍성해진 요즘입니다. 건강과는 거리가 먼 자극적인 음식이 많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먹을 게 부족해서 건강을 잃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택이 다양해진 만큼 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똑똑한 식습관이 필요해 보입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하루 세 끼는 다 챙겨 먹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팍팍한 일상을 살아내셨지만 세 아들은 한 끼라도 굶기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그때는 그게 고마운 건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철이 늦게 들어서 한참 때는 반찬 투정도 서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밥상에 불만이 있으면 먹지 않겠다고 투쟁도 했습니다. 철딱서니 없었습니다. 어머니도 호락호락 받아주는 분은 아니었습니다. 안 먹겠다고 하면 가차 없이 밥그릇을 치웠습니다. "네 배가 고파봐야 밥의 소중함을 알지."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뱉어놓은 말은 있으니 다시 밥상에 앉기 주저했습니다. 이미 뱃속에서는 아우성입니다. 그렇다고 사춘기 자존심을 굽힐 수는 없었습니다. 한 끼는 버텨보기로 합니다. 수저와 밥그릇이 치워지는 걸 지켜보며 어금니를 깨물어 봅니다. 기어이 버텨내겠다며 의지를 다집니다. 속으로는 '나는 주워 온 자식이 분명해'라며 어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버텨봅니다. 내 밥까지 먹어치우는 형들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합니다. 감각을 잃은 배를 부여잡고 잠을 잡니다. 반찬 투정이 투쟁이 되면 결국 배만 고픕니다. 아까운 한 끼를 날렸습니다.


다음 날 일어나면서부터 태도를 달리합니다. 무뚝뚝함은 잃지 않습니다. 마지막 남은 사춘기 자존심입니다. 어머니는 이런 내 머리 위에 있습니다. 무심한 듯 지난 저녁에 없던 반찬과 내 밥그릇까지 밥상 위에 올려놓습니다. "먹어라." 말이 떨어지길 기다렸다는 듯 밥상에 착 붙어서 수저를 듭니다. 지난밤의 체면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지쳐 잠들었던 뱃속의 아이들에게 허겁지겁 음식을 공급해줍니다.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객기를 부렸던 제정신도 되돌아옵니다. 하룻밤의 투쟁은 그렇게 끝이 납니다.


독립을 하기 전 까지는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었습니다. 독립을 하고부터 남이 차려주는 밥을 먹었습니다. 장사를 하는 이들도 정성껏 차려 냅니다. 다만, 사회생활이 그렇듯 불규칙하고 잦은 술자리, 폭식으로 인해 음식이 건강을 위협하게 된 것 같습니다. 돈을 벌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음식도 다채롭게 먹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차려준 세 끼보다 더 맛있고 더 몸에 좋고 더 건강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먹었다면 더 건강해져야 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차이를 생각해봤습니다. 아마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에는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습니다. 그저 차려주는 대로 마음 편히 먹기만 하면 됩니다. 먹고 싶은 반찬을 말하면 알아서 만들어 주십니다. 먹고 나면 치우는 것도 어머니의 몫입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사회생활하면서 먹는 밥은 한 끼를 먹어도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일로 얽힌 사이니 일과 관련된 대화가 대부분입니다. 간혹 개인적인 대화가 있기는 하지만 마음을 터놓는 사이는 아닙니다. 그러다 일 때문에 틀어지면 먹는 걸로 해소하려고 합니다. 술 마시며 험담으로 자신을 위로합니다. 다음 날 아침은 술로 엉망이 된 속을 해장국으로 풀어줍니다. 점심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마주 앉아 김치찌개를 나누어 먹습니다. 정작 상대방에게 받은 스트레스는 마음 한 곳에 담아둔 체 말입니다. 풀지 못한 스트레스는 어느 순간 먹구름처럼 또 드리울 겁니다. 먹구름을 핑계 삼아 또다시 음식으로 화를 풀어내려 합니다.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어머니의 밥상에서 아무 걱정 없이 먹었던 때가 그리워집니다.


사춘기 딸은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 편입니다. 먹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사달라는 것도 많습니다. 먹을 게 없어 대충 차려내도 군말 안 하고 한 그릇을 비웁니다. 중학생이라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클 겁니다. 그래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커갈수록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도 커질 겁니다. 그때 음식으로 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먹는 행위가 주는 즐거움을 쉽게 끊어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방법을 찾았으면 합니다.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게 아니라 먹는 즐거움을 통해 스트레스와 거리를 두었으면 합니다. 하루 세 끼를 먹고, 군것질도 하고, 외식도 하면서 먹는 즐거움을 지켰으면 합니다. 함께 나누어 먹는 즐거움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더 건강하게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먹을 게 풍족한 만큼 음식에 몸과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스스로 절제하고 즐겁게 먹으면서 건강하게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2022. 07. 26. 0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