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나를 돌아 볼 시간

이대로 마흔이 될 수 없다. #5

by 김형준

『그 찬란한 빛들 모두 사라진다 해도』의 줄리 입 윌리암스는 선천성 백내장을 갖고 태어났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손녀를 가문의 수치로 여긴 할머니에 의해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안락사 당할 뻔 했으나, 다행이 이를 모면하게 된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몇 번의 수술 끝에 희미하게 시력을 회복하게 된다. 정상인의 시력에 못 미쳤지만 이를 극복하고 7대륙 여행 경험과 하버드를 졸업한 뒤 미국 최고 로펌에서 일하게 된다.

나는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아무런 장애도 없었습니다. 삼형제 중 막내입니다. 하루 벌어 하루끼니를 걱정했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맘 놓고 배울 형편이 못 됐습니다. 자연스레 하고 싶은 것이 없어졌습니다. 하면 안 되는 줄 알고 자랐습니다. 스스로 해보겠다는 자립심이 없었습니다. 부모 탓, 환경 탓만 하고 살아왔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을 갖고 있었지만 환경 탓만 하며 스스로 하지 않았습니다.

『온 파이어』의 9살 존 오리어리는 온 몸에 화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하루를 넘기기 어렵다고 했다. 자신도 고통스러웠다. 부모는 그에게 선택권을 줬다. 힘들면 삶을 포기해도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9살 소년은 살기를 선택했다. 화상은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만큼 장애가 남겼다. 살기를 선택한 소년은 성공적인 재활을 통해 정상인 보다 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하게 성장했습니다. 학창 시절은 같은 반에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존재였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은 나의 선택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놀기를 즐겨 했고, 티브이 보기를 좋아 했고, 친구와 어울려 다니기 좋아했습니다. 목표와 계획을 세워 살기보다 흘러 가는대로 낭비하며 삶을 살아왔습니다. 마흔이 되어 돌아보니 스스로 만족할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돈을 좇았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월급에 목메어 살아왔습니다. 좋아하는 일이 아닌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일을 선택하며 억지로 버티며 삶을 이어왔습니다. 반 강제의 노력 덕분에 가정을 꾸리게 되었고, 아이들과 발 뻗고 쉴 수 있는 집 한 채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돈을 좇고 돈에 좇기는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을 이어가기로 했으면 선택을 뛰어 넘는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며 선택을 후회하는 안일한 자세로 삶을 이어왔습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학기 중이나 방학이면 어김없이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제대 이후 까지 줄곧 아르바이트를 해왔습니다.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용돈 줄 형편이 못 된 부모님대신 내가 벌어 충당했습니다. 일을 통해 나를 발전 시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항상 돈은 모자랐습니다. 쓰는 것만 알고 모으는 법을 몰랐습니다.

『생각의 비밀』의 김승호 회장님은 어린 나이에 이민 갔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일찍부터 일을 시작했다. 돈에 대한 개념을 갖고 일찍부터 사업에 도전했다. 수차례 실패했고, 실패의 경험을 발판 삼아 지금 회사를 4천억 가치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는 실패의 경험 속에서 돈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준을 지키는 원칙을 갖게 되었다. 그런 원칙이 지금의 부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나는 20대에 젊음만 믿고 무작정 사업에 달려들었습니다. 무모했던 도전은 처참한 결과만 남겼습니다. 다시 도전 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월급에 길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월급이 전부였습니다. 월급을 더 주는 직장이 최선이라 생각했습니다. 직장에 맞추기 위해 수시로 자기계발을 해봤습니다. 몸값을 높이는 것이 인생 목표가 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주는 대로 받았고 더 달라는 소릴 못했습니다. 직장 이외 다른 무엇을 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나쁜 습관으로 인해 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나는 매일 책을 읽기로 했다』의 김범준 작가는 지금도 직장을 다닌다. 그는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몇 번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실패 이후 직장인을 선택했다. 그는 늘 책을 가까이 했다. 책을 읽으며 책을 썼다. 책을 내고 강연을 다녔다. 강연을 다니며 또 다른 책을 썼다. 그는 자신의 선택대로 삶을 만들어 갔다. 월급을 좇기보다 좋아하는 일에 집중했다. 좋아하는 일은 그의 삶에 경제적 자유를 주었다. 그는 지금도 직장을 다니며 여전히 책을 읽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의 구본형 작가는 1인 기업가가 되기 위해 다니던 직장에서 10년을 준비했다. 직장 안에서 스스로를 1인 기업가로 정의 하고 그에 필요한 다양한 공부를 했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때 직장을 벗어나 1인 기업가로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책을 쓰고, 강연 하고, 더 많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배움을 전하는 일에 평생을 다 했다. 그의 삶은 1인 기업,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모든 이들의 표상이 되어왔다.

나는 10여 차례 이직을 이어왔습니다. 못 견디고 도망치듯 나온 곳도 있었고, 회사가 어려워져 반 강제로 나온 곳도 있었습니다. 더 좋은 조건을 좇아 이리 저리 옮겨 다녔습니다. 그렇게 15년 직장 생활 끝에 남은 건 없었습니다. 목돈의 퇴직금도 없고, 넓은 인맥도 없고, 남들과 다른 특별한 기술을 갖지도 못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살지 못했습니다. 내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찾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현실은 알지만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꿈도 없었습니다. 꿈을 갖고 하나씩 이루어 가는 이들이 부러워 습니다. 꿈을 갖고 싶었습니다. 미래를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차라리 혼자 살걸 그랬어』의 이수경 작가는 지독한 일 벌레였다. 그의 젊은 시절 기억은 일에 찌든 모습 뿐 이라고 했다. 가족은 그를 위해 희생했다. 마흔 넘어 그에게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일 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가족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일과 가족의 균형을 찾으며 더 큰 행복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일을 핑계로 가족에게 무관심했습니다. 다정한 아빠도, 편안한 남편의 역할도 못했습니다. 때로는 직장에서 받은 화를 아이들에게 푸는 최악의 아빠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힘없이 당하기만 했습니다. 아내는 말이 없고 화 만 내는 나를 보며 내내 눈치만 봤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10여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잘못 살았습니다. 잘못을 알고부터 바뀌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합니다. 아이들의 지금 모습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습니다. 아이들도 내게 등을 돌리면 다시 회복할 수 없습니다. 살아갈 시간이 더 많기에 잘못을 바로 잡고 더 큰 행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항상 마음을 새롭게 하며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생에 한번 고수를 만나라』의 한근태 소장은 수년간 기업 컨설팅을 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계층과 분야의 탁월함을 지닌 고수를 만났고 이들의 이야기를 모아 이 책을 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건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이 곧 나를 말해 준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과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을 가까이 할수록 그들을 닮으려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고 전한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데 소극적입니다.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은 고작 업무적인 관계가 전부였습니다. 친분을 쌓고 관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생활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게 자신 없었습니다.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거나, 고민이 있을 때 주소록을 뒤져도 맘 놓고 연락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언젠가 이수경 작가의 강연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마흔 이후 만남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평생 함께할 관계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에게 그럴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관계의 중요성은 알지만 어떻게 넓혀야 할지 몰랐습니다. 최근이 되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관계의 시작은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겁니다. 조건 없이 다가서고, 나눌 수 있을 때 상대도 나를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몸으로 깨달은 걸 지금은 하나씩 실천해 가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려 나를 낮추고, 가진 걸 조건 없이 나누려 합니다. 그들 중엔 이런 나를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다름을 인정하면 아무 문제 안 됩니다. 나와 맞는 사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보다 깊은 관계를 이어가는 걸로도 새로운 만남은 충분히 가치를 남길 것입니다. 마흔 즈음까지 나는 이렇게 살아 왔습니다.


얼마 전까지 40대면 나이 들었다, 꼰대다, 기성세대라며 늙은 느낌을 담아 표현하곤 했습니다. 최근 들어 이런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Young 40’ 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용어에서 알 수 있듯 40대도 지금은 ‘YOUNG’ 하게 받아 들여 집니다. 그만큼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 고 있음을 방증 합니다. 이들은 1970년부터 1972년 사이 태어난 세대를 말합니다. 또 90년대는 X세대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세대입니다. 지금 이들은 인생의 절반을 살아왔습니다. 남은 절반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저도 비슷한 시기를 살아왔고 살아가야 합니다. 새로운 준비는 이전의 나를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야 잘못 된 부분을 고치고 바로잡아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왔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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