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Jun 04. 2023

술을 줄이는 데 도움 되는 세 가지

술을 끊을 수 있으면 바랄 게 없겠네


금요일 저녁, 아내가 차려준 밥을 먹고 있었다. 주말부부로 지내 중인 현석이에게 전화가 왔다. 가끔 전화해 안부를 묻고 자신도 어떻게 지내는지 말해준다. 요즘은 주중에 딸 둘을 돌보느라 지친 아내가 주말에 자기가 와도 별 관심이 없다며 푸념했다. 밥도 못 얻어먹는다며 진담 같은 농담도 했다. 통화가 끝나고 마주 앉은 아내에게 통화 내용을 말했다. 아내는 그런 현석이가 마음이 쓰였는지 다음 날 집으로 초대하자고 했다. 현석이네 집에는 가끔 갔으니 이번에는 우리 집으로 부르자며 연락해 보라고 했다. 남이 차려주는 밥상이 가장 맛있는 법이다. 현석이네도 기꺼이 오겠다며 오랜만에 한 집에 모였다.


주중에 숙소에서 지내는 현석이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었다. 요즘에는 술 마시는 횟수가 줄었단다. 이유를 들어보니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닌단다. 일 때문에 술을 끊지는 못한다. 대신 취미를 만들어 술을 덜 마시려고 노력 중이라고 했다. 건강 챙길 나이이다 보니 술은 줄이고 담배는 끊어야겠단다. 이왕이면 둘 다 끊었으면 좋겠지만, 잔소리 같아서 더 말하지 않았다. 산을 다니든 취미를 가지든 술과 담배는 안 하면 좋다. 막상 시도하면 쉽지 않은 게 이 둘을 끊는 거다. 나도 예전에 술을 끊으려고 시도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면 일주일에 한두 번 술자리 갖는 걸 당연하게 여겼었다. 직원 단합을 이유로 회식을 갖기도 하고, 별 이유 없이 소주 한잔 생각난다며 친구를 찾기도 한다. 어떤 이유로든 한번 시작된 술자리는 간단하게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1차는 기본, 2차는 옵션, 3차는 선택이지만, 당연히 3차까지 갈 각오로 시작한다. 안주로 배를 채워도 술은 끊임없이 들어간다. 어느 때부터는 안주도 없이 술만 먹는다. 그렇게 먹다 보면 몸도 못 가눌 정도가 되기도 한다. 집에는 찾아가지만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없다. 다음 날 속이 쓰리고 몸이 힘들면 그제야 술 마신 게 후회가 든다.


누가 시켜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 억지로 권하는 사람도 없다. 내 기분에 취해, 술에 취해 절제하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다. 먹을 땐 다음 날을 걱정하지 않는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마셔댔다. 다음 날이 되면 어김없이 후회가 들었다. 후회할 일은 안 하는 게 맞다. 알면서도 그게 안 됐다. 술 마시는 그 순간에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걱정도 고민도 없는 것처럼 마신다. 마치 오늘만 사는 하루살이처럼 말이다. 하루살이는 내일이 없지만, 나는 자고 나면 똑같은 현실이 다시 반복된다. 하루 저녁 술기운을 빌려 잠깐 동안 벗어났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이런 일상을 20년 넘게 이어왔다.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마음먹은 대로 의지대로 되지 않았다. 이랬던 나도 지금은 18개월째 금주 중이다. 금주를 시도하고 실천하고 지속할 수 있었던 건 세 가지 덕분이었다.


첫째, 금주를 결심하고 단번에 끊었다. 오늘 딱 한 잔만 마시고 다음 날부터 시작하겠다면 절대 끊지 못한다.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술은 입에 대지 않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담배도 내일부터 끊겠다고 다짐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 2년 전 건강 검진받은 이튿날 금주를 결심했다. 결심을 세운 그 순간부터 술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 순간부터 술은 선택지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그 결심 덕분에 지금까지 술을 안 마실 수 있었다.


둘째,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장점을 먼저 생각했다. 전날 맥주 한 캔을 마셔도 다음 날 일어나는 데 영향을 줬다. 술을 점심이나 이른 저녁에 마시고 끝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늦은 밤 입이 심심해 맥주 한 잔 마시거나 저녁부터 시작해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소화도 안 된 채 늦게 잠이 들고 자는 동안도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 이런 상태로 다음 날 일어나면 몸이 피곤한 게 당연하다. 정신도 몽롱해 일도 제대로 못한다. 6년 전 책을 읽으면서 새벽 기상을 시작했다. 그 사이 술도 계속 마셨다. 술 마셨다고 새벽 기상을 안 할 수도 없었다. 한 잔을 마시든 몇 병을 마시든 일어나는 시간을 지켜야 했다. 당연히 술 마신 다음 날 일어나는 게 고역이었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이렇게까지 술을 마셔야 되는지 회의가 들었다. 단칼에 결심하고 실천하면서 다음 날 일어나는 게 수월했다. 내 의지대로 일어나면서 새벽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사용했다. 술을 안 마시면서 얻게 된 가장 큰 장점이었다. 이런 날이 반복될수록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가 점점 없어졌다. 술은 마시지 않는 게 당연해졌다.


셋째, 금주를 실천하는 나를 계속 격려했다. 새벽 기상이 수월해지고 나를 위한 시간이 늘어나면서 삶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책 읽는 권수가 늘고 글이 쌓이면서 작가가 되었고 강연도 하고 부업도 하게 되었다. 바라던 모습이 하나씩 현실이 되었다. 매일 그렇게 성과를 낼 수 있는 건 술을 마시지 않은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금주를 실천하는 나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로 동기부여하는 것이었다. 투 플러스 한우를 맛보기 전에는 그 맛을 짐작만 할 뿐이지만, 한 번 맛을 보면 또 찾게 되는 것과 같다. 좋은 걸 경험하면 더 좋은 걸 찾게 되는 것처럼 매일 실천하는 나를 격려했고 다음 날도 실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까지 금주를 실천할 수 있었던 건 장점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술만 마시지 않아도 새벽 기상이 수월했고, 맑은 정신으로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그런 노력 덕분에 바라는 삶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되었다. 술을 마시지 않아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았다. 술자리가 예전보다 확연히 줄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인간관계까지 끊어진 건 아니다. 술자리가 아니어도 사람을 만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또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술자리에 끼지 못할 이유도 없다. 술 이전에 사람을 만나는 게 먼저이니 말이다. 술을 끊어보니 분명 장점이 더 많다. 내가 얻은 장점 말고도 사람마다 다른 걸 얻을 수 있다. 과정이 만만치 않겠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어제도 현석이네 와 11시 반까지 술자리 했다. 술을 끊은 덕분 오늘도 새벽 기상을 했고 지금 이렇게 글도 남기도 있다. 이 정도 일상을 지킬 수 있다면 술을 끊을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잔병 없는 인생을 위한 두 가지, 글쓰기와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