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Jun 03. 2023

잔병 없는 인생을 위한 두 가지,
글쓰기와 사람


기침이 떨어지지 않는다. 격리 해제 후 같은 약을 1주일째 먹는 중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김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시시때때로 기침이 나와 불편해도 어쩔 수 없다. 하루 세 번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다. 같은 약을 오래 먹으면 인성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다. 이전에도 약으로 효과를 못 봐서 민간요법을 활용했던 것 같다. 도라지차, 생강차, 인삼 등을 먹었다. 몇 주를 먹은 뒤에야 겨우 기침이 사라졌다. 이번에도 약은 끊고 민간요법으로 기침을 없애야 할 것 같다. 기침, 비염, 감기 등 평소에도 걸렸다가 낫기를 반복하는 잔병이 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기도 하지만 약 대신 민간요법을 활용해 낫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큰 병이 아니고는 우리가 겪는 잔병에는 부모님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치료법이 있다. 아마도 오랜 시간 경험에서 얻은 치료법이고 효과를 보는 경우도 많다. 잔병치레에는 다양한 치료법이 존재한다. 살면서 겪는 잔병 같은 다양한 문제는 무엇으로 해결할까?


2017년 7월 2일, 큰형이 죽었다. 장례를 치르고 며칠 동안 남겨놓은 흔적을 지웠다. 일주일 만에 출근했다. 그동안 밀린 업무로 7월은 정신없이 보냈다. 매달 반복되는 업무는 다른 직원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는 정도였다. 형이 죽기 전에도 업무에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8월이 되면서 더 무기력해졌던 것 같다. 일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지 못했다. 이때부터 또 직장을 옮길 고민을 시작했다. 나는 고민이나 불만을 편하게 털어놓는 성격이 못 된다. 주변 동료나 친구에게 고민 상담하는 일이 없다. 참을 때까지 참다가 소주 한잔 하는 게 전부다. 술자리에서도 그런 말을 쉽게 터놓지 않는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다. 내 고민을 말한들 그들이 해결해 줄 것도 아니고 달라질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속으로 삭이다 혼자 결정하고 통보하는 식이었다. 그때도 그랬다. 몇 달 동안 불만은 쌓였고 이듬해 이직을 결정하고 회사에 통보했다.


2018년 5월 지금 다니는 직장으로 옮겼다. 조건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30분이던 출근 시간이 1시간 반으로 늘었다. 월급도 직급도 달라지지 않았다. 딱 하나 업무 강도가 준 것뿐이었다. 업무는 줄었어도 직장은 직장이었다. 어느 직장에서나 겪는 동료와 부침, 대표와의 불통은 여전했다. 입사 두 달 만에 가진 회식 자리에서 대표의 주사로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퇴사를 각오하고 이튿날 출근하지 않았다. 나를 추천한 임원의 설득도 있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틀을 버텼지만 가족 때문에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이때도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 혼자 고민하고 결정했다.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대표에게 트라우마 같은 게 있다. 대표는 물론 주변 누구도 그때 일로 인해 아직까지 힘들어한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터놓고 말해도 돌아오는 답은 뻔할 것 같다. 월급쟁이 다 그러고 산다고.


6년째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올해 초부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책 쓰기 정규 과정을 강의하는 코치가 되었다. 은퇴 이후 직업으로 선택했다. 직장 다니며 사업을 시작했다. 결정하기 전 고민이 됐다. 두 달 가까이 매일 아침 일기에 적었다. 과연 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일인가? 사업성이 있나? 꾸준히 할 수 있나? 섣부른 도전이 아닐까? 그만한 역량을 갖췄나? 생각지 못한 일로 포기하지 않을까? 글로 적으며 끊임없이 물었다. 고민도 판단도 스스로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 선택에 따라 삶이 180도 달라질 수도 있었다. 먼저 이 일을 해온 이은대 작가에게 상담도 받았다. 걱정되는 문제에 대해 경험자의 답을 듣고 싶었다. 안개 속이었지만 답을 듣고 나니 적어도 내 발은 보이는 것 같았다. 발이 보이면 어디로 갈지는 정할 수 있었다. 글로 쓰면서 스스로 답을 찾고 상담을 통해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여러 문제를 겪고 있다. 그만두고 싶은 충동도 여전하다. 쉽게 해결되지 않는 다양한 문제는 늘 따라다닌다. 돈, 진로, 자녀 교육, 대인 관계 등 명쾌한 답이 없는 문제들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문제는 끊임없이 생기고 그때마다 해결 방법도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 어쩌면 사는 동안 무한 반복되는, 감기 같은 잔병치레라고 생각한다. 감기는 약이나 민간요법으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살면서 겪는 다양한 문제는 주변 사람과 스스로 답을 찾으며 하나씩 해결해 갈 수 있다. 이전의 나는 문제가 있으면 숨기고 삭이며 해결이 아닌 회피만 했었다. 지금의 나는 문제가 생기면 글로 쓰고 대화로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어쩌면 글로 쓰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게 된다. 대부분 문제의 답은 자기 안에 있다고 말한다. 직접 경험해 보니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6년 동안 읽고 쓰면서 제법 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그때마다 글로 쓰면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인지, 할 수 있는 것인지 충분히 고민했었다. 어떤 문제는 올바른 판단을 내렸었고, 어떤 문제는 여전히 답을 찾고 있고, 또 어떤 문제는 아직 결과를 얻지 못했다.


잔병치레는 약과 민간요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살면서 겪는 잔병 같은 다양한 문제에는 그에 맞는 답이 있기 마련이다. 스스로 찾을 수 있는 답도 있고 주변에 도움받을 수도 있다. 스스로 찾는 방법은 글쓰기이다. 주변에 도움을 받는 건 대화이다. 문제에 대해 써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다. 미리 경험한 이들의 조언을 들으면 해결책을 얻을 수도 있다. 살면서 겪어야 할 다양한 문제의 처방으로 글쓰기와 대화만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방법도 그리 어렵지 않다. 글은 혼자 쓰면 되고 대화는 먼저 마음을 열면 된다. 이 두 가지를 미리 알았더라면 그동안 덜 고민하고 덜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이 두 가지를 일상으로 데려다 놓은 덕분에 사는 게 막막하지만은 않다. 적어도 꽤 괜찮은 차가 생겼고(직업으로서 작가이자 강연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남을 돕는 일)은 정해졌으니 이제는 고속도로만 달리면 된다. 글쓰기와 사람이 함께하면 언젠가 길이 끝나는 고속도로도 마음껏 달릴 수 있을 거로 믿는다.





https://blog.naver.com/motifree33/223118140127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카글족 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