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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n 21. 2023

오십을 준비하는 마음가짐


졸음을 쫓기 위해 P에게 전화했다. 한참 일 할 시간이라 연결이 안 될 수 있었다. 늦게 받길래 바쁜 줄 알았다.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쉬는 날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은 들을 수 없었지만, 평일에 쉬어야 할 만큼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로 짐작했다. 서로 말이 많은 편이 아니어서 간단한 안부만 묻는 대화가 이어졌다.


"내일모레면 오십이다. 어느새 이렇게 되어 버렸네."

"그러게 말이다. 오십이니 몸 사리고 조용히 지낼 준비 해야 하지 싶다."

"뭔 소리야! 다시 시작이지. 남은 시간 제대로 보내려면 이제부터 준비해야지."


내 말에 동의는 했지만 공감은 못하는 눈치였다. P가 어떤 마음으로 오십을 준비하는지 잘 모른다. P는 누구 못지않게 이제까지 잘 살아온 친구다. 직장을 다니면서 창업도 했었고, 직업의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여러 공부를 했던 걸로 안다. 현실에 만족하기보다 더 나은 내일 위해 항상 준비해 온 친구다. 그러니 오십 이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친구가 아닌 건 확실하다. 다만, 마음가짐이 어떤지 진솔하게 들어보고 싶기는 하다.


이호선 교수의 《오십의 기술》을 읽었다. 오십에게 필요한 다양한 태도에 대해 다루는 책이다. 남은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데 필요한 기술, 나이 들수록 가족과 돈독하게 지내는 기술, 주변 사람과 편해지는 데 필요한 기술, 남은 시간을 멋지게 살 수 있는 기술 끝으로 나이 들어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기술을 알려준다. 각각의 주제에는 보다 구체적인 방법도 적혀 있다. 오십은 삷의 전환점이다. '지천명' 하늘의 뜻을 이해하고 그에 순응하며 만물의 원리를 이해한다는 걸 의미한다. 조금 더 유연해지고 너그러워지고 귀를 열고 가르치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오십이 되면 치열했던 삶에서 한 발 물러서게 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한다. 어떤 시작을 할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또 한 번 치열하게 살아갈지, 준비해 놓은 대로 여유롭고 느긋하게 자기 안에서 살지. 나는 오십이 기대된다. 마흔셋부터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해 오고 있다. 6년째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오고 있다. 이제까지 직장을 다니며 쌓았던 경력과 상관없는 작가이자 강연가를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은 준비와 노력,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내가 선택한 일은 남은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남과 비교해 서둘 필요도 없다. 그저 내 속도대로 내가 정한 방향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 탓에 지난 6년 동안 남들보다 조금 늦어도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람인지라 성과가 빨리 나오면 좋았겠지만, 이 또한 내 역량에 따라 때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십이 기다려지는 건 이전과 다른 일상을 살아서다. 이전에는 순간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행동하고 결정했었다. 그러니 화가 많았고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다 책을 읽기 시작했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 않기 위해 중심을 바로 세우려고 노력했다. 일기를 쓰고 생각을 정리한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말이다. 늘 나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고 노력한다. 일상에서 나를 바르게 세울 수 있으면 하려는 일도 올곧게 해낼 수 있을 거로 믿는다. 왜냐하면 삶이 곧 글이 되고 글로써 사람들과 소통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게 달라진다. 원칙 없는 삶을 살면서 원칙을 말할 수 없고,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서 규율을 지키라고 말할 수 없다. 나부터 지켜야 남에게도 말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조차 나에게 엄격한 삶을 살 수 있을 때 중심이 바로 선다고 생각한다.


지하철은 모든 역에서 정차한다. 버스는 내릴 곳에서 벨을 눌러야 한다. 벨을 누르지 않으면 목적지를 지나칠 수 있다. 또 목적지를 모르면 언제 벨을 눌러야 하는지 모른다. 오십은 환승이 필요한 시기다. 환승을 위해 언제 어느 곳에 내려야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남은 시간 무얼 하고 어떤 삶을 살지 답을 찾기 전에 말이다. 그 답에 따라 벨 누를 때와 내릴 곳도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6년째 읽고 쓰면서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시작하기 전에는 오십이 막연했다. 무얼 할 수 있을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6년 동안 꾸준히 읽고 글을 쓰면서 나만의 길을 만들어왔다. 그런 덕분에 길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어디로 어떻게 무얼 할지 선명해지는 중이다. 이제 곧 환승을 위해 하자 벨을 누를 때도 머지않은 것 같다. 갈아탄다고 탄탄대로를 달리는 건 아닐 테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길을 내 의지대로 운전해 갈 수 있다는 게 좋다. 이전까지 살아보지 않은 삶을 앞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내가 운전하며 내가 원하는 곳을 향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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