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짤랐다

한 번 뿐인 기회를 위해 숙성은 필수

by 김형준

나를 짤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 나는 이런 일 안 당할 줄 알았다. 묵묵이 열심히 일 하면 다 잘 될 줄 알았다. 그들도 그랬다.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했다. 그렇게 18년을 이어왔다. 그런데 짤랐다. 내가 나를 짤랐다. 오늘 나는 내 발로 걸어 나왔다. 3년 준비 끝에 직장생활에서 은퇴한다. 자발적 은퇴자. 내가 나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지난 3년을 불꽃처럼 태웠다. 아무런 준비없이 뛰쳐나갈 뻔 했다. 그때 내가 나에게 부탁했다. 딱 3년 만 준비하자. 무딘 칼 끝이 아닌 무엇이든 벨 수 있는 날 선 검을 만들기로 했다. 매일 새벽 칼을 갈았다. 책으로 정신을 다듬고, 글로 생각의 날을 세웠다. 다섯 개의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체 세 곳에 고정으로 강연 중이다. 1년짜리 정신개조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수 개월 째 20여 곳 이상 강연을 나가고 있다. 외부 활동 수입은 월급을 넘어 선지 오래다. 드디어 나 혼자 설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오늘 나는 나를 짤랐다.


이랬으면 좋겠다. 생각만해도 짜릿하다. 여유 있게 손 흔들며 회사 문을 나서는 나를 부러워하는 그들의 눈빛을 보고 싶다. 내 수입을 부러워하는 그들의 질투를 느껴보고 싶다. 무능력하다고 수근 댔던 그들의 후회를 지켜보고 싶다. 친한 척 다가오는 그들의 이중성에 일침을 가하고 싶다. 그렇게 하고 싶다. 그렇게 된다.


‘목표는 당신에게 분명한 방향 감각과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는 인식을 부여한다. 목표는 힘과 집중력을 선사한다. 목표는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당신을 최고의 이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하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말이다. 미래를 선명하게 그릴수록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리기만 한다고 원하는 미래가 오지 않는다. 큰 목표를 작게 나누고 작은 목표에 집중하며 하나씩 성취해 가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할수록 꿈꾸는 미래는 선명해 질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꿈을 그려 온 지 3년을 향해 가고 있다. 여러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고 이루는 과정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해 왔다. 직장이란 울타리를 벗어나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키워왔다. 꿈꾼다고 꿈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더 지옥일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은퇴자들이 입 모아 말한다. 그 안에 있을 때 가 좋았다고. 일장 일단이 있다. 어차피 한 번은 벗어나야 한다. 원하는 만큼 있을 수도 없다. 나와야 하는 게 정해진 사실이라면 스스로 나오는 게 맞을 수 있다. 단 철저한 준비는 필수이다. 경험자들은 월급 이상의 수입이 나오면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다고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돈을 떼어놓고 이상만 좇을 수 없는 나이이다. 가족을 등질 수도 없는 시기이다. 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당당히 드러내는 게 낫다. 돈은 현실과 이상의 공극을 메워줄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다.


내 현실은 아직 수입원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도 사표는 항상 품어왔다. 때를 기다리며 푹 익고 있다. 내가 준비 될 때 사표도 품격을 갖게 된다. 당당함을 품게 된다. 한 낱 종이 쪼가리가 아닌 내 미래의 보증서다. 사표 던 지는 내 모습을 상상하는 건 동기부여가 된다. 그때의 짜릿함을 느껴보고 싶은 충동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던지고 주워담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멀 지 않은 때 풀 스윙으로 던지는 그날이 곧 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금만 기다려라 어둡고 답답한 그 속에서 널 자유롭게 해 주는 날이 멀 지 않았다. 성급해 하지 말고 조금만 더 숙성하자. 원래 회도 바로 잡아 먹는 것 보다 일정 기간 숙성을 거쳐야 육질이 더 쫄깃해 진다고 했다. 한 번 밖에 기회가 없다면 제대로 숙성 된 깊은 맛을 낼 수 있도록 인고의 시간을 이겨내는 게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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