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닫으면 관계가 닫힌다.

귀를 열면 조화로운 삶이 열린다.

by 김형준

“기사님 제 설명을 끝까지 들어보세요. 중간에 말을 자르니 자세히 설명할 수 없잖아요.

일단 제 설명 다 들으시고 궁금한 걸 물어보세요. 아시겠죠?”

“알았으니까 다시 설명해 줘봐요.”

“인터체인지에서 ㅇㅇ방향 고가로 내려서며 사거리 나와요. 거기서 ㅇㅇ방향으로 우회전 해서 50m오면 골목 하나 나와요. 거기까지 오시면 돼요.”

그렇게 끊고 30분동안 연락이 없었다.

다시 전화 한 기사님은 이전 보다 더 격앙 된 목소리였다.

“아니 설명한대로 왔는데 그런 곳은 안보이는데 도대체 어디에요? 사거리에서 우회전 했는데 골목이 안 나오고 이상한 곳만 보이는데. 여기 맞아요? 설명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 바뻐 죽겠는데 당신때문에 시간을 얼마나 잡아 먹고 있는지 아세요.”

“기사님 진정하시고 주변에 뭐가 보이는지 설명해주세요.”

“아니 그건 모르겠고. 설명한대로 왔는데 안 보인 다니 까요.”

여기서부터 나도 혈압이 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진정하고 물어봤다.

“기사님 아마 방향을 잘못 든 것 같으니 계신 곳을 설명해주면 다시 알려 드릴께요.”

“아니 이리로 가라고 해서 왔는데 안 나온 다니까요. 설명을 어떻게 한 거 에요.”

마음으로 ‘참을 인’ 세 번을 되 뇌이며 다시 한 번 차분하게 물어봤다.

“앞선 상황은 제가 잘못했으니 잊으시고 어찌되었건 이곳을 찾아 와야 하니 지금 계신 곳을 알려 주셔야 다시 설명할 수 있어요. 잘잘못 따지지 마시고 지금 주변에 보이는 걸 설명해 주세요.”


나를 포함 세 사람과 10여분 실랑이 끝에 겨우 이해하고 찾아왔다. 대화내내 답답했던 건 상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다는 거였다. 앞의 상황에서 서로 이해하는 부분이 달라 잘못 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설명을 잘못 했건 이해를 잘 못했건 팩트는 목적지를 잘못 찾았다는 거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설명하고 바로 잡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기사님은 본인의 입장만 고집하고 상대의 잘못만 탓할 뿐이었다. 물론 운전이 육체적으로 힘들고 한 번 잘못 든 길을 바로 잡는 게 운전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만만치 않다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다고 남 탓만 하고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기사님도 앞선 상황은 잊고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보였다면 쓸데없는 실랑이는 없었을 수 있다.


이 사례의 기사님 같은 분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주어진 상황만 바뀔 뿐 남 탓하고 자신의 말만 하는 사람을 상대하긴 만만치 않다. 그 분도 그 상황이전에 여러 복합적인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인지 짐작할 수 없지만 문제가 된 상황에서 해결책은 상대방과 대화를 통해 최선책을 찾는 것이다.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면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상대방이 잘못 이해했다는 건 내 설명도 잘못 됐다고 볼 수 있다. 명확하지 못했기에 오해할 여지를 준거다. 반대로 상대도 잘못 이해했음을 인정하면 해결책을 찾는게 한결 수월해 질 수 있다. 또 결과를 떠나 상대를 탓하기 전에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면 불필요한 언쟁은 줄일 수 있다. 나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열린 생각이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 살지 않는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닫는 순간부터 내 생각이 세상의 기준이 되어버린다. 내 기준과 다른 상황은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일부일 수 있지만 앞선 상황의 기사님 처럼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면 상대의 말을 들을 가치가 없어진다. 이는 스스로 자신의 세상에 갇히게 되는 거라 생각한다.


사람과 조화롭게 잘 사는 방법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닐 수 있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겠다는 자세 즉, 귀를 열면 마음도 열리고 마음이 열리면 상대를 이해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상대에 대한 이해가 조화로운 삶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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