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영혼을 채우는 최고의 사치
혼밥을 먹은 지도 60일이 넘어간다. 혼자 먹으면 메뉴 걱정 안 할 것 같은데 반대이다. 게으르거나 선택장애가 있어 그럴 수도 있다. 혼자라는 장점을 활용하면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음식을 맛 볼 수도 있었다. 그동안 그러지 못했다. 약간의 후회는 남는다. 어제도 흙먼지 쌓인 무거운 몸으로 퇴근했다. 퇴근길 아내가 물었다. “오늘 저녁은 뭘 드실 겁니까?” 떠오르는 메뉴는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내 선택의 기준은 자주 가는 몇 곳의 식당 중 손님이 적은 곳으로 발을 들여놓았었다. 한 마디로 사람 눈 적은 곳이 선택의 기준이었다. 그러니 매일 먹는 게 거기서 거기였다. 색다른 메뉴를 원하면 활동 반경을 넓혀야 한다. 퇴근 후 귀차니즘이 그마저도 가로막는다. 읽어야 할 책이 있고 써야 할 글을 생각하면 퇴근 후 내 시간이 소중해진다. 먹는 건 순서에서 밀린다. 눈에 띄는 곳에서 후다닥 먹고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마음도 편하고 시간도 아낄 수 있다. 그렇게 두 달을 보내왔다.
안 써지는 글을 두 시간동안 붙잡고 있었다. 결국 짧은 글로 숙제하듯 마무리 했다. 아직 생각의 골이 얇다. 어렵고 깊이 있는 주제를 대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다. 더 배우고 더 다듬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한 번씩 만나는 어려운 주제들은 타성에 젖어가던 자아를 흔들어 깨운다. 지금에 만족하려 들 때면 어디선가 누군가의 날선 질문이 날아들었다. 그게 책일 수도 있고 주변 사람의 생각일 수도 있고 스스로에 대한 자책일 때도 있었다. 어제도 그랬다. 두 시간의 씨름 끝에 나의 한계를 실감했다. 아직 갈 길이 멀었음을 실감했다. 저녁도 안 먹고 글 한편 써보겠다고 옥신각신했는데 결국은 지고 말았다. 패잔병 같았다.
흙먼지 뒤집어 쓴 몸을 씻어 내고 단골 카페로 향하는 길목에 식당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24시간 따로 국밥 집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쯤이면 손님이 없을 것 같았다. 만약 예상대로 손님이 없다면 혼밥에 혼술을 욕심내 보려했다. 메뉴는 불고기로. 패잔병에게도 밥은 줘야했다. 그래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졌을 때 잘 먹여야 더 힘을 내고 더 큰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가능성은 단편적이지 않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낼지 모른다. 자신의 한계는 자신도 모른다. 자신을 믿고 지지해 주는 누군가 있다면 그 믿음에서 촉발하여 한계를 뛰어 넘는 마법을 부리게 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나 자신에게도 만찬을 선물하고 싶었다. 패잔병으로써가 아닌 무한한 가능성을 위해서였다. 일단 현실의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가게 문을 열고 앉을 자리를 찾고 주문하는 과정이다. 지금까지 혼밥을 경험하며 이 단계를 극복해야 비로소 편안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어색한 표정으로 식당 문을 열고 빠르게 빈자리를 스캔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표현이 지금인가. 식당엔 아무도 없었다. 안도하게 되자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조금씩 상황을 즐기게 되었다. “불고기 2인분(2인분 이상만 주문 받음)에 소주 한 병 주세요.” 이제부터 내 시간이다. 아주머니도 나를 배려하려는지 시선이 마주치지 않는 곳에 계신다. 오롯이 먹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사진 속 그녀와 마주치는 시선이 소주의 쓴 맛을 희석시켜 주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이 상황을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부러워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들이 부러워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측은지심으로 맞장구 쳐 준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그 시간에 일일이 답변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내 인간성이 나쁘지 않음의 역설이 아닐까.(믿거나 말거나 쓸데없는 근자감)
얼마 전 대구 생활을 적으며 혼삽겹을 목표했었다. 삼겹살은 아니지만 불고기로 목표달성을 인증해 보려 한다. 시도하는 과정에 주저하고 망설이기만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도하는 과정에 분명 걸림돌은 있다. 사람들 눈이 의식될 수 있고, 스스로 용기를 못 낼 수도 있다. 문제만 바라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일단 시도해 보겠다는 마음가짐과 행동이 필요하다. 결국 시도는 행동이 따라야 결과도 나오기 때문이다. 결과가 좋고 나쁨은 차선의 문제이다. 어제의 혼밥 혼술은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 마주칠 수많은 돌부리 중 겨우 하나를 넘어 선 것이다. 하나를 넘어 섰기에 두 번째도 가능할 거라 믿는다. 해냈다는 성취감은 다음 시도를 위한 원동력이 되어 준다. 이렇게 하나씩 쌓인 동력이 인생의 더 큰 문제도 거뜬히 넘어설 수 있는 자신감으로 이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