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담보한 삶, 시간을 누리는 삶, 당신의 선택은?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로 인해 신선함과 독창성을 잃은 걸 매너리즘이라 정의한다. 자고 일어나 씻고 밥 먹고 옷 입고 출근, 업무 후 퇴근, 퇴근 후 약속 또는 귀가 그리고 다시 잠자리 들기까지를 반복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간혹 직업과 회사 특성에 따라 조금 다른 일상을 살기도 하지만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다시 매일 같은 지하철, 버스, 한 달 주기로 반복되는 업무, 매일 바뀌는 술자리 약속, 가끔은 가족과 가까운 곳으로의 여행 후 또 다시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간다. 이런 일상은 세대와 직업, 경제적 여유에 따라 천차만별 모습을 담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니 새로울 것도 없고, 새로울 게 없는 일상이니 독창적이지 않는다. 아무런 자각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젖어 사는 이들에겐 매너리즘은 남의 얘기이다. 그저 반복되는 일상이 안락함을 줄 수 있다면 굳이 바꿀 필요성을 갖지 못한다. 삶의 신선함을 포기하는 것이다. 채소는 신선함을 잃으면 가치도 잃는다. 숨이 죽은 상추를 먹고 싶은 사람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늘 깨어 있고 활기 넘치는 사람 주변에 더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어 있다. 사람이 모이는 사람에겐 늘 새로움과 활기로 넘쳐난다. 사람들 속에 존재하기 위해 항상 새로움을 찾고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려 노력한다. 우리는 경제적 여유를 누리기 위해 시간을 담보로 잡혀 산다. 내 시간을 내어주고 한 달 월급을 받는다. 이런 전제로 인해 일상의 무한 반복의 틀 속에 가두게 된다. 틀 속에 있을 때 안락함 삶을 보장 받는다. 매너리즘을 느끼지만 안락함의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없다. 현실과 이상의 줄다리기를 타지만 결국 현실에 안주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바라던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힘들고 지루한 순간을 외면하지 않기를, 자신 없거나 부끄럽다는 이유로 아름다운 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보라. 주어진 능력으로 살 수 있는 삶을 살아보라. 탁월함이란 그런 것이다. 『스틸리스』 - 라이언 홀리데이
우리는 탁월해 질 수 있다.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가능하다. 매너리즘은 독일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 매너리즘을 다른 시각에서 보면 Ritual 이라 할 수도 있다. 다만 신선함을 찾고 독창성을 발견한 매너리즘은 새로운 Ritual이 될 수 있다. Ritual을 달리 표현하면 습관이라 할 수 있다. 의미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 넣음으로써 이전과 다른 일상을 살 수 있다. 출·퇴근은 이동을 목적으로 하는 시간이다. 공간의 변화를 목적으로 둔다면 이동하는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간에 의미를 둔다면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 출근은 짧게는 30분 길면 1시간이 평균적이다. 하루 평균 1시간에서 2시간이 온전히 내 시간이 된다. 이제 선택하면 된다.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용기를 내면 된다. 전문 자격증을 따고 싶은가? 바리스타가 되고 싶은가? 부업을 해보고 싶은가? 이도저도 아니면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은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하고자 하는 게 있다면 얼마든 활용가능하고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시간이다. 늘 새로움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다. Ritual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간이다. 용기를 낸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매일 새로움으로 채워진다면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고 독창적인 삶을 살 수도 있다. 반복은 내면의 힘을 키워준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함으로써 자발성을 갖게 되고 자발성은 항상 다름을 추구하려 한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경제적 여유를 위해 희생하는 시간은 꼭 필요하다. 담보 된 시간이 있다면 자유로운 시간도 분명 존재한다.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자신에게 쓸 수 있어야 한다. 담보 된 시간을 핑계로 자신의 시간마저 포기할 이유는 없다. 당당히 찾아와야 한다. 용기가 필요하다. 생각해 봐라. 시간을 담보로 아무런 활력 없이 무한 반복되는 자신의 모습을. 스트레스에, 야근에, 술에, 티브이에 쩔어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면 각성이 필요하다.
우리가 지구에 태어난 것은 벌집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죽을 때까지 헌신하는 일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또 끊임없이 일을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것이 누군가에 대한 ‘의무’인 것도 아니다. 그건 우리의 팬도, 우리에게 아주 많은 것을 내어준 부모도 심지어 가족을 위한 일도 아니다. 자신의 생명을 꺼뜨리는 일은 그 누구를 위한 일도 되지 못한다.
당신에게 맞는 곳에서 일하면서 필요한 만큼의 부를 이룬다는 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다. 당신은 건강을 지키고 고요를 찾으면서 동시에 성공할 수 있다. 『스틸리스』 - 라이언 홀리데이
우리는 원하는 직업이나 직장을 갖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다. 적성과 다른 직업을 선택해야 하기도 하고, 원치 않는 직장을 다니기도 한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안락함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면 적어도 자신만큼은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일상의 변화를 줄 용기를 낼 자신이 없다면 적어도 자신의 자아는 지켜야 한다. 자신만을 위한 내면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루를 돌아보고 내일을 계획하는 시간이다. 짧아도 좋고 길면 길수록 더 좋다. 지친 내면의 자아를 만나 위로하고 힘을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적어도 자신을 매너리즘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고요를 필요로 하는 동시에 고요를 만들어내는 반성의 시간이자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나오는 작업이다. 다가올 내일의 얼개를 짜는 일이기도 하며 몇 시간 전의 근심 걱정을 해소하는 일이자 창의력을 활성화시키고 휴식을 취하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도록 시동을 거는 일이기도 하다. 『스틸리스』 - 라이언 홀리데이
시간을 담보로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삶과 경제적 여유로 시간을 누리는 삶이 있다. 우리 대부분은 후자의 삶을 꿈꾸지만 전자의 삶을 살고 있다. 시간을 담보로 한 삶을 시작해 평생을 살 수도 있다. 시간을 담보로 시작했지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독창성을 만들어 냄으로써 시간을 누리는 삶을 살 수도 있다. 선택의 문제이다. 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 누군가는 의미를 찾고 다른 삶을 만들어가는 반면 누군가는 그 안에 젖어 안락함만을 추구하려 한다. 당신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묻고 싶다. 시간을 담보한 삶인가? 시간을 누리는 삶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