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면 끝장이다!
오늘도 깜빡이는 커서와 마주하고 있다. 깜빡임은 뭐라도 빨리 쓰라고 재촉한다. 커서와 단판을 져야한다. 밀리면 끝장이다. 밀리는 순간 글은 내 글이 아니다. 주도권을 빼앗긴다. 주도권을 빼앗긴 글은 내 의지와 다른 곳에 닿는다. 세상일이 다 그런 것 같다. 급하다고 재촉하고 시간 없다고 빨리빨리 서두르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20년 무사고 동안 남의 차 대신 내 차를 못살게 굴었다. 담벼락에 전봇대에 주차장 기둥에 수도 없이 긁어댔다. 그때마다 내 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뭐에 홀린 듯 멍할 때 꼭 사고가 났다. 글을 쓸 때도 정신 바짝 차리고 써야한다. 끌려 갈 것 같으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안 써지는 글을 붙잡고 있기보다 화면 덮고 다른 생각 하는 게 낫다. 글만큼 밀당이 심한 것도 없다. 연애초기 밀당은 밀당 축에도 못 낀다. 연애는 대화라도 할 수 있지만, 글은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난감하다. 글은, 잘 쓰건 못 쓰건 오래 썼건 그렇지 않건 최고의 난제는 밀당이다. 이제 막 시작하는 이들에게 제일 힘든 게 이런 부분이라 생각한다. 마음대로 써지지 않는 글로 인해 스트레스 받기 일수다. 스트레스에 지면 이내 글쓰기 싫어진다. 글을 오래 쓴 사람은 이런 스트레스에 어느 정도 단련되었다 할 수 있다. 스스로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으면 스트레스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런 경지에 이르려면 얼마나 걸릴까?
마음 맞는 친구와는 몇 시간이고 대화가 이어진다. 그렇지 않은 자리는 10분도 버티기 힘들다. 대화 중 잠시 침묵이 흐를 때가 있다. 이 침묵을 견디기 힘들면 상대가 불편하다는 의미이다. 마음 편한 친구는 이런 침묵마저 대화의 일부가 된다. 글을 쓸 때도 친구처럼 대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다음 글이 생각나지 않을 땐 그 순간 즐기면 된다. 쓴 글을 읽어보기도 하고 틀린 단어도 찾아보고 맞춤법도 되짚어본다. 글에게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다보면 어느 순간 힌트를 던져 준다. 아이디어는 글의 어느 부분에서나 떠오르기 마련이다. 굳이 순서대로 생각할 필요 없다. 글 중간에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끼워 넣으면 된다. 끼워 넣고 앞 뒤 내용을 다시 맞추다 보면 더 풍성한 내용이 될 수도 있다. 글에게 미안하지만 생각나는 대로 난도질 할 수 있어야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처음부터 끝가지 생각한 주제를 유지하며 한 번에 써 내려가는 건 불가능하다. 누군간 가능하다 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내 경우엔 절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난도질 하게 된다. 앞으로 갔다 뒤로 가고 끼워 넣을 문장을 썼다 지우기도 하고 앞 단을 떼어 뒤에 넣기도 하고 뒷 단락을 중간에 넣기도 해본다. 또 허리도 자르고 살도 붙이고 예쁘게 성형수술도 해본다. 아무리 험악한 과정을 거쳐도 결국 독자에게 보이는 글은 최대한 예쁘게 포장 된 글이 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이리저리 난도질하고 있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예쁘게 포장 된 글이 잘 쓴 글이란 의미는 아니다. 좋은 글을 잘 쓰기 위해 이런 저런 방법을 활용해 보는 과정이다.
요즘은 가부장적인 남자가 많이 줄은 걸로 안다. 나이 들어 숟가락 뜰힘은 있지만 차려주는 이가 없다면 잘못 산거나 같다고 한다. 옛날처럼 여자가 소박맞는 게 아닌 남자가 소박맞는 시대이다. 그래서 권위를 버리고 가정에 충실한 가장이 되려고 한다. 권위를 앞세워 뻣뻣하게 글을 대하기보다 친절하고 편하게 다가가면 글도 마음을 열게 된다. 생각이 유연해 진다는 의미이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가 아닌 때론 부드럽게 때론 박력 있게 때론 다정하게 대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생각이 유연해지고 글도 마음을 열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방법은 원하는 분량을 써낸 시간을 통해서이다. 몇 시간을 붙잡고도 몇 줄 밖에 못썼다면 고통스러울 것이다. 시간낭비에 에너지 낭비라 생각한다. 반대로 짧은 시간 집중해 원하는 분량을 채웠다면 다음에 또 쓰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생긴다. 글과 내가 통했다는 의미이다. 아쉽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흔히 글 빨 받는 날이 있다고 한다. 자신 있는 주제는 글 빨이 선다. 신들린 듯 써내려가는 경우이다. 그렇다고 매번 같은 주제의 글만 쓸 수 없다. 자신 있는 주제만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주제를 연습하며 글이 갖고 있는 여러 모습을 접해 보길 바란다. 어쩌면 다른 주제에서 또 다른 강점을 찾을 수도 있다.
내 목표는 1시간에 한 페이지 채우기다. 마음을 집중해 어르고 달랬고, 과감히 난도질한 결과 오늘도 한 페이지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