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은 글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쭈꾸미 삽겹살 볶음, 철판 닭갈비, 오징어 철판 볶음, 순대 볶음, 곱창볶음 이들의 공통점은 본 요리 후 밥을 볶아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볶음밥을 먹지 않으면 요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본 요리 못지않게 볶음밥의 맛 또한 음식점 선택 시 결정적이다. 때론 볶음밥 맛이 본 요리를 능가하는 음식점도 있다. 어느 요리나 볶음밥의 맛을 결정짓는 건 마지막 몇 분의 뜸에 있다. 남은 양념에 추가 재료를 더해 현란한 손놀림으로 양념이 밥알에 골고루 배도록 꾹꾹 눌려주며 섞어 준다. 잘 섞였으면 마지막 과정이 남았다. 뚜껑을 덮고 철판의 열을 이용해 뜸을 들인다. 이때 기호에 따라 치즈를 올리기도 한다. 기다림의 시간 뒤 맛보는 볶음밥은 천상의 맛과 다름없다. 밥 알 표면에 베인 영롱한 양념빛깔과 뜸으로 인한 수증기의 매끄러운 코팅은 눈마저 즐겁게 해준다. 뜸 들이는 시간 동안 적당히 눌러 붙은 누룽지는 고소함의 극치를 맛보게 해준다. 볶음밥의 맛은 뜸 들이는 시간에 의해 결정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쓰기에도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세상에 내 놓을 글이 아니면 뜸들일 이유 없다. 나만 보고 만족하는 글이라 굳이 뜸들일 이유 없다.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독자는 볶음밥의 참기름 같은 존재이다. 볶음밥의 퀄리티는 참기름에 좌우 되듯 내 글의 퀄리티 또한 독자에 의해 결정된다.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쓴 글은 일기뿐이다. 자신이 쓴 글을 냉정히 봐주는 독자가 있을 때 쓰기 능력도 발전할 수 있다. 글쓰기 능력을 키우기 위해 가장 우선 되어야 하는 건 많이 써 보는 거다. 30년간 글쓰기를 가르친 바버라 베이그는 10분 쓰기 연습을 추천한다. 노트를 펼치고 10분 동안 떠오르는 단어를 적어 나간다. 아무런 제약도 두지 말고 손이 가는대로 쓰는 거다. 집중하는 그 순간 머릿속 떠오르는 단어를 놓치지 말고 적어 간다. 내용도 맞춤법도 신경 쓰지 말고 무작정 적는 거다. 10분 간 적고 나면 덮어 둔다. 이대로 세상에 내 보낼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을 두고 다시 펼쳐본다. 이때도 글을 고치기보다 어떤 내용인지 읽어 보는 거다. 이 과정을 통해 앞으로 쓰고 싶은 글의 소재를 얻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 메모 역할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얻어진 글감으로 글 한 편을 완성해 본다. 완성 된 글도 내 놓기엔 완벽하지 않다. 다듬지 않은 날 것의 글은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주제도 없고, 비문도 많고, 맞춤법도 맞지 않는 글은 독자에게 외면 받는다. 오래 묵혀 두고 많이 고쳐도 만족하지 못하는 게 글이다. 고치려 할 때마다 맘에 안 드는 부분이 나온다. 그래서 세상에 나오기 까지 뜸 들일 시간이 필요 하다. 그렇다고 무한정 뜸만 들일 수 없다. 어느 시점이 되면 용기를 더해 세상에 내 놓아야 한다. 부족해도 꺼내 놓고 평가를 기다려야 한다. 달달한 칭찬도, 쓰디 쓴 충고도 있다. 그렇다고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사람이 생김새 성격이 다 다르듯 내가 쓴 글을 좋아하는 이도, 싫어하는 이도 있는 건 당연하다. 다만 좀 더 대중적인 글을 쓸 수 있다면 좋아해 주는 사람이 늘어나는 정도의 차이라 생각한다.
독자의 평가는 다음 글을 쓸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도 된다. 매번 만족스런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그런 글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글은 냉정한 평가를 받는다. 어쩌면 이런 글이 자신을 더 성장시킬 수 있다. 부족한 부분을 드러냈을 때 받는 평가는 부족함을 채워주기도 한다. 부족함을 숨기려 하면 더 드러나는 법이다. 우사인 볼트는 어려서부터 척추측만증이 있었다. 또 그의 큰 키는 단거리 선수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런 약점에도 그가 100m 세계신기록을 세운 건 단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결과였다. 척추측만증은 웨이트를 통해 근육량을 키웠고, 큰 키의 보폭을 활용해 단거리에 적합한 주법을 만들어 냈다. 그가 가진 약점을 드러내고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될 수 있었다. 이미 꺼내놓은 글에 집착하지 말자. 그 글을 쓰는 동안 들였던 정성은 잊자. 물론 한 편 한 편이 소중한 건 맞다. 반대로 세상엔 써야 할 소재로 넘쳐난다. 지난 글에 미련두기 보다 써야 할 소재에 집중하는 게 글쓰기 실력을 키우는데 필요한 자세이다.
글을 쓰는 건 지루한 작업이다. 어제 했던 걸 오늘 해야 하고, 오늘 했다면 내일도 해야 한다. 글감을 생각하고, 메모하고, 다듬고, 써 내려가는 일련의 과정은 무한 반복이다. 과정은 같지만 그 안에 담기는 소재는 무수히 많다. 세상에 널린 수많은 이야기를 내 안에 담고 숙성시킨 뒤 나의 관점을 가미해 새롭게 써 내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철판 볶음을 주 메뉴로 하는 맛집은 저마다 독특한 양념장을 갖고 있다. 비법 재료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장맛을 갖고 있다. 그런 장맛이 있기에 볶음밥 또한 일품요리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개성이 있다. 글에도 개성이 담기게 된다. 글 쓰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가질 수 있다면, 누구나 좋아하는 맛 집의 장맛처럼 누구나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