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이 고통을 잊게 해 준다

[일]하루 한 페이지 나를 돌아보는 글

by 김형준

대형마트 수산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수산코너는 크게 손님을 불러 모으는 역할과 손님이 고른 생선을 조리할 수 있게 손질하는 역할이 있다. 우리끼리는 칼잡이라 불렀다. 호객은 분위기를 띄우고 시선을 끌어야 하기에 목소리만 크면 장땡이다. 반대로 칼잡이는 생선별, 조리법별 손질할 수 있는 기술을 필요로 한다. 신입은 호객부터 시작한다. 호객을 통해 매장 분위기를 익히고 손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자세를 배우게 된다. 경험이 쌓이면 매장 분위기를 주도하는 역할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매출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호객에 어느 정도 요령이 쌓이면 다음으로 칼잡이 단계로 넘어간다. 칼을 다루다 보니 충분한 연습과정을 거쳐야 한다. 호객하는 틈틈이 선배에게 손질하는 법을 배운다. 어느 정도 칼이 익숙해지면 본격적으로 일을 맡긴다. 하루 평균 수 백 마리는 거뜬히 손질할 수 있어야 한다. 대 여섯 시간 서 있는 건 기본이고, 장갑을 껴도 물집 잡히는 게 태반이다. 이런 고생을 겪어야 실력을 인정받고 신뢰가 쌓이게 된다.

그 당시 물집 잡히며 배운 기술은 지금은 쓸모없어졌다. 생선 장사를 하기 위해 기술을 배우려 했던 것도 아니었다. 칼을 잡는다고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몸담고 있는 곳에서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대단할 것 없는 기술이지만 나름 수련 과정을 거쳐야 배울 수 있다. 손질법을 배우고 몸에 익을 때까지 숙련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 시간동안 물집도 잡히고 육체적 고통이 따르게 된다. 비단 생선 다듬는 기술뿐만 아닐 것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무언가 배우기 위해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짧은 시간 얻어지는 게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중요한 건 고생을 동반한 일정 시간을 견뎌내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마흔을 넘기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졌다. 직장생활은 언제라도 멈출 수 있는 기름이 바닥난 자동차 같았다. 좋은 연료를 많이 넣어도 목적지는 바꿀 수 없었다. 대안이 필요했지만 찾지 못했다. 이때 느낀 무력감은 고통스러웠다.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몰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불안감은 고통을 가중 시켰다. 한편으로 수산코너에 일할 때처럼 고생되더라도 기술을 배운다면 덜 불안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었다. 이마저도 용기 낼 자신이 없었다.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연히 책을 접했다. 책은 삶을 움직이는 또 다른 동력이 되었다. 2년 반 이어왔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삶은 여전히 고통을 동반하고 있다. 매달 대출이자에 생활비, 할부금의 굴레를 못 벗어나고 있다. 직장생활의 수명은 연료를 넣어도 채워지지 않는 게이지처럼 바닥만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고생스러운 과정이 고통을 잊게 해 주었다. 역설적이게도 고생스러운 과정을 스스로 선택했지만 삶이 주는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책을 통해 하고 싶은 걸 찾았고, 하고 싶은 걸 구체화시키기 위해 꾸준히 글을 쓰는 건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낯설고 생소한 경험이다. 이런 경험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줄지 알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참고 견뎌야 할지도 알 수 없다. 3년, 5년, 10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불확실성에 기꺼이 올인 할 용기를 낸 건 하고 싶은 걸 하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반의 시간도 고생스러웠고 다가올 시간도 고생할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은 고생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고생을 즐기는 게 하고 싶은 것 없이 무기력하게 고통 속에 있는 것 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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