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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an 11. 2024

대설특보에서 웰컴투 삼달리로, 글쓰기는 확장이다

뉴스에서 대설특보로 잔뜩 겁을 줬다. 폭설이 예상되니 자가용 운전을 자제해 달라고 했다. 쌓인 눈으로 길이 미끄러울 테니 넘어지지 않게 주의를 요했다. 하루 동안 눈이 내리기는 했지만 걱정했던 폭설은 아니었다. 눈발은 가늘었고 그마저도 내리면서 바로 녹았다. 일부 지역에서 쌓이기는 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출퇴근길 교통 혼잡은 예상보다 덜 했다. 쌓인 눈을 기대했던 아이들도 허탈해했다. 일기 예보와 달리 이번 눈은 큰 혼잡 없이 지나갔다. 언젠가부터 눈 덮인 세상은 더는 낭만적이지 않았다.


직장인에게 눈은 출퇴근길을 방해하는 천덕꾸러기일 뿐이다. 눈으로 인해 도로는 정체되고, 자가용이든 버스든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다. 도로 대신 지하철로 사람들이 몰린다. 그런 탓에 지하철도 정시 도착을 장담하지 못한다. 출퇴근만 문제면 그나마 다행이다. 눈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직장이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제설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 남자는 군대에서 내리는 눈을 맞아가면 운동장에 쌓이는 눈을 치운 경험 한 번쯤 있다. 직장인이 되었지만 군대의 추억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눈은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눈은 자영업자의 매출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 회사는 점심을 주로 배달시켜 먹는다. 오전부터 내린 눈 탓에 중국집은 배달을 포기했다. 몇 곳에 전화했지만 모두 배달할 수 없다고 했다. 다른 매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두 바퀴로 달리는 오토바이는 눈길에서 위험하다. 마음껏 달렸다가는 언제 어디서 미끄러질지 모른다. 그러니 배달 주문을 받아도 배달기사에 따라 주문을 날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날은 특히 배달비도 부담이다. 오롯이 자영업자 주머니에서 부담해야 하니 말이다. 그들 눈에도 눈은 눈에 가시다.


그렇다고 마냥 눈이 천덕꾸러기인 건 아니다. 눈을 반기는 건 먹고사는 문제와 거리가 먼 우리 아이들 몫이다. 눈이 쌓이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릴 것이다. 쌓인 눈을 보면 이성의 끈을 풀고 미쳐 날뛴다. 내가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눈놀이에 신발과 옷이 젖어도, 땀으로 샤워를 해도 아랑곳 않는다. 세상눈이 다 사라질 때까지 뒹굴 태세다. 아이들에게 이만한 장난감 없다.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그 나이 때에만 가질 수 있는 감성일 테다. 그때 갖게 된 추억 덕분에 때로는 눈을 보며 낭만에 젖기도 한다.


눈 맞는 경험이 똑같아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다르다. 자신의 상황과 기억, 가치관에 따라 눈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진다. 누군가는 눈을 불편하게만 여기고, 누군가는 눈을 보며 추억을 떠올리고, 또 누군가는 눈이 그친 뒤를 걱정한다. 작가는 이처럼 다양한 모습을 글에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걸 적는 것도 중요하다. 더 나아가 타인이 겪을 불편과 즐거움까지도 글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 꼭 작가만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래서 글쓰기를 확장이라고 말한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직장인이 겪을 출퇴근길 불편을 생각해 본다. 내리는 눈을 보며 자영업자의 매출을 걱정해 본다. 또 내리는 눈을 보며 마냥 신나 했던 어릴 때 추억도 떠올려 본다. 이처럼 눈을 통해 의미를 확장해 보고, 불편을 생각해 보고, 눈이 준 경험을 떠올려보면 글을 쓰는 게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 그러니 글쓰기는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쓸 수 있는 게 글이다.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우리 모두는 글을 쓸 수 있다.      


드라마 <웰컴 투 삼달리>의 조삼달을 보며 확장의 의미를 생각했다. 조삼달은 후배의 모함으로 일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고향 제주도로 낙향했다. 혼자 있는 시간과 독수리 5형제(동네 친구들)의 도움으로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잘못 살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후배에게 진실을 말해달라고 물었다. 하지만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조삼달은 스스로 모든 상황을 받아들였다. 후배의 행동에 대해 이해해 보려고 생각과 이해를 확장시켰던 것이다. 결국 따져 묻기보다 자신의 마음이 편한 쪽으로 결정하고 선택했다.


아마도 현실에서는 '조삼달'같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눈눈이이, 당한 만큼 갚아주려는 게 사람 마음이다. 제아무리 마음 수련을 했다 한 들 나를 상처 내는 사람을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터다. 물론 주인공의 억울함,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게 세상 이치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런 상황일수록 마음의 평정심을 찾는 게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가 필요하다. 더욱이 보이는 대로 보지 않는, 세상의 이면을 보는 글쓰기가 도움이 된다. 상대방의 입장으로 생각을 확장해 이를 글로 써보는 행위가 어쩌면 나를 더 단단하게 해 줄 거로 믿는다.   




https://docs.google.com/forms/d/1vp7NafBv7Gdxi3xN7uf0tr1GV-aPT5lbsIZMryYnOlY/edit?usp=drives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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