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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an 14. 2024

6년째 매일 쓰게 된 단 하나의 이유

화재 현장에서 불이 시작된 곳을 발화점이라고 합니다. 마라톤 대회에서 달리기 시작하는 곳을 출발선이라고 하고요. 직장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도 킥오프 미팅을 갖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거의 모든 일에는 처음 즉, 시작되는 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철저히 준비된 시작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기분, 분위기, 상황에 따라 즉석에서 결정하고 행동하는 그런 일들입니다. 술 마시다가 바다 보러 가고, 일하다 말고 영화 보러 가고, 출근길에 딴 길로 새기도 합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아마도 뒷일을 생각했다면 즉흥적으로 행동하지 못했을 겁니다. 100이면 100,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우선 그 순간을 즐기고 보자입니다. 당장은 마음도 홀가분하고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세상 모든 걸 가진 기분입니다. 이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빠져듭니다. 어쩌면 더 잘 살기 위해 그런 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한 번의 일탈은 분명 삶의 활력소가 될 테니까요. 문제는 그 순간이 끝나고 난 뒤입니다. 뒷감당의 순간은 언제나 오기 마련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를 순간이 옵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직장을 뛰쳐나가길 세 번이나 했었습니다.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 해서는 안 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결과로 저는 물론 가족도 불편을 겪었고요. 매번 후회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세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이 정도면 상습범이나 다름없습니다. 직장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차로 끝낼 술자리가 2, 3차로 이어지는 건 애교 수준입니다. 자기 계발한답시고 수십만 원짜리 강의도 아무 생각 없이 긁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즉석에서 내린 결정은 그 끝이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즉흥적인 선택에 늘 따라다니는 게 하나 있습니다.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입니다. 직장을 뛰쳐나오기 전 가족 부양의 책임이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카드를 긁기 전 생활비를 따져봐야 했습니다. 술자리를 이어가기 전 다음 날 해야 할 일이 먼저인 것입니다.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순간의 감정을 핑계 삼아 내려놓았기에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일에 공짜는 없다고 했습니다. 순간의 치기로 일탈을 만끽했다면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아마도 그 순간이 더 괴로울 수 있습니다. 


대가를 치르고 나면 웬만해선 다시 시도하지 않을 겁니다. 더 이상 일탈은 백화점 쇼윈도에 있는 손쉽게 가질 수 없는 그런 것들이 되고 맙니다. 본능보다 이성을 따르는, 현실에 안주하는 그런 일상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 일탈과 거리가 먼, 늘 같은 일을 반복해 온 일상도 있습니다. 6년 전 어느 날 시작한 글쓰기입니다. 이제까지 매일 쓰면서 때로는 건너뛰고 싶은 유혹 숱하게 솟구쳤습니다. 글 쓴다고 당장 나아지는 게 없기에 그런 욕구는 더 컸습니다. 다행히 의지와 습관으로 지금까지 잘 버텨내는 중입니다.


매일 글을 쓴다고 누가 알아주지 않습니다. 오롯이 자기만족으로 이제까지 썼습니다. 때로는 적당히 핑계 대고 건너뛸 수도 있었습니다. 하루쯤 안 쓴다고 당장 무슨 일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그때까지 애쓴 나를 위해 일탈은 일종의 보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이유를 만들어 그날 써야 할 글을 안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안 쓰고 넘어간 날 즉, 일탈을 감행하고 되돌아올 때의 기분을 아직까지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안 해도 되는 경험이니까요.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남다른 각오로 시작한 만큼 후회할 결과를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남은 인생을 걸었기에 허투루 살 수 없었습니다. 일탈은 애초에 선택지에서 지웠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일탈의 쓴맛을 경험해 봤기 때문입니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는 게 맞는 말입니다. 그때는 스스로 보잘것없다고 여겼던 일들이 지금에 피가 되고 살이 되었으니까요. '지랄 총량의 법칙'처럼 이미 다양한 지랄을 떨어봤기에 글쓰기에서만큼은 일탈하지 않은 거로 생각됩니다. 


굳이 또 다른 이유를 찾자면 마음가짐인 것 같습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스스로 정한 규칙을 지키는 겁니다. 매일 쓰기로 한 약속을 어기지 않는 것입니다. 화창한 봄 날씨에 마음이 들뜬다고 기록했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술자리 대신 글을 썼고, 상사의 잔소리에 기분이 우울해지면 그 기분을 적었습니다. 언제 어디 어떤 상황에서도 글 한 편을 쓰겠다는 마음가짐이 결국 매일 쓰는 원동력이었습니다. '글쓰기의 8할은 마음가짐이고, 습관과 의지가 나머지이다'라고 저는 정의합니다. 매일 쓰고 싶으신가요? 마음가짐부터 단디해 보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1vp7NafBv7Gdxi3xN7uf0tr1GV-aPT5lbsIZMryYnOlY/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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