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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an 15. 2024

펜으로 먹고 사는 직업에 대하여

서른 살에 시작했으니 18년을 꽉 채웠습니다. 학생 때 수학을 못하고 숫자를 싫어했던 내가 18년 동안 그들과 동고동락해 왔습니다. 수학 공식은 공사에 필요한 자재 수량을 계산하는 데 필요했습니다. 주로 면적이나 체적을 구하는 공식을 사용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때 배우는 공식이 대부분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이미 수포자를 선언했던 터라 그마저도 쩔쩔맸었습니다. 수학공식이 필요할 때면 검색창을 열어놓고 시작했습니다. 이런 제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부단히 애써왔었습니다. 자질을 의심받을 테니까요.


아홉 번이나 직장을 옮겼지만, 어느 한 곳도 엑셀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 곳 없었습니다. 학생이 교과서로 공부하듯, 엑셀 프로그램은 저에게는 교과서나 다름없었습니다. 손에서 뗄 수 없었습니다. 이 말은 엑셀을 잘 다룰수록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교과서만 반복해도 학교 성적이 좋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알면서도 엑셀 프로그램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몰랐습니다. 변명하자면 수학 능력이 부족한 제게 엑셀 명령어는 외계어나 다름없었습니다.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 없는 존재였었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게을렀습니다. 이 일로 먹고살아왔다면 더 부지런히 공부해야 했습니다. 수학을 공부하고, 엑셀 프로그램을 배우고, 숫자와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내 일에 진심이었다면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래야 하는 게 맞습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이니 언젠가 떠날 거라고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정작 떠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으면서요. 스스로를 괴롭혔던 시간이었습니다. 나이만 먹었을 뿐 나이에 맞게 성장하지는 못했습니다. 내 일에 미안할 따름입니다. 


초등학교만 나와도 누구나 읽고 쓰는 게 가능합니다.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잘 쓸 줄 몰라도 먹고사는 데 큰 지장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 중 읽고 쓰기가 필요치 않는 일도 얼마든 있습니다. 전문 작가처럼 글로 먹고사는 직업이 아닌 이상 읽고 쓰는 능력은 일종의 옵션일 뿐입니다. 대부분의 직업에서 읽고 쓰는 능력이 필요하나 필수 조건은 아닙니다. 18년 동안 같은 일을 해오면서도 읽고 쓰기는 그다지 필요치 않았습니다. 실력은 읽고 쓰기를 멈췄던 초등학교 어느 때 수준입니다. 그러니 펜으로 먹고사는 작가가 웬 말이었을까요?


18년 동안 겉돌기만 했던 제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죽기 살기로 해보고 싶은 게 생겼습니다. 진작에 마음먹었더라면 조금 더 실력 있는 기술자가 되었을 텐데요. 그런 아쉬움을 만회할 각오로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이상 같은 후회를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미련, 아쉬움, 미안함, 후회, 포기 같은 단어 대신 끈기, 열정, 끝장, 미치고 환장했다는 소리를 들어 볼 작정입니다. 삶을 마감하는 순간 적어도 단 한 사람에게라도 박수받는 인생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그간의 아쉬움 모두 털어낼 수 있을 만큼 말이죠. 


쪽팔리지 않게 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뒤처지기 싫었습니다. 재능은 없을지 몰라도 끈기 하나는 자신했습니다. '포기'는 없는 단어로 여겼습니다. 모르면 배웠고 배우면서 친해졌습니다. 예전의 저는 모르면 뒷짐 지고 아는 척했었습니다. 그러니 늘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르는 걸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래야 배울 기회도 생기고 마음가짐도 달라질 테니까요. 재능은 타고난다기보다 만들어진다고 믿습니다.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스스로 증명해 보이면 그만입니다.


18년 동안 같은 일을 해오면서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았습니다. 내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결과가 늘 불평만 늘어놓고 고만고만 일상을 살아온 모습이었습니다. 후회 덩어리 인생을 살아봤으니 앞으로는 다르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읽고 쓰기로 세상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다만 저 하나는 구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 하나 바뀌어 운이 따르면 몇몇에게도 변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거면 충분합니다. 초고층 빌딩을 쓰러뜨릴 힘도 손톱만 한 도미노부터 시작할 테니까요.   



ttps://youtu.be/K8isdc7cH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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