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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복 Jul 12. 2019

[소선재 한담 13] 비교하고 차별하는 마음과 결별하라

우리의 마음이 평온하거나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다양하다. 누구는 욕심(혹은 욕망)에서 찾고, 누구는 삶이나 죽음에서 찾는다. 만일 내가 지금보다 더 부자라면, 돈이 많다면, 출세를 했다면, 행복할까? 그러면 내 삶은 더 풍요롭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철학과 종교는 말한다.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하라고.


학생들과 지인들을 상담하면 현실의 삶이 주는 고통의 원인을 자신이 과거에 겪은 나쁜 경험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과 무관심 때문에 현재 자신의 모든 삶과 인간관계가 풀리지 않는다는 푸념은 낯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나쁜 경험으로 인해 미래의 삶마저도 불행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괴로워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겉으로는 자신이 겪은 과거의 나쁜 경험과 기억을 말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과 남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차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과 친구의 부모를 비교하고, 자신과 형제자매를 비교하고, 심지어 자신과 친구 혹은 지인의 남편이나 아내를 비교한다. 단순히 누구와 누구를 비교하는 수준에만 그치면 문제 해결은 비교적 간단하다. 더 심각한 것은 자신도 모르는 새 그들은 자신과 누구를, 무엇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차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장과정에서, 혹은 현재의 삶에서 우리는 자신이 부모에게서 다른 형제자매와 비교 당했거나 혹은 차별 당한 경험이 적지 않다. 성적을 이유로, 인성이나 품행을 이유로, 신체나 외모를 이유로 우리는 어릴 때부터 부모나 교사 혹은 사회로부터 얼마나 많이, 또 지속적으로 비교되고 차별을 받았던가. 만일 우리가 그런 잘못된 인식과 관행을 인식하고 불합리한 연결고리를 과감하게 잘라버리면 이 문제는 쉽게 극복 내지는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대우를 받은 우리는 자신과 다른 누구를 비교하고 차별하는 잘못을 되풀이한다. 처음에는 자기 자신과 가족 혹은 지인을 비교하고 차별하지만 점점 분별심을 잃어가면서 다른 사람이나 특정 집단을 그 대상으로 외연을 넓힌다.


사회적 지위나 권력, 자본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 등은 자신에 비하여 절대적인 비교우위에 있으니 애당초 차별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들은 이미 자신이 넘을 수 없는 우월한 지위에 있으니 선망의 대상일 뿐 비교하거나 차별할 마음조차 갖지 않는다. 이제 비교와 차별의 화살은 약자를 과녁으로 삼는다. 가난하여 권력이나 자본,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가질 수조차 없는 이들이 주로 그 대상이다. 심지어 자신이 믿는 종교나 신념 혹은 성적 취향 등 가치관에 반하는 이들을 비교와 차별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약자를 부당하게 차별하는 관행을 넘어 혐오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혹은 우리) 자신과 그들을 비교하고 차별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


비교와 차별, 그리고 혐오에 익숙한 사람들이 구사하는 말을 들어보면 자신이 옳다고 믿는 ‘어떤 것’에 대한 ‘절대 확신’에 가득 차있다. 그것은 종교나 신 혹은 신념이나 가치관일수도, 또 자신이 겪고 체득한 경험이나 지식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보이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상담을 할 때 나도 처음에는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친절하게 대하려 갖은 애를 쓴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나의 말에서 그저 위안을 받기만 바랄 뿐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아무런 의지나 노력이 없다는 판단이 드는 시점이 있다. 그 순간이 오면 나는 그들과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는다. 나와 그들에게는 변화가 올 때까지의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고,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지금 당장 ‘과거’ 혹은 ‘과거의 나쁜 경험(이나 기억)’과 결별해야 한다. 과거는 헤어진 첫사랑과 같다. 이미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여 살고 있으면서 아직도 첫사랑에 대한 환상과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과거의 나쁜 경험(이나 기억)’은 흘러가버린 강물과도 같다. 새로운 강물이 상류에서 쉼 없이 흘러내리는데 과거의 강물에 발을 담그고 서서 옛 사랑에 얽매여 울고불고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바로 과거와 결별할 것. 누구와 누구를, 무엇과 무엇을 비교하고 차별하는 나쁜 습관과도 결별할 것. 결별은 아픔이 아니라 평안을, 고통이 아니라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20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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