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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복 Jul 06. 2019

[소선재 한담 12] 텃밭에는 먹을거리가 가득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작은 텃밭에는 먹을거리가 가득하다. 상추, 쑥갓, 치커리는 봄 식탁에는 빠질 수 없는 채소다. 한 번 자라기 시작하면 잎을 뜯고 나서 하룻밤만 지나면 다시 쑥쑥 자라난다. 자신들의 온몸을 바쳐 보시를 행하니 불보살이 따로 없다.


6월이 되면 깻잎과 풋고추가 한창이다. 텃밭에서 직접 거둔 깻잎의 향은 상큼하기 이를 데 없다. 서서히 날이 더워지면서 몸은 지치고 입맛이 없다가도 깻잎 몇 장 따다 상추 한 잎을 보태어 쌈 싸먹으면 절로 밥 한 그릇 뚝딱이다. 거기에 쌈장에 풋고추를 찍어먹으면 세상만사 태평이다. 돈이 많으면 뭣하고, 지위가 높으면 뭣하랴. 욕심이 없어지니 나날이 행복하다.


이때쯤이면 방울토마토도 익기 시작한다. 익는 대로 한 두 개씩 따먹는다.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맛에 과즙은 얼마나 풍부한지 모른다. 모든 과일을 대형마트에서 사서 먹는 도시민들은 자연의 맛을 알지 못한다. 상품성을 높이고 소비자들에게 시각적 효과를 주기 위해 농부들은 출하시기를 조정한다. 그 속에 유통기간이 포함됨은 물론이다. 아무리 ‘총알배송’을 한들 수확하고 하루 이틀은 필요하니 그만큼 신선도가 떨어진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지인들이 텃밭을 방문하곤 한다. 이제껏 손에 호미를 들고 땅 한 번 제대로 파고 일군 적이 없는 이들이다. 한 분야에서 고도의 지식을 체득하고,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올라 있은들 뭣하랴. 파와 마늘도 구분하지 못하니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일자무식꾼인 셈이다.


도시민들은 돈만 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화려한 도시의 삶은 ‘의존적’이고 ‘기생적’이다. 외부에 기대어 기생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그들의 삶은 위태롭고 불안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도시를 떠나지 못한다. 아니 도시를 떠나는 삶을 생각조차 않는다.


하지만 우리 모두 당장 도시를 버리고 시골에서 살 수는 없다. 사회는 어차피 도시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또한 우리의 직업과 생활 기반이 도심에 있으니 싫든 좋든 도시에 살 수밖에 없다. 해답은 ‘도시의 재편’이다.


수도권과밀화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 여파로 지방의 불균형이 심화되어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물론 아예 공동화되어 고사하고 있는 지역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땅이나 주택을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하고 소유하는 일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 도시농업 혹은 도시텃밭 중심의 생활경제 혹은 공유경제 형태로 도시의 완전하게 재편하지 않고는 우리의 삶은 불안하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밤새 내리던 비도 그치고 날이 밝았으니 텃밭에 내려가 봐야겠다. 옥수수는 쓰러지지 않았는지, 웃자란 토마토 줄기는 휘어져 꺾이지 않은지, 기세 좋게 뻗어나가는 호박넝쿨은 다른 작물을 휘감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고 돌봐야 한다. 그리고 청아한 목소리로 나를 맞는 참새들이 달콤하게 익어가는 아로니아를 훔쳐 먹는지도 봐야한다. 이 욕심쟁이들은 내가 먹을 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않고 싹쓸이해 가버리기도 한다. (2019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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