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재 한담 11] 세 개의 사과는 살아 남을까
작년 봄 이웃에 사는 선배교수께서 청송에서 가져온 사과나무 네 그루를 주었다. 두 그루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이웃에게 주고 나머지 두 그루는 텃밭에 심었다.
과실수는 가지치기(전지)를 하고, 병충해 방제를 위한 약도 자주 쳐줘야 한다. 하지만 여름 내내 전혀 돌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사과나무 주위에는 옥수수가 둘러싸고 있어 나무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지도 못했다. 8월 말 옥수수를 따내고 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뽑고 보니 사과나무 하나에 사과 하나씩 매달려 있었다. 한여름 더위와 햇볕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고 못생긴 사과는 더운 햇빛에 열상을 입은 데다 병충해까지 입어 표면 군데군데 크고 작은 검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그날부터 가끔 발효액(EM 이엠)을 물에 희석하여 한 번씩 쳐주었다. 식물 영양제에 불과한 이엠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마는 제대로 돌보지 못한 그간의 미안함을 덜 길은 그것 밖에 없었다.
다행히 곧 떨어질 것만 같은 사과 두 개는 잘 버텨주었다. 어느 정도 빨갛게 익었다고 판단한 어느 날 사과를 땄다. 귀한 보물을 모시듯 품에 안고 와서는 물로 씻어 아내와 하나씩 나눠 먹었다. 모습은 작고 볼품없었지만 사과 맛은 기가 찼다. 한 점이라도 버리기 아까워 꼬투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먹었다.
올봄이 되니 사과나무는 한층 기세 좋게 가지를 뻗었다. 곁가지를 자르고 정리해주고는 그대로 두었다. 돌봐야 할 다른 작물이 적지 않은데다 과실수를 키워본 경험이 없으므로 내가 달리 해줄게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약을 치지 않으면 병충해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무농약 고수는 텃밭농사를 짓는 나의 원칙이기도 하니까.
어느 날 보니 한그루에 사과 세 개가 달려 있었다. 약도 치지 않는데 버텨 내려나란 마음으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어제 다시 확인해보니 그새 제법 알이 커져 있었다. 하지만 사과 세 개가 앞으로 넘어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
장마가 오락가락하면서 날이 흐리면 일조량이 적어 생육이 저조하고 병충해에 걸리기 쉽다. 과수농가에서는 보통 장마 전과 후, 그리고 비가 그친 날에 병충해 방제를 위한 약을 친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니 사과나무는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병충해를 견뎌야 한다.
장마가 그치면 본격적으로 한여름 불볕더위가 시작된다. 매일 30도를 웃도는 맹렬한 더위와 강렬한 햇빛은 과실의 당도를 높이지만, 반대로 열상을 입는 등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별다른 경험이 없는 나는 사과가 이 더위를 견디고 살아남기만을 바랄 뿐이다.
사과든 사람이든 무모한 원칙주의를 고수하는 주인과 부모를 만나면 여간 고생이 아니다. 매순간 사과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열악한 상황에 적응하고 살아남든가, 아니면 포기하든가. (2019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