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씨감자를 심고 나서 하지 전후에 감자를 캔다. 줄기가 노랗게 색이 변하고 마르기 시작하면 감자를 캘 때가 되었다. 이때가 보통 하지쯤이다. 하지를 지나 6월말이 되면 장마가 시작되니 큰 비가 오기 전에 감자를 캐야 한다.
올해는 예년보다 장마가 일주일 늦게 시작된다고 하여 하지가 지나고 며칠 후에 감자를 캤다. 시험적으로 두 개의 이랑에서 감자를 거뒀다. 호미를 들고 감자 줄기를 처음 들어낼 때가 가장 설렌다. 어설픈 초보 농부라 매년 농사를 지어도 수확을 장담할 수가 없다. 어느 해는 농사가 잘됐다 싶어도 그 다음 해에는 제대로 알이 맺혀있지 않는 수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올해는 감자 농사가 웬만큼 잘 되었다. 줄기를 젖히고 호미로 흙을 살살 긁어내니 크고 작은 감자가 줄줄이 달려 나온다. 이럴 때면 마치 금덩이를 줍는 기분이다. 땀이 흐르는 것도, 허리가 아픈 것도 잊고 감자를 캐어 담는 일에만 열중한다.
봄에 씨감자 4킬로그램을 사서는 이랑 아홉 개를 만들어 심었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틈틈이 잡풀을 뽑으며 지극정성을 들였다. 남들이 하는 토양소독을 하거나 비료와 농약을 조금도 사용하지 않으니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한 번 병이 와서 퍼져버리면 걷잡을 수 없다. 하지만 생업을 목적으로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니 굳이 농약이나 비료를 뿌려가면서까지 더 많이 거둘 생각은 없다.
땅이 주면 주는 대로 거두고 먹는다. 내가 텃밭농사를 짓는 마음가짐이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마을 농부들은 수시로 “농약을 쳐라, 비료를 뿌리라”고 요구한다. 그때마다 나는 “생기면 생기는 대로 먹을 랍니다”며 완곡하게 거절한다. 몇 년 간 서로 이런 대화를 주고받아도 내 태도가 변하지 않으니 이제 포기했는지 아니면 아예 방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수확한 감자를 한 상자 가득 담아 가장 먼저 장인 장모님한테 갖다 드렸다. 지인 몇 분과도 조금씩 나눴다. 나머지는 한나절 정도 흙을 말리고는 공기가 잘 통하는 상자에 담아 창고에 넣어 두었다. 겨울까지 우리 가족이 먹을 든든한 반찬거리가 되겠지.
감자를 거둔 날부터 내리 몇 끼 감자만 삶아 먹었다. 포실포실한 것이 여간 맛있지 않다. 구중궁궐의 산해진미를 먹은들 이보다 더 맛있을까? 감자 한 개가 주는 행복에 산골의 하루해가 저문다. 이만하면 됐다. 무엇을 더 바라고 이룰 것인가? (2019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