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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복 Jul 06. 2019

[소선재 한담 9] 지식인의 죄 짓지 않는 삶

몇 해 전 후학이 내게 '지식인의 죄 짓지 않는 삶'에 대해 물었다. 댓글로 간단히 답을 했는데, 조금 다듬고 보충한다.


만일 지식인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죄 짓는 겁니다.


- 흐르고, 또 흘러 내려야 하는 데도 고여 있으면 죄 짓는 겁니다.

- 부단히 고정관념의 틀을 깨트리지 못하고, 그에 사로 집히면 죄 짓는 겁니다.

-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지 못하면 죄 짓는 겁니다.

- 눈 뜨고 있을 때나 눈 감고 있을 때, 심지어 잠잘 때조차도 깨어있지 않으면 죄 짓는 겁니다.

- 세상에 속는 줄도 모르고 그 세상을 속인다고 생각하면 죄 짓는 겁니다.

-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며, 세치 혀로 교언영색하면 죄 짓는 겁니다.

- 지식의 본질을 깨우치지 못하고 무지하면 죄 짓는 겁니다.

- 무엇보다 바르게 배우고, 바르게 깨닫고, 바르게 실천하지 않으면 죄 짓는 겁니다.


이렇게 답글을 쓰고 보니 과연 나 스스로 세상에 죄 짓지 않는 지식인의 삶을 살고 있는지 자문을 해본다.


한 분야의 전문지식을 추구하는 지식인으로 살다보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고정관념’과 ‘자만’이다. 내가 남들보다 무엇을 조금 더 안다는 것은 사실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혹은 당연히)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빠진 것일 수도 있다. 또 더러는 자만이나 교만에 빠져 지식인이 가져야 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나 행동을 하지 못하고 오류에 빠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연유로 지식인은 늘 자신에게 되물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지식인이 무엇을 안다고 할 때 ‘제대로’, 즉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자신이 제대로 알지 못하면 결국 억지논리를 펴거나 우기게 된다. 물론 지식인이라고 하여 세상의 모든 일의 본질과 현상에 대해 모두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또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해서는 ‘알아야’ 한다. 앎과 모름의 경계만 제대로 인식하고 있어도 제대로 아는 것이다. 그래야 오류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는다.


학문의 연륜이 깊이지면 지식의 폭과 깊이도 성숙하는 법이다. 문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부단히 변화하는 새로운 가치와 이념, 그리고 현상이다. 제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고 탁월한 지식인이라 할지라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이 체득한 지식은 ‘과거’에 머물고 만다. 하지만 개인이 아무리 노력한들 끊임없이 다가오고 쓸려가는 새로운 무한지식을 모두 체득할 수는 없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옛것을 배우고 익혀 그에 비추어 새로운 것을 이해하고 아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른바 온고지신()이다.


지식인은 나이 들수록 특히 사고가 딱딱하게 굳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몸이 굳는 것이야 노화의 과정이니 피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사고가 부드럽고 유연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개인이 마음먹기 나름이다. 지식인은 죽는 순간까지 사고의 유연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사고의 경직은 곧 지식인을 묻는 무덤이요 죽음이다.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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