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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형복 Jul 06. 2019

[소선재 한담 8]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두 마디 말을 잘 하지 못한다. 아니 이 말을 겉으로 표현하는 데 아주 인색하다. 서로의 단점만 꼬집어 내어 힐난하는 정치인들은 물론 자칭 타칭 많이 배웠다는 식자층인 교수들도 똑같다. 감정 표현이 서툰 것은 좀 더 배우고 못 배우거나, 또 경제적으로 가지고 못 가진 층으로 나누어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나누고 분류하든 자신의 속내를 타인에게 쉬 드러내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이토록 감정표현에 미숙하고 서툴까? 최근에는 감정표현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며 감정코칭을 받기도 한다. 성장 과정에서 겪은 내외부의 여러 요인과 경험으로 우리 내면에는 ‘억압된 자아’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만 한 살부터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아이들은 쉼 없이 종알대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러다 서서히 어른의 눈치를 보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강한 시그널을 받는다. 자신의 감정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아이들은 개성 강한 유형으로 평가받기 보다는 ‘되바라진’ 혹은 ‘막돼먹은’ 아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어른들의 인식은 또래아이들에게도 전이되어 소위 ‘톡톡 튀는’ 아이들은 점점 소외되고 따돌림을 당하곤 한다.


어릴 때 형성된 이 감정과 경험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된 대학생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수업 시간에 아무리 질문을 하라도 해도 선뜻 나서는 학생들이 없다. 참다못해 선생이 어느 학생을 지목하여 질문을 하면 대게 ‘짧고 굵게’ 단답식으로 답변하고 만다. 연구실에서 학생 면담을 하면서 물었다. “자네들은 우리와는 달리 토론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세대들인데도 왜 그리 질문을 하지 않는가? 답변을 하더라도 왜 그리 짧게 회피하듯 대답하는가?” 그 답변은 의외였다. 한마디로 “다른 학생들(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는 거였다. 제대로 답변하면, “너만 똑똑하고 잘 났냐?”, 반대로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면, “그것도 모르냐?”는 식의 평가가 이뤄지므로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최선책이란다.


내 경험상 부부 혹은 부자지간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갈등은 감정표현을 하지 않거나 또는 그에 미숙해서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고마우면 “고마워” 감사한 마음을, 잘못했으면 “미안해” 죄송한 마음을 표현하면 된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자녀들이 부모들에게도 진심을 담아 자신의 마음을 서로에게 드러내면 얼마나 좋을까?


경상도 출신답게 아버지, 어머니는 ‘속정’이 깊은 분들이었다. 두 분은 서로에게 한 번도 허심탄회하게 ‘고맙다, 미안하다’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그 대신 그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거나 더러는 오히려 그 마음은 격한 감정이 섞인 언행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부모님의 그 ‘속정’을 (감성적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나 역시 부모님 살아생전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라는 진심 어린 내 마음을 한 번도 전하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참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노릇이다. 나는 왜 자연스럽게 내 감정을 고백하지 못했을까? 그때 하지 못한 막내아들의 마음을 이제야 두 분께 전한다.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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