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조정에서 퇴궐하여 돌아오니 집의 마구간이 불에 타 있었다. 공자는 “사람이 상하지 않았는가” 묻고는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논어, 향당 12)
논어 <향당()편>에 나오는 이 예화는 우리에게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말이나 사람이나 모두 생명 있는 존귀한 존재임에도 공자는 왜 사람의 안위만 묻고는 말에 대해서는 일체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어떤 위기 혹은 재난상황에서 우리는 사람의 생명을 우선시하고 동물의 안위는 무시해도 좋을까? 공자의 이 말은 인간중심주의적인 사고가 아닌가 등.
주자 이후 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하였다. 공자가 말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사람이 상하고 다쳤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미처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사람과 말(동물)이 동일한 위험이나 위기상황에 놓여있다면 말보다는 사람을 우선하여 구해야 한다. 사람을 귀히 여기고 동물(혹은 가축)을 천히 여기는 것은 하늘이 정한 이치이자 도리다.
이 말을 위와 같이 해석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사회상황이나 사고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가 생존하던 당시는 일인 군주 중심의 패권이 당연시되고, 계급과 신분에 의해 사람의 차별적 대우가 고착화되어 있었다. 그 당시의 상황에서 바라보면, 공자는 오히려 인본주의()에 입각하여 사람을 중히 여기는 행동하고 있으니 시대에 한참 앞서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인권 개념은 근대 유럽의 정치와 지식의 산물이다. 일반적으로 근대적 의미의 인권이 처음으로 공식 문서를 통해 구체화된 것은 18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다. 그 전형적인 사례가 1789년 프랑스혁명 때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 일명 ‘프랑스인권선언’이다. 라파이예트와 시이예스가 이 선언의 초안을 작성하였고, 1789년 8월 26일 국민의회에서 채택되었다.
하지만 인권에 관한 선언이 채택되었다고 하여 개인과 집단의 권리가 한순간에 보장되고 확립된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경우를 보더라도 대혁명부터 파리코뮌까지 약 백 년 동안 사회와 정치상황은 격변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사라졌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살육은 20세기에도 이어져 급기야 나치정권은 홀로코스트라는 전대미문의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대량학살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정치와 종교 혹은 인종 등을 이유로 사람의 생명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는 야만이 끊이지 않고 있으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인간은 왜 이리 모질고 사악할까.
굳이 거창하게 인권에 관한 지식이나 제도 운운할 것 없이 우리가 그동안 가까이서 배우고 익힌 고전이나 텍스트에서도 충분히 인간존중의 사상과 미덕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동물복지담론을 떠나 적어도 일상의 삶에서 돈이나 물건보다는 사람의 안위를 먼저 묻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공자처럼 물어야 한다.
“사람이 상하지 않았는가?”
인권을 실천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2019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