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언제나 그림자처럼 내 뒤에
“넌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받니?”
교양 강의가 끝난 뒤 학생들과 개별 면담을 하느라 정신없던 시간이 지나가고 겨우 틈이 나 연결된 휴대전화 너머로 화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다. 어머니는 나나 다른 가족들이 일이 바빠 혹시라도 전화를 받지 못할 때면 이유 불문하고 언성을 높인다. 때로는 다 큰 자식이 바빠서 전화를 못 받은 것이거니 이해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어머니의 유별난 반응은 우리 가족에게 갑자기 찾아온 특별한 사건, 바로 이모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와 마당에 나가 나무 가지 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엄마가 부엌에서 오열하며 소리를 질렀다. 놀라서 달려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어머니는 “정선이가 죽었대……”라고 말씀하셨다. 정선이는 내 막내 이모였다. 내게는 이모가 여러 명 있는데 특히 엄마는 막내 이모와 친했다. 자주 만나서 고달팠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위안이 되어주던 사이였다. 불과 얼마 전에 이모를 보고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내 기억 속에서 밝게 웃던 이모의 모습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장례식장의 영정사진 속 모습으로 바뀌어버렸다.
엄마는 이모가 죽던 그 날, 이모에게 전화를 여러 번 걸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설마설마했는데, 이모는 그날 식당에서 일을 하다가 갑작스러운 가스 누출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당연히 어머니의 전화도 받지 못했고…….
엄마는 그날 이후 가족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대뜸 화부터 내신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날의 충격이 가슴속에서 쉬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거나 사고를 당해 언제 죽을지 아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죽음은 언제 나에게, 언제 사랑하는 이들에게 찾아올지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몇 개월 뒤에 죽을 수도, 며칠 뒤에 죽을 수도 있고, 여행을 가다 죽을 수도, 길을 건너다 죽을 수도, 자다가 죽을 수도 있다.
죽음은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찾아온다. 우리가 거의 매일 스마트폰 기사에서 접하는 누군가의 죽음, 기사나 영화, 드라마에 나오는 죽음은 실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과 사랑하는 이에게 반드시 찾아올 실체이다.
예일대학교 철학 교수 셸리 케이건(Shelly Kagan)은 죽음의 특징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케이건은 죽음의 특징을 필연성(necessary), 보편성(universality), 예측 불가능성(unpredictability), 편재성(ubiquity)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죽음의 필연성에서 ‘필연(必然)’은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 ‘우리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의 보편성에서 ‘보편(普遍)’은 ‘모두 빠짐없이’라는 뜻으로 ‘우리 모두는 죽는다’를 뜻한다. 죽음의 예측 불가능성은 말 그대로 죽음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으로서,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의 편재성에서 ‘편재(遍在)’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의미로 ‘우리는 어디에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의 필연성과 보편성을 합쳐보면, ‘우리 모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사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예측 불가능성’과 ‘편재성’이다. 예측 불가능성은 시간의 영역에, 편재성은 공간의 영역에 속하는데, 쉽게 말하면 죽음이 시공간에 가득함을 뜻한다.
과거를 예측할 수는 없다. ‘예측’하는 것의 대상은 언제나 미래에 있다. 살아 있는 자에게 죽음은 미래의 사건이다. 그러나 보통 우리는 ‘미래’라고 하면 ‘저 멀리’ 혹은 ‘언젠가’ 등 지금부터 매우 먼 거리로 인식한다. 하지만 미래는 그저 지금 이후를 말하는 것뿐이다. 몇백 년, 몇십 년, 몇 년, 몇 개월, 몇 시간, 몇 초 후도 미래다. 따라서 죽음의 예측 불가능성은 단 몇 초 뒤에 죽음이 올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죽음의 편재성은 무엇일까. 집, 학교, 학원, 회사, 목욕탕, 음식점, 백화점, 우체국 등의 공간에는 각각의 쓰임새가 지정되어 있고 우리는 그 공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무엇을 할지 알고 있다. 그러나 죽음이 찾아오는 공간은 지정되어 있지 않다. 물론, 병원이나 장례식장처럼 죽음과 가까운 장소가 있긴 하지만, 죽음은 길 한복판에서 찾아올지, 학교, 집, 회사, 자동차, 술집, 음식점, 산, 하늘, 바다, 강 등 어느 곳에서 찾아올지 예측할 수 없다.
종종 살아가면서 깜짝 놀라게 되는 때가 있다. 미리 예측하고 대비한 일이 일어난다면 잘 대처할 수 있지만, 보통 놀라는 경우는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 돌발적으로 발생했을 때다. 갑작스러운 이모의 죽음에 어머니가 놀라며 오열한 것도 이모가 죽을 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죽음은 떼어낼 수 없는 그림자처럼 언제나, 어디에나 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의 배후를 뒤따라 다닌다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