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즐겁게 #01
안심해도 된다. 직장을 그만둘까 고민하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이다.
혹시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절대로 그만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되면 오히려 한 번 쯤은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방치하면 어느 순간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오거나, 자존감을 떨어뜨리면서까지 직장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직장을 그만둘까 고민하는 것은 직장인에게 있어,
1)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 아니라
2) 정기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아갈 방향을 점검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지나치게 자주 고민하지만 않으면 된다. 가령 1년 내내 직장을 그만둘까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데(보통 아쉽게도 고민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이건 그 사람과 동료, 회사 모두에게 좋지 않다. 1년 혹은 6개월에 한 번 정도가 가장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이건 사람마다 다르니 각자의 성향에 맞춰 조정하면 되겠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직장을 다닐 지, 그만둘 지'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까 하는 것이다.
1. 나는 성장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선뜻 'Yes'라고 답하지 못한다면 일단 빨간 불이 크게 켜진 것이다. 나이와 연차, 직급, 업종에 관계 없이 성장이 멈춘다는 것은 직장인에게 있어서는 악몽의 시작이다. 일단 충분히 성장하고 있다면 연봉을 올릴 기회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다. 아무리 취업난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도, 회사는 '업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하는데 늘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성장이 멈췄는데 그 상황을 방치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악화된다. 현실을 회피하거나 아니면 자꾸 타협하기 시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처음 얼마 동안은 괜찮다.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성장판이 완전히 닫히게 되면, 이를 되살리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 노력을 할 바에는 처음부터 성장판이 닫히지 않도록 자신의 상태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낫다.
성장은 아래와 같은 질문으로 측정할 수 있다.
- 기존 업무를 빠르고 쉽게 할 수 있게 되었는가?
- 깊이 있게 파고들 수 있는가?
- 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가 넓어졌는가?
- 업무와 업무 간의 연결고리가 보이게 되었는가?
- 시간을 들여 풀고 싶은 문제와 방법들이 생겨났는가?
업무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나게 되면 '그 업무에 대한 경험이 얼마나 많은가'보다는, '어떤 관점과 태도로 업무를 대하는가' 하는 부분이 성장의 속도에 더 많은 영향을 주기 시작하게 된다.
2. 즐거운가?
일을 잘 하게 되고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면 신바람이 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만약 업무적으로 충분히 성장하고 있는데 하나도 즐겁지 않다면 뭔가 큰 문제가 생긴 것이다. 가장 흔한 이유는 1) 선택이 틀렸거나, 2) 상황이 변했기 때문이다.
직장에 대한 정보는 굉장히 적다. 직장을 경험한 사람들은 (예의상) 전 직장에 대해서 잘 이야기하지 않고,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말을 아끼거나 좋은 이야기만 해준다. 그렇다고 익명으로 직장생활을 이야기하는 공간에는 편향된 내용들이 많다. 일반적으로 어떤 직장의 좋은 점은 그 직장은 안 좋은 점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 좋은 점만 듣거나 반대로 안 좋은 점만 들어서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상황을 어렵게 하는 것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정보는 실제로 경험한 것과는 굉장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가령 컨설팅 업무는 밖에서 보기에 연봉도 높고 굉장히 화려해 보인다. 실제로 이러한 업무를 잘 하는 사람도 있고, 실력을 인정받아 파트너가 되거나 주요 기업들의 핵심 보직으로 스카웃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살인적인 스케쥴에 시달리거나 '이미 정해져 있는 답'을 위한 백업 논리를 만들기 위해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최고의 컨설턴트들이 모여 정말로 '스마트폰은 찻잔 속의 태풍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보고했을까?
상황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회사가 내게 맞을까를 고민한다. 그러나 여러 번 이직을 하면서 느낀 것은, 어떤 회사보다는 '언제' 그 회사에 들어갔는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의 언제는 '얼마나 빨리'와 같은 의미가 아니다. 그 회사가 '변화' 혹은 '안정' 중에 어떤 것을 더 필요로 하는가에 더 가깝다. 가령, 빠르게 성장이 필요한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상과 이미 커버린 조직을 안정적으로 끌고가는 것을 원하는 회사에서 필요한 인재상은 매우 다르다. 연애로 치면, 누구를 만났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을 '언제, 어느 상태에서' 만났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렇듯 실제로 자신이 생각한 것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거나 회사의 상황이 달라졌을 때, 개인의 성장과는 무관하게 일의 즐거움 혹은 업무 만족도는 급격히 낮아지게 된다.
3. 할 만큼 했나?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은 (아무리 각오를 되새겨도) 생각보다 큰 변화이다. 익숙함과 지지기반을 잃고 새로 처음부터 업무와 환경을 익혀야 한다는 것은, 새로운 직장에 적응을 잘 하는 사람에게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직장을 그만둘 때는 미련을 남기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직장인은 세 가지 선택을 가진다.
1)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대한 노력한다
2) 다른 부서를 적극적으로 알아본다
3) 회사를 떠난다(다른 회사를 알아보거나, 일단 그만둔다)
다른 회사로부터 정말로 좋은 오퍼를 받은 것이 아니라면, 1번 > 2번 > 3번으로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만큼 리스크도 적고, (괜찮은 회사라는 것을 전제로) 최선을 다해 1번을 한 사람에게는 2번의 선택이 분위기도 전환하며 자신의 강점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작용하게 된다.
직장을 다니면서 싫어하는 몇 가지 말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라는 표현이다. 이건 '기업'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는데, '개인' 차원에서까지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다. 뭔가 문제가 있으면 자신이 적극적으로 상황을 해결해보려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2번의 경우라면 자신이 가고 싶은 부서는 스스로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1~3번을 하지 않고 단순히 버티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된다.
직장을 떠나기 전에 스스로 납득할 만큼 고민을 했는지가 중요한 것은, 직장을 옮겨도 한 번 발생했던 문제는 시차를 두고 끈질기게 자신을 따라오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나이가 어렸을 때 자신에게 발생한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이 좋다. 연차가 올라갈 수록 잃을 것이 너무 많아지고,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서기 까지의 회복이 점점 더 어렵게 된다.
4. 잃을 것이 많은가?
마음은 회사를 떠나는 것이 좋다고 느껴지는데 잃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있다. 자신감은 바닥까지 내려가고, 지금 회사를 그만두면 같은 수준의 직장을 다시 구하기 어렵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잃을 것'이 더 커보일 때 어떤 결정을 해야할까.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이런 생각이 들면 미련없이 다른 부서 혹은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 좋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철칙으로 삼을만한 것이 있다면, 절대로 '나'를 잃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 '기대' 때문에 이직을 망설일 수는 있어도, '잃을 것'에 더 신경이 쓰인다면 이미 늪에 빠진 것과 같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는 나올 수 있지만, 타이밍을 놓치면 늪에 잡아먹혀 버린다.
언제라도 새롭게 시작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 연봉이 더 적을 수도,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할 수도 있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기회가 많고, 나는 '나의 선택'으로 지금의 직장에 다니고 있어야 한다.
5.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가 남아 있는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결정함에 있어 마지막까지 갈등하는 부분이 '동료'다. 어쩌면 회사가 직원들을 지키는데 있어 가장 대처가 약한(중요도를 잘 모르는) 요소이기도 하다.
회사는 (유능한) 직원들이 퇴사하는 이유를 연봉을 맞춰주지 못해서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물론 연봉은 퇴사를 고려하는데 큰 동기부여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연봉은 아직 그 회사에 (유능한) 직원들이 낮은 연봉을 감수하고 왜 남아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혹자는 서비스에 대한 애착이나 사업적인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이란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 (유능한) 직원들을 마지막까지 망설이게 하는 것은 같이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이다. 생각보다 착한 사람들이 많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회사는 이러한 사람들의 '착함'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 반대의 상황은 아주 간단하다.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가 하나 둘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약속이나 한 듯이 우루루 회사를 떠나게 된다. 일을 잘 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외부의 기회가 있다.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가 회사를 떠나고 있다면, 차라리 '밖'에서 다시 만나는 것이 낫다.
물론 위의 다섯 가지 기준은 임의적인 것으로, 사람마다 자신에게 중요한 기준은 모두 다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내게는 어떤 기준'이 가장 좋을까를 생각하기 시작하는 예시의 의미가 강하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강조하고 싶은 한 가지는, 직장을 그만둘 지의 고민은 직장을 계속 다니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직장을 계속 다니기로 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
일러스트 ehan http://bit.ly/illust_e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