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갑써예

현기영 [제주도우다]를 읽고

by 몽상가

호상옷을 입은 두 할머니가 머리에는 흰 명주를 싸매고 너울너울 춤을 춘다. 마지막 안간힘으로 팔을 펼치고 발을 디딘다. 너울너울 몸이 하늘에 오른다. 하늘에 떠서 너울너울 춤을 춘다.


나의 머릿속에 강한 이미지로 남은 두 할머니의 춤사위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두 할머니가 두 팔을 흔들며 너울너울 춤을 춘다. 밤이면 꿈속에서 두 팔을 흔들며 너울너울 춤을 춘다.

호상옷이 너울너울······ 머리에 맨 명주띠가 너울너울······.

실제 4·3의 한가운데 있었던 두 할머니는 총에 맞아 죽었다.



십여 명의 촌민이 총구 앞에 늘어섰다. 그 가운데 두 노파는 친구 사이였다. 오직 보따리 하나만 들고 있던 그들은 처형 직전에 보따리를 풀었는데, 그 안에는 일생에 딱 두 번, 혼인날과 환갑날에만 입고 나중에 저승 갈 때 입으려고 고이 보관했던 호상옷이 들어 있었다. 두 할머니가 서둘러 흰 명주 호상옷을 꺼내 입고 머리도 흰 명주로 싸맸다. 그러고는 두 팔을 흔들며 너울너울 춤을 췄다. 귀기 어린 춤사위였다. 귀신을 본 듯 놀란 지휘관이 부들부들 떨면서 비명처럼 소리쳤다.
"쏘아 총!" (제주도우다 3권 294쪽)

일생에 딱 세 번 입는 호상옷, 죽음을 앞두고 서둘러 꺼내 입고 총구 앞에서 춤을 추었던 노인, 생때같은 젊은 목숨들이 그 어떤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집단 학살을 당했던 제주. 죽창과 철창에 찍혀 짓이겨지는 고통보다 차라리 총으로 죽여달라는 애원을 해야만 했던, 그 애원조차 빨갱이들에게 쓸 탄알이 아깝다며 마을 사람들끼리 죽창으로 찔러 죽이게 만들었던 야만의 섬.


남도 북도 아니고 제주도우다


이 외침은 부질없었다.


언제 세상이 또 뒤바뀔지 모르는 살육의 섬에서 외침은 묻혔다.


현기영의 [제주도우다} 전 3권은 '살아 있는 죽은 자'인 창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4·3 당시 16 살이었던 창세는 소설가가 꿈이었고 소학교 담임인 정두길이 꼭 살아남아서 좋은 글을 쓰라고 건네준 만년필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소월과 정지용의 시를 필사하고 26 개의 시를 외우던 창세, 소설가를 꿈꿨던 창세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먼저 그 참사에 대해서 쓰지 않고서는 다른 글을 쓸 수가 없었기에 그 사건만이 진실인데, 그 이야기를 먼저 쓰지 않고서는 다른 글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참사를 기억해 내는 것도 무서워 엄두가 나지 않아 가슴에만 묻어두고 입을 다물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그 참사에 대한 장편 다큐를 기획하는 손녀 부부에게 만년필을 건네면서 대신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한다.

소설의 형식은 액자소설로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면서 서사가 이어진다. 허구임에 분명한 소설이지만 역사적 사실을 밝힌 것도 분명한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 말기부터 해방, 미군정기를 거쳐 1948년 제주 4·3에 이르는 근현대사를 다룬다. 따라서 기록 문학인 측면이 있어서 소설의 허구성에서 잠깐 떨어져 나가는 듯한 지점이 몇 군데 있지만 4·3에 대해서 기록하고 증언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그 참사에 빠져 살았을 작가의 안간힘이 느껴져서 상쇄되는 지점 또한 있다.


역사가는 사실(fact)에 기반한 인과관계로서, 이성적으로 4·3을 이해하겠지만 문학가는 사실(fact)을 진실의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한다. 역사가에게 4.3은 3만 명이 희생당한 사건이지만 문학가는 4·3을 3만 명의 생명이 숨진 3만 개의 사건, 3만 개의 개개인의 이야기로 본다. 문학가가 추구하는 것은 나열된 사실(fact)이 아니라 사건의 진실이다. 나는 칠흑같이 어두운 방 속에서 거대한 코끼리를 만지는 심정으로 이 소설을 썼다. 독자들도 그런 느낌으로 4·3의 구석구석을 탐색하면서, 천천히 읽어주길 바란다. (현기영 작가 인터뷰 중)


기억, 증언, 기록이 그 참사에서 살아났으나 죽은 자로 살아있는 안창세라는 인물을 통해서 진실을 전달한다. [제주도우다]를 통해서 그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 독자의 몫이다.

죽이는 자와 죽는 자 양쪽 모두 왜 죽이는지, 왜 죽는지 모르는 야만의 시대. 3만 원혼을 위한 진혼곡이자 3만 개의 개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4·3을 제대로 인식하고 제주가 왜 여자가 많은 섬이 되었는지 알게 되는 순간 많이 아프겠지만, 호상옷을 입고 군경의 총구 앞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할머니의 넋을 위로해 본다.


할망, 잘 갑써예. 춤 잘도 잘 첨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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