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 『사랑에 빠진 영화 영화에 빠진 사랑』을 읽고
세상에는 수많은 사랑 영화가 존재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던 이야기들로, 늘 똑같지만 오늘도 누군가는 새롭게 사랑 영화를 기획하고 만든다. 사람들은 자신의 연애를 영화로 기억한다. 1970년대에 사랑을 나눈 사람들에게는 ‘러브 스토리’가, 1990년대에 추억이 있는 연인들에게는 ‘비포 선라이즈’가 징표처럼 남아 있다. 세대와 성별에 따라 고유명사는 달라지겠지만 그 영화들이 가리키는 추억의 질감은 유사할 것이다. 격정적 순간, 후회와 질투, 하얗게 지새운 밤들이 가득한 그런 영화들.
고대부터 현재까지 모든 예술작품의 변하지 않는 테마가 ‘사랑’ 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간의 본성 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감정이기에 다양한 장르에서 변주된 형태로 계속 창작되고 있다. 그중에서 영화는 메스미디어의 발달과 영상에 친숙한 세대를 아우르며 급격한 발전을 하고 있는 분야이다. 나 역시 영화에 대한 집착이 심해 주말이면 밤새서 영화를 보곤 한다. 얼마 전 예술전용극장에서 ‘피나’와 ‘파우스트’를 봤던 감동이 남아있다. 지금은 영화를 볼 때 혼자 보는 것이 집중도 면에서나 거칠 것 없는 감정의 범람 면에서나 편하지만 한때는 그녀 혹은 그와 영화를 봤던 시절이 있었고 누군가는 진행 중이기도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연애를 영화로 기억한다고 한다. 작가는 38개의 영화를 통해 사랑했던 자 모두에게 작은 대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에세이를 썼다. 강유정의 영화 에세이를 읽는 동안 나는 사랑에 빠졌고 영화에 빠졌다. ~했더라면이라는 가정법이 주는 위안이 아니어도 충분히 사랑에 빠진 영화, 영화에 빠진 사랑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것이다. 영화를 보는 순간, 가정법의 위안과 달콤한 거짓이 유혹을 시작하고 과거로 혹은 미래로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버리게 된다. 물론 달콤함만 있는 것이 사랑이 아닌지라, 작가 역시 속절없이 누군가 떠나보낸 후, 자신의 모습을 영화 속 그들에게서 보았고 그들의 무지에 먼저 마음이 아팠다고 고백한다. 아팠기에 사랑이었음을 아는 지금의 그녀 혹은 그가, 예전의 아픈 사랑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영화를 기억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은 어떨까?
어느 날 계절이 바뀌고 장롱 속에 깊이 넣어둔 오래된 외투나 점퍼를 꺼낸다. 유행에 뒤처져서 외면당했던 옷이, 유행의 물결을 따라 그전 유행이 반복되는 시절쯤이면 좋겠다. 그러니까 한 십 년은 묵은 옷들 말이다. 묵은 먼지를 탁탁 털고 몸에 걸쳤을 때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자 뭔가 잡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아, 그것은 십 년 전 영화 티켓, 색이 변하고 글자가 희미해진 직사각형의 종이는 분명 그녀 혹은 그와 같이 봤던 영화 티켓이다. 시간은 십 년 전으로 돌아가 그때의 영화와 극장 옆 좌석에 앉았던 그녀 혹은 그를 떠올리며 영화의 장면들과 대사가 머릿속을 울린다.
예를 들어 ‘대미지’를 봤다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 혹은 그는 영화의 장면들이 부담스러웠을 테고, 오래된 연인이었다면 서로의 몸이 맞닿아 열기로 충만했을 것이다. 이쯤에서 참을 수 없는 추억에 떠밀려 ‘대미지’를 다시 찾아보고 옛날의 그녀 혹은 그와 같이 봤던 다른 영화를 떠올리거나 수많은 영화 속 장면을 되새기며 과거의 사랑을 추억하게 된다.
사실, 나 역시 ‘대미지’를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 언급된 모든 영화를 본 나로서는 그 영화를 봤을 당시의 나와, 그녀 혹은 그가 더욱 그리워졌다. ‘대미지’가 그랬고 ‘나인 하프 위크’, ‘피아노’,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 이터널 선샤인‘, ’ 화양연화‘ 가 그랬다. ‘연인’에 대한 포스터 언급 부분에서는 사랑에 푹 빠져있던 어느 날과 함께 주인공이었던 제인마치의 두 갈래 머리를 하고 비슷한 모자를 구해 쓰고 다녔던 뜨겁고 짜릿했던 여름이 떠올랐다. 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고통스러우면서도 황홀한 소모의 시간”이 대뇌피질에 낙인으로 찍혀있는 것을 목도하는 순간이었다.
당신은 대뇌피질에 낙인찍힌 그녀 혹은 그를 만나고 싶지 않은가.
올 겨울이 지나 철 지난 외투를 벗어 장에 걸어두기 전에 주머니에 슬쩍 쪽지를 넣어두면 어떨까? 다음 해, 아니면 더 시간이 지난 어느 겨울에 까맣게 잊고 있던 쪽지를 보게 된다. 그 쪽지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대뇌피질에 낙인찍힌 그녀 혹은 그”
당신은 급격한 대뇌피질이 작동하면서 파노라마처럼 영화의 장면들이 펼쳐질 것이고 그중에서 그녀 혹은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현실에 없는 영원한 사랑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현실이 비루하고 초라하다고 느끼는 당신이라면 영화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대뇌피질을 과감히 작동시켜라. 그녀 혹은 그가 떠오를 것이다. 분명히 떠오를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대뇌피질에 낙인찍혀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랑의 영원성을 확인하고 지켜보지도 못했으면서 그것이 존재하리라고 믿는다. 아니, 엄밀히 말해 영원한 사랑의 존재를 믿고 ‘싶어’ 한다. 비록 내 사랑은 비루하고 초라하게 은행 현금 자동 입출금기 앞에서 속절없이 현실화되고 있지만, 가정법 속에서라도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화를 본다. 현실에 없는 영원한 사랑이 영화 속에서는 발효하여 박제된 채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