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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 도시락 대소동

by 엄마의 서랍

워킹맘의 아이는 사소한 데서 티가 난다. 계절이 바뀌기 전에 미리 새 옷 준비를 못해서 작년에 입던 작아진 옷을 입혀 보낸다거나, 미처 운동화 세탁을 할 시간이 없어 어린이집 신발장에 우리 아이 신발만 유독 앞코가 까매져 있다던가, 어린이집의 공지사항을 종종 놓치는 식이다.


"기저귀 보내주세요."라는 공지를 확인 후 챙기려고 보면 기저귀가 똑 떨어져 있다. 부랴부랴 로켓 배송으로 주문하고 집에 있는 기저귀 몇 개를 낱개로 먼저 보낸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수습이 가능한 날은 괜찮은 편이다.


가장 아찔했던 기억은 얼마 전 키즈노트 사진 속 야외활동 사진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예쁜 모자를 쓰고 햇살을 즐기고 있는데 우리 아이를 포함한 몇몇 아이들만 휑한 머리로, 눈이 부신지 미간을 찌푸리고 서있었다. 아뿔싸!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어제 올라온 공지사항. "바깥놀이 준비물로 모자 보내주세요."


자세히 보니 모자를 쓰지 않은 아이들은 공교롭게도 맞벌이 가정이거나 형제가 많은 집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의 엄마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등하원 때 마주치면 늘 정신이 없어 보인다는 것.


그 이후로는 공지사항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강박적으로 체크했다. 하지만 등원 겸 출근길, 중간에 준비물이 떠올라 급히 유턴을 하는 일은 여전히 종종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근처 동산으로 산책을 간다는 공지가 떴다.

"벌레가 꼬이지 않도록 달지 않은 음료수와 간식을 스스로 열 수 있는 통에 담아 보내주세요. 가방이 무겁지 않게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는 꼭! 실수 없이 준비하리라. 비장한 마음으로 공지사항을 몇 번이나 읽었다. 마치 수능 문제를 풀이하는 수험생처럼.


- 1단계 (벌레 차단) : 달콤한 과일, 끈적이는 과자류는 탈락!

- 2단계 (깔끔함) : 선생님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 손에 묻지 않는 것.

- 3단계 (양 조절) : '무겁지 않게'라는 말은 소풍 기분만 내는 간단한 간식이면 충분하다는 뜻.

- 4단계 (사회성) : 친구들과 나눠 먹을 수 있으니, 자극적이지 않은 순한 맛으로!


이 모든 조건을 통과한 최종 선택은? 바로 '참깨맛 스틱과자'였다.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신중하게 고른 간식이었다. 이제 완벽한 통에 담기만 하면 미션 클리어!


'집에 적당한 통 하나쯤은 있겠지'

없었다. 소풍 당일 아침, 나의 안일한 생각은 산산조각 났다. 온 주방을 뒤지고 뒤져도 길쭉한 스틱 과자를 품어줄 만한 통은 보이질 않았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보채고,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 나의 눈에 들어온 통 하나, 그건 바로 죽집에서 주는 포장용 죽통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후줄근한 그 플라스틱 죽통 말이다. 잠시 망설였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등원 준비를 마치고 거울을 본 순간, 내 모습이 정말 한심했다. 거울 속에는 아이 간식하나 제대로 못 챙기고, 자기 집 살림살이 하나 파악 못하는 빵점짜리 엄마가 서있었다. '나는 잘하는 게 뭘까? 회사 일은 잘하고 있나?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자괴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날따라 키즈노트 알림이 얼마나 기다려지던지, 평소 빠르게 확인을 못하는 편인데 그날은 사진이 올라오자마자 빛의 속도로 클릭했다. 사진 속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식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 앞에는 알록달록 캐릭터 도시락통이 반짝이고 있었다. 도시락통 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용물에는 예쁘게 자른 과일과 빵, 아기자기한 과자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심지어 고운 자수가 놓인 보냉백에 정성껏 담아 온 친구도 있었다. 그 화려한 도시락들 사이, 우리 아이 앞에 놓인 하얀 죽통은 유난히 초라해 보였다. 사진을 확대해 아무리 찾아봐도 죽통에 과자 한 종류만 달랑 넣어 보낸 엄마는 나 밖에 없어 보였다.


사진 아래 달린 선생님의 코멘트가 내 가슴을 콕콕 찔렀다.

"엄마가 준비해 주신 사랑 가득한 간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사랑 가득? 나의 죽통에도 사랑이 담겨있긴 한 걸까? 어쩌면 소풍 공지사항을 내가 챙기기 편한 방향으로만 해석한 건 아닐까?


무거운 마음으로 아이를 하원시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소풍 재밌었어? 친구들 간식 중에 뭐가 제일 맛있었어?"

아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 꺼가 제~일 맛있었어. 고마워요. 엄마!"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아직 친구와 자신을 비교할 만큼 크지 않아서였을까? 이유가 뭐든 아이의 그 한마디는 무겁게 내려앉았던 내 마음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정말? 그렇게 말해주다니 엄마가 더 고마워. 진짜 감동이야."

그때의 내 표정은 어땠을까. 안도감? 미안함? 놀람? 행복함?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 내 표정과 대답이 아이에게 인상 깊었는지, 이후 아이는 "고마워"라는 말 대신 종종 "감동이야"라는 표현을 쓴다.

장난감을 사줬을 때도, 저녁밥이 맛있다고 말하면서, 꼭 안아주고, 사랑을 표현할 때도, 아이는 나에게 "엄마, 감동이야!"라고 말해준다.


어쩌면 아이는 '감동'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가, 그 순수한 마음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건 아닐까?


그날 밤, 잠든 아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용히 휴대폰을 들어 검색창에 일곱 글자를 입력했다. '어린이 도시락통' 또 언제 있을지 모를 다음 소풍에는 예쁜 도시락통에 사랑을 가득 담아 보내주리.


워킹맘의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 간다. 서툴지만, 우리는 아이의 한마디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오늘도 정말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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