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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어스름에 등원을 하며 든 생각

by 엄마의 서랍

이가 말을 시작하니 좋은 점이 많다. 대화가 재미있고,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육아가 한결 수월해졌으며, 무엇보다 귀여운 말과 행동에 웃음 지을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만큼 마음이 아픈 순간도 찾아온다. 예전에는 몰랐던 아이의 속마음을 문장으로 마주하게 되면서부터다.


복직을 준비하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던 돌 무렵, 친구가 말했다. “눈물 바람일 거야.”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출근길, 뒤통수 너머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릴 때면 몇 번이고 뒤돌아보긴 했지만 ‘어차피 안 보낼 수 없으니까’ 하며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엄마 가지 마요. 무서워.” 하는 말을 들었을 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직장에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청소년기 아이를 키우는 직장 선배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등원할 때 우는 거 말이야. 엄마 서운하지 말라는 아이들 나름의 퍼포먼스야. 어린이집에 들어가서는 재밌게 잘 논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 나와 같은 길을 이미 걸어온 육아 선배의 다독임이었다. 그 말이 왜 인지 모르게 위로가 되었다.


아이도 예상보다 잘 적응했다. 선배의 말처럼 울며 등원한 날에도 막상 어린이집에서 보내온 사진 속에서는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와 내가 함께 적응을 해가던 중 처음으로 눈물이 핑 도는 순간이 있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아이의 기상시간이 새벽 4시 반으로 앞당겨졌고, 자기주장이 강해지면서 아침 준비가 더 힘들어진 시기가 있었다. 이른 기상으로 피로가 쌓인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경의중앙선 파업까지 겹쳐 매일 아침 지각을 피하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분주했다. 아이와 씨름을 하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 늦어! 빨리 옷 입어!” 가시처럼 날카로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는 웃는 얼굴로 다가와 나를 꼭 안아주었다. 화를 내는 엄마에게 '그래도 나 사랑하지?' 묻는 듯한 생존 애교 같았다. 조금만 더 참을걸. 순간 후회가 밀려왔지만 그럴 겨를도 없이 아이의 팔을 조심스레 풀고 서둘러 옷을 입힌 뒤 현관문을 열었다.


우리 집은 복도형 아파트다. 문을 여니 겨울 새벽의 어스름이 마중 나왔다. 7시 20분,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아침. 아이의 작은 발소리가 복도에 경쾌하게 울렸다. 팔랑팔랑 뛰어가는 그 뒷모습을 보며 갑자기 울컥했다. '이 작은 아이를 아무도 없는 어린이 집에 일등으로 데려다주면서, 엄마가 되어 내 몸이 피곤하다고 짜증이나 내다니' 수많은 생각들과 죄책감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해맑았다. 선생님의 품에 안겨 기분 좋게 웃으며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마음이 복잡했다.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도, 사무실 책상 앞에서도, 점심을 먹으면서도 아침의 장면이 떠올랐다. 그러나 아무리 곱씹고 되뇌어도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어쩔 수 없다.' 일을 그만둘 수 없으니까. 다만 오늘 같은 '등원 전쟁'에서 나와 아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으려면, 힘을 빼고 유연한 태도를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아이에게 느끼는 죄책감과 미안함부터 덜어내기로 했다. 조바심을 내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건 내 쪽이었고, 그 결과에 괴로워하는 것도 나였다. 아이는 내내 웃고 있었다. 그러니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그다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에게 지시하거나 훈육할 때 감정을 섞지 않는 것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이라면 누구나 체력이 극한으로 몰리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럴 땐 엄마도 사람인지라 아이 앞에서 표정 관리가 어려워지고, 오늘의 나처럼 가시 돋친 말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른 등원, 늦은 하원은 바꿀 수 없는 고정값이다. 그렇다면 힘들다고 내 감정을 아이에게 쏟아내는 일쯤은 참자.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내려는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어떠한 알고리즘이 이끌었는지 '맞벌이 부모의 죄책감을 다룬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 속 유명 게스트가 말했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의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합니다.” 그 말을 가슴에 새기기로 했다. 바꿀 수 없는 것엔 죄책감을 갖지 않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겠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이는 무서운 속도로 자랐다. 여전히 어두컴컴한 겨울 아침의 등원길. 하늘을 가리키며 아이가 말했다. “엄마 달이야! 깜깜해. 어두워졌어.” 며칠 전이었다면 그 말에 마음이 찡 했을 텐데, 이제는 다르다. 아이가 자란 만큼 나 역시 단단해졌다. “태풍아, 어두워지는 게 아니고 밝아지는 중이야. 조금 있으면 해가 뿅 하고 나올 거야.”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7시 20분에도 아침은 밝을 것이다. 점점 어두워지는 게 아니라 밝아지는 아침을 맞이하며 나와 아이는 함께 자랄 것이다.


아침 등원길에 떠 있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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