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리카르도 팔치넬리의 <시각디자인> 홍디자인
(책을 읽고, 리뷰)
꽤 두꺼운 책입니다. 시각디자인에 관한 팔치넬리의 생각들을 각 분야(키워드)로 나누어서 새로운 시각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각 챕터는 짧지만 꽤 재미있는 이야기와 시각을 제시합니다. 순서대로 읽어도 되지만, 원하는 부분만 뽑아서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빠른속도로 한번 읽고나서 쓰는 리뷰인 만큼 자세한 이야기를 다룬다기 보다 책에 대한 느낌과 개인적인 관심사를 위주로 이야기 할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시작.
프롤로그에서 디자인을 만드는 질문들로 시작하는 이 책은 시작 부분에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로 흥미를 끌었다. 시각디자인 혹은 시각이미지의 현상과 대중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제작되어지는 디자인 전체의 과정에서의 요소를 챕터를 나누어 분석적이면서 적절한 예시를 들어 이해를 돕는다.
가장먼저, 디자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최초의 디자인이라고 부를만한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것은 1524년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적어도 현대사회에서의 의미로서는) 시기에 위대한 판화가로 칭송받던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가 교황 클레멘테 7세의 근위병들에게 체포되는 사건이다. 저자는 이 사건의 죄목을 디자인이라고 현재의 언어를 빌려와 이야기한다.
과연 어떠한 행동을 하였기에 디자인이라고 하는 것이 죄가 될 수 있으며, 또한 그 시대에 디자인이라고 부를 만한 행위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당시 소수의 특권층이 포르노나 다름없는 에로틱한 그림들을 의뢰하는 것이 그 당시의 문화적 풍조였지 죄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르칸토니오는 그것을 대량으로 배포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그 그림의 복사본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체포되었다. 죄목은 ‘재생’이라는 요소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 즉 복사본들이 급속도로 보급될 가능성이었다.
죄는 포르노를 그렸다는 데에 있지 않고 그것을 대중에게 배포했다는 데 있었다. 이부분, 그 당시 교황이 대중이라는 것을 인지하였고, 대중에게 배포하는 것, 복사본들의 보급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부분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위험한 사상을 나 혼자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생각, 개인의 취향일 뿐일것이지만, 이것을 대중에게 배포한다는 것, 더 나아가 그것이 대중에게 흡수되고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사실 무서운 일일 수 있다.
미술/수공업과 디자인을 구별하는 큰 특성 중에 하나는 ‘디자인의 예술적인 측면이 하나의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라 그것의 복사본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이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는 디자인이라는 것의 창조성이, 복사되어 배포되었을 때, 대중들에게 동일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전부 오리지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그것을(대량 배포를) 염두하여 제작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디자인이란, 복제를 염두하여 기획된 작업물'
어쩌면 너무 당연한 내용일 수 있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조금 새롭게 다가왔다. 복제라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온라인 플렛폼 (SNS)를 활용하여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통해서, 디자인이 이제는 전문적인 사람들만의 행위는 아닌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복제를 염두하여 기획된 작업물이라고 한다면, 요즘 SNS(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에 올라오는 글, 이미지, 영상 등의 포스팅들은 디자인이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글, 이미지, 영상들은 사실 디자이너의 작품이 아닌 경우가 매우 많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포스팅을 업로드할 때 이것이 대량복제, 배포 된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으며 그것을 염두해두고 계획하여 제작을 할 것이다. 그리고 제작된것은 배포되고, 복제되고, 계속 재배포된다. 상업적 개념에서의 복제와 배포의 의미가 조금은 다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역시 디자인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상업적인 목적으로 제작되는 복제품들은 그것을 만든 생산자에 의해 복제, 배포 되지만, 온라인상에서의 복제, 배포는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을것 같다. 온라인상에서 복제하는 사람은 ‘공유’라는 기능으로 쉽게 어떠한 컨텐츠던지 복제, 배포 할 수 있다. 물론 ‘공유’하기 전에 그 컨텐츠를 먼저 소비하게 된다.
‘공유’라고 하는 것을 통하여 컨텐츠들이 복제, 배포 될 때에 공유를 한 사람이 그 실제 컨텐츠에 참여한 것은 전혀 없을지 모르지만, 공유를 했다는 것에서 이미 그것에 영향을 미친다. 공유는 동의의 의미를 넘어서 그것이 복제, 배포되는 것에 일조를 하게된다. ‘공유’시에 어떠한 코멘트를 달았다면 그것은(복제된 컨텐츠) 또 다른 의미로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맥락 챕터에서 저자는 ‘비평역시 작품의 일부를 차지한다. 누군가에게 영화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하나의 사회활동인 동시에 작품의 의미를 확장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라고 하였다. 우리가 온라인상에서 어떠한 것을 공유할 때 다는 코멘트나 의견도 이와 비슷하게 공유된 컨텐츠의 의미를 확장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 까?
시리즈 챕터에서는 대량생산이라는 것에 대하여 조금더 명확한 이해를 도와주었다. 저자는 시리즈(산업공정)와 복사(위조된/복제된 그림)의 차이를 그것이 애초에 복제될것을 기획하고 제작되었는가 아닌가의 차이로 구분하였다. ‘산업공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리 양이 많더라도 결과는 시리즈 생산이 아닌 “복제”에 불과하다.’ 라고 말하면서 단순히 수량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것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한 다음의 예시는 이러한 말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같은 복사기를 사용하였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복사기의 사용을 예견한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다면 이것은산업공정으로 볼 수 가 있다. ……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복사본은 원본과 양식적인 일관성뿐만 아니라 기호학적인 일관성을 동시에 유지한다. 이것이 바로 디자인이며 곧 산업디자인이 사고하는 방식이다. …… 산업디자인의 경우 공정은 생산적, 기술적, 기호학적 기준에 따라 미리 결정된다. 물건을 만드는 작업은 차후에 이루어진다.’
디자인 챕터에서, 저자는 디자인이란 말의 의미를 두가지로 설명하였다.
1 현실 혹은 상상 속의 사물을 그래픽으로 표현한다는 것
2 프로젝트, 기획
글에서 주로 두 번째 의미에서의 디자인을 설명하였는데, 즉, 인공적인 사물 혹은 사건의 기획과 반복이 가능한, 계획된 공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디자인 = 프로젝트 = 기획 이라고 한다. 주변에서 디자인하다가 기획쪽으로 빠지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종종 보게되는데, 말은 디자인하다가 디자인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보스러운 말이다. 물론 이것은 기획과 디자인이 확실히 구별되어 이루어진 회사들의 시스템의 문제도 있겠지만 여하튼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디자이너부터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기획이라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다음의 예시가 이해하기 쉬웠다.
‘영화배우들을 위해 일하는 미용사는 디자이너이다.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하나의 공정 속에서 제기됨과 동시에 이 공정의 반복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기 위해서 몇 달이 소요되곤하는데, 이를 분석적 차원에서 공정을 기획할 필요가 있고, 항상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당연히 가발을 쓰면 해결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 관여해야 할 문제다.’
디자이너의 역할을 보다 이해하기 쉽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광고에 들어가는 사진은 촬영 되는 것이아니라 기획된다.’ 여전히 디자이너의 견적서에는 기획이라든지 의사결정이나 리서치와 같은 항목에 비용이 현저히 낮거나 (대부분)아애 없는 경우가 꽤 많은 것을 볼때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맥락 챕터,
‘비주얼디자인은 결코 독립적으로 이해될 수 없고 하나의 상황 속에서, 대중이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조건하에서 표현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시각디자인에서 클라이언트와 일을 할 경우,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클라이언트가 아는 부분들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시각화하는 것인것 같다.
얼굴의 창백함의 상징에 관한 예시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얼굴의 창백함이 상류사회 사람들을 알아보는 하나의 기호였다가, 그을린 피부로 바뀌었다가 다시 창백한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기호의 의미가 그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함을 보여주는 예이다. ‘얼굴의 창백함’이라는 것이 이렇게 상징적인 요소로 이해되었고 그것이 심지어 뱀파이어 영화에서도 활용되었다는 부분이 아주 흥미로웠다. 기호에서 기의가 같아도 그 사회마다 (나라마다) 기표가 다 다르다는 바르트의 말이 떠올랐다(혹은 그 반대로 기의가 다른고 기표가 같을 수 도 있을 것 같다).
상표는 ‘상징 작용을 기초로 하나하나의 상품 혹은 제도에 그래픽 기호를 부여하는 일종의 관습이며 많은 사람들(특히 2차 세계대전이후의 기획자들)이 이 영역을 그래픽디자인의 본질이라고 여긴다.’ 그 이유는 ‘그 안에 정체성, 정보제공, 소개, 선전과 같은 시각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조건들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상표라는 것은 통상적으로 아주 단순한 시각이미지로 완성되지만 그 안에 함축되는 내용은 다른 시각이미지 (포스터라든지, 책이라든지)에 있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되었다. 혹은 더 많은 개념을 함축할 것이다.
‘브랜드는 상품이 아니라 상품에 대한 심리적인 아이디어다.’
사람들에게 브랜딩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 로고디자인을 떠올리게 되는데, 사실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떠한 개념이라고 생각된다. 아우라 같은 것이 아닐까.
브랜딩 회사에서 잠시 일 할 때의 경험을 빗대어 보자면, 당시 브랜딩은 아주 논리적인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논리적으로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수 있는가가 브랜딩의 성공여부를 좌우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상품에 대한 ’심리적인 아이디어'는 논리만 가지고 디자인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키 로고와 같이 글씨없이도 인식되는 (스타벅스나 애플도 마찮가지로) 로고가 되려면 그것이 이미 고착화된 시각적 효과를 가질 만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대중들의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각디자인의 요소들을 각 챕터로 나누어 이야기하기 때문에 관심가는 부분만 골라 읽기 좋도록 구성되어있다. 그렇지만 순서대로 쭉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것이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것 같은 주제이지만 그 부분을 날카롭게 새로운 시각과 예시를 들어 설명해주는 부분이 도움이 많이 되었고, 과거의 레퍼런스와 현대 사회의 맥락을 잘 연결해 주어 설명하는 것 같다. 시각디자인이 단순히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좀더 총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고, 대중들을 이해하고 사회현상을 넓게 바라보는 것이 디자이너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란 생각이 든다. 또한 소위 디자인된 디자인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속에 녹아져있는 부분들, 전기요금 고지서나 베터리의 글자들과 같은 흔히 디자인으로 인지 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들까지 누군가가 기획하고 고려하여 만든 디자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그러한 현상까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