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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현호 Jan 11. 2016

잃어버린 즐거움과 의미

영어가 두려운 그대에게  

문제점만 나열하고 해결책이 없는 건 상담이 아니다. 몇 해 전 한 학부모님의 고충을 듣고 있던 터였다. 당시 영어 과외로 몇 학생들을 지도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있고 수업 준비를 착실히 했던 탓일까? 아이들의 성적이 대폭 향상되었고 몇몇 학부모님들이 일부러 찾아오기도 했다.      


초등 6학년생의 딸을 두고 있는 그 어머님의 이야기는 이렇다.      

상태:딸아이가 수학이나 과학에는  비상한 관심과 흥미를 보인단다. 그런데 유독 영어는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영어책만 보면 극도로  혼란스러워하고 짜증을 내며 기피한다고 한다. 심지어 숙제도 다른 숙제는 다해가면서 영어 숙제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증상에 대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는 진단은 아래와 같다.


1) 아이가 수학과 과학에는 재능이 있지만 아마 영어 쪽은 재능이 없나 봅니다.

2) 아이가 좌뇌 중심의 사람으로 논리를 따지는 걸 좋아하지만 우뇌 중심의 문학이나

   예술 파트에는 선호도가 낮은가 봅니다.     


1번과 2번의 모든 문제점은 아직  6학년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수학과 과학은 잘하지만 –은 못하는 아이로 정의해버리는데 있다. 6학년이라면 나이 13. 결코 무언가를 잘하고 못하고를  정의받을 시간은 아니다.  분명 아주 탁월하게 어느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도 있다. 소위 말하는 천재다. 천재는 아니더라도 영재가 있다. 영재는 아니더라도 수재가 있다.   


천재/영재의 정의는 선천적으로 뛰어난 사람.

수재의 정의는 후천적으로 노력에 의해 탁월해지는 사람.


그런데 우리 아이가 천재가 아니라도, 영재가 아니라 하더라도, 수재는 목표로 할 만하다. 영어는 조금 다르게 접근을 해야 한다. 만약 영어가 천재, 영재, 수재만 하는 것이라면 미국 국민들은 모두 천재, 영재, 수재란 말인가? 그건 아니다.      


좌뇌 우뇌의 논리도 자세히 알고 보면 정확한 진단이 될 수 없다. 흔히 논리의 영역으로 불리는 좌뇌, 창의 영역으로 분류되는 우뇌는 개별적으로 활동하기 보다는 함께 협업해서 작동한다. 뇌는 독자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뇌량(Corpus Callosum)에 의해서 연결되어있다. 그리고 실제로 언어를 발화하는 영역은 브로카 영역으로 브로카 영역은 좌뇌에 위치해 있다. 

위키피디아, 뇌량, 좌뇌와 우뇌는 분리되어있지 않고 연결되어있습니다.

영어는 아주 특별한 소수가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야만 능숙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한국어를 누구나 하듯이 말이다.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어가보자. 위에서 미국인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모두 자유자재로 쓰는 이유를 바탕으로 타인들도 영어를 천재, 영재, 수재가 아니라 하더라도 숙달이 가능하다는 예를 들었다. 아주 엄밀히 말하면 여기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모든 미국인들이 한국어를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미국인들이 중국어를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모국어는 어린 시절 무의식적으로 습득하는 것이지만   제 2 외국어는 2중 언어 사용자(bilingual)가 아니라면 의도적으로 배움, 훈련해야 한다. 문제의 근본은 여기서 존재한다. 무의식적으로 배우는 것은 쉽다. 

영어로는 Acquistion 습득이라고 한다. 습득에서 배우는 모든 것은 자동이다. 언어에 노출되는 적절한 환경만 갖춰지면 된다.    

  

반면, 의식적으로 배우는 것은 쉽지 않다. 영어로는 learning, practice라고 한다. 의지와 끈기가 필요하다. 

적절한 방법도 필수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하지 못하는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2외국어를 하겠다는 의지와 끈기가 있어야 하고 그 의지와 끈기는 공부를 하는 즐거움 또는 의미와 깊이  연결되어있다. 적절한  방법대로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언어 공부만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없다.      


Solution(대책)     

그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의 어머니께 필자가 잠시 드린 조언을 여기에 인용해보고자 한다. 이 글을 읽을 독자가 초등학교 6학년생이 아니라 하더라도 필히 자신과 관련된 부분을 발견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학생은 영어공부에 대한 끈기와 의지가 사라진 상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끈기와 의지가 반드시 즐거움이나 의미가 동반될 때 지속되는 것이라면 그 학생이 잃어버린 것은 즐거움과 의미이다. 어떻게 해서 영어공부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것일까? 어떻게 해서 영어공부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린 것일까?     


1)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경우      

많은 이들이 러시아의 생리학자이자 심리학자로서 유명한 이반 파블로프의 실험을 기억할 것이다. 이 실험이 가지는 의미는 생체 조건화 그 이상이다. 실험의 요약은 이러하다.     

julliantrubin.com 소스, 이반 파블로프는 개가 종소리만 듣고 침을 흘리는 것을 발견하고 고전적 학습을 발견한다.

개가 있다. 개의 크고 작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개는 다 비슷하다. 간식을 좋아한다. 개에게 간식을 주기 직전에 종소리를 울린다. 개는 종소리를 듣고 직후에 간식이 나온다는 것을 처음에는 인지 못한다. 그러다가 그 상황이 반복되면 개는 종소리만 듣고도 간식이 나온다는 것을 예측한다.     


이것이 간단해 보이지만 이 실험이 교육에 가지는 막강한 영향력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학습자가 특정 과목을 공부할 때마다 뒤이어 따라나오는 감정상태가 불안, 혼돈, 초조, 짜증 등의 감정이라면 학습자는 그 감정을 불러일으킨 주체가 바로 그 과목이라고 생각한다. 학습자가 그 학습주제로부터 어떤 좌절이나 절망을 경험했다면 그 경험은 트라우마로 작용해서 학습자에게 학습의욕을 모조리 앗아간다. 그리고 나면 그 과목 자체를 회피하는 성향을 보이게 된다. 일일이 학생에게 지난 영어공부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질문자가 트라우마 상황과 직접적인 연결이 있다면 트라우마 상황에 대한 학습자의 오픈(솔직한 답변)은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흥미가 없어하는 이유는 반드시 존재한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냥 이유가 없이 따분하고 재미없을 수도 있지 않나요?”     


그렇다.


그것도 이유다. 바로 재미와 의미를 느끼게 못 만들어 준 것. 그 이유로 그 학습자는 그 과목에 대해서 끈기와 열정을 가지기 힘들다.      


그 학생이 영어 유치원 때부터 총 8년간 영어라는 과목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면(상담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 그 학생이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자신을 방어하는)는 영어공부가 아닌 수학과 과학 과목을 해냄으로써 다른 분야의 성취로부터 자신을 더욱 보호하려는 것은 아닐까?


이런 단계에서는 학생의 감정을 바꿔주는 것이 최우선이다.      


모든 성공과 실패는 흔적을 남긴다. 나는 그 흔적을 탐구하는 탐정이다. 20대의 10년이란 시간 대부분 내가 놓지 않고 매일 하는 훈련이 있다.  NLP(Neuro Linguistic Programming)이다.


머리가 팽팽 돌 것 같은 복잡한 이론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단언했으므로 쉽게  이야기한다. 

 

NLP는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을 신경학적으로, 언어학적으로 구분하고 프로그램화시켜서

자동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심리학의 툴이다. 자기계발 강연가 및 작가로 유명한 앤서니 라빈스가 이 NLP를 널리 알린 사람 중 하나이며 필자는 앤서니 라빈스 세미나에서 미국과 호주 현지에서 수차례 세미나에 참여하며 교육을 받았다. 2015년 8월 미국의 산타크루즈에서 로버트 딜츠로부터 NLP40주년 행사에 참여하며 NLP에 대한 핵심과 SFM이라는 부분을 사사받았다. 


그 NLP에는 이런 전제가 있다. 실패는 없다. 결과만 있을 뿐. 성공에도 실패에도 그 길로 이르는 특정한 요소가 있다.      


케이크를 만드는 과정을 예로 들어보자.  케이크를 만들려면 재료를 준비해야 하고 그 재료를 특정한 순서에 맞게 조리해나가야 한다. 강, 약, 중 불의 강도 또한 중요하다. 케이크라는 하나의 완성된 결과가 나오려면 이 순서와 각 요소를 잘 지켜야 한다. 사람들은 무언가가 되는 순서를 간과한다. 

 

즐거움을 느끼도록 먼저 학생을 잘 이끌어줘야 한다. 그러고 난 다음에 열심히를 자연스럽게 끌어와야 한다. 

그렇지 않은데 학생에게 열심히를 강조하는 것은 브레이크를 밟는 동시에 액셀을 밟는 것과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생은 그 과목을 회피하게 되고 흥미를 잃는다. 결과도 나빠진다. 악순환이다.      

어떻게 하면 즐거움을 되찾아 줄 수 있을까? 그래서 교육은 방법만을 전달하는 평면적인 활동이 아니다. 

교육은 인간, 학습자에 대한 다양성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종합예술이어야 한다.  

2) 즐거움은 의미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성공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만을 하기는 세상은 쉽지 않다.

해야만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 때론 더 쉽다. 가장 좋은 케이스는 이렇다. 

해야만 하는 일 = 좋아하는 일 = 잘하는 일 

 

이 3가지가 일치한다면 행복이 절로 피어난다. 해야만 하는 일을 좋아하게 되면 자연히 잘하게 된다. 한국의 대부분의 학습자에게는 영어는 해야만 하는 일중 하나이다. 혹자는 이런 말을 한다. 구글 번역기나 기타 다른 컴퓨터 번역 프로그램으로 이제 영어공부나 제2외국어 공부를 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글쎄 -.-


기계적인 문장이야 번역기로 돌리는 것이 가능하지만 수 많은 문화코드와 상황의 코드가 들어가서 복잡 미묘한 문장을 기계가 번역해내려면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그건 그 기계가 감정을 가진 AI(Aritifical Intelligence)의 경우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그런 로봇들 보다 똑똑해야한다. 그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학생들은 얼핏 안다. 영어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영어를 통해서 자신의 가능성이 얼마나 확대될 수 있는지 안다. 하지만 그들의 머리 속에는 영어가 어떤 식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모호하다.  그저 누군가가 중요하니깐 하는 거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혹시 성인 학습자인 독자들 중에서도 그런 분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즐거움과 의미를 찾는 활동이 수업의 초반에 이뤄지는 것의 중요성 학습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이에게 학습 그 자체는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어린 학생이 특정 분야를 잘한다면 그 친구는 그 분야를 할 때마다 스스로 성취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습자에게 학습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를 악화시킨다. 즐거움을 찾아주는 1번째 방법은 학습자의 관심사를 파악하는 것이다. 학습자가 좋아하는 것이 음악, 예술, 여행, 운동, 차 그 무엇이든 좋다. 


그 학습자가 좋아하는 분야는 이미 그 학습자에게 도파민을 선사한다. 언어는 내용(contents)을 담는 그릇이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면 그 그릇에도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교육학에서 살펴본 수많은 성공 학습자의 특징에서 도출된 결론 중 하나는 이러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든 잘해야만 하는 것으로 연결시킬 때 

그들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의 몰입과 집중의 힘을  빌려해야만 하는 그것을 능숙하게 만들었다. 능숙해지니 좋은 결과가 나오고  그다음은 자연히 선순환이다.      

 

나는 그 어린 친구의 관심사가 야구라는 것을 발견했고 야구와 관련된 영어문장을 만들었다. 각종 스포츠신문과 MLB 리그의 소식에 정통하게 된 것도 그 친구 덕분이었다. 야구를 영어로 공부하며 그 친구는 첫째로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   그 다음은 이제 열심히의 단계로 들어서게 되었다. 자신이 읽고 싶은 기사들이 있는데 거기 나오는 내용들을 읽고 싶어 지니 스스로가 영어문장을 해석하고 사전을 찾는 상태로 변했다. 그렇게 자신이 즐기는 것을 하다 보면  어느덧 실력은 늘게 되어있다. 그러고 나면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았을 때 숙달된 능력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어찌 이것이 6학년 초등학생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즐거움과 의미 모두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삶에 영어가 줄 수 있는 수많은 기회조차 도전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영어라는 하나의 벽 때문이다


영어가 누군가의 발목을 잡는 존재가 되지 않길 바란다.영어는 생각보다 재미있고 또 의미도 충분하다.      

필자는 영어가 본인에게 그랬듯이 많은 사람들에게 수많은 기회를 주는 벗이 되길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한국에서 태어나 영어를 부담감 없이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다음 편에서는 즐거움과 의미를 찾아 공부하는 예시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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