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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현호 May 23. 2017

책을 만들다. 세상을 만나다.

출판사 창업 이야기 5.

가장 먼저 신규거래 담당 서점으로 채택한 곳은 K문고였다. 오프라인 서점으로는 단연코 최대 규모를 자랑하기에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공급망이었다. 반면 온라인 서점으로는 단연코 최고가  Y 서점이다. 이 두 곳은 첫 거래를 잘 터야만 한다. 


1990년대 후반 그리고 2000년 대 초반까지 고향 대구에서 자주 이용하던 지역의 서점이 있었다. 시내 한 중앙에 자리한 건물이었는데 도서관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책을 하루 종일 봐도 마음이 편안한 곳이었다. 그 J 서적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날 나는 문이 굳게 닫힌 동성로 J서적 빌딩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놀이터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TV가 아이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집에 TV를 들이지 않았다. 호기심 가득 세상에 알고 싶은 게 많던 어린 날의 내가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책뿐이었다. 그렇다고 혹시 지금 두꺼운 안경을 쓴 만화영화 <영심이>의 경태 같은 소년을 생각하면 안 된다. 나는 책을 뒷주머니에 끼워 넣고 뛰어다니는 표범 같은 장난꾸러기였으니 말이다. 상남자가 아닌 '상 어린이'였다고 나 할까.


책을 읽으면 마음속에 영화관이 지어졌다. 미국 한 대학의 논문에 따르면 시청각 자료를 보고 난 뒤와 독서를 하고 난 뒤의 사람들이 보이는 상상력이 다르다고 한다. 시청각 자료는 청중의 상상력을 제한하지만 독서는 독자들의 마음속 상상력과 창의성을 증폭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책 속, 등장인물들을 바라보며 오만 가지 감정을 느끼고 때로는 주인공이 되어 함께 하늘도 날고, 땅굴도 한다. 그 어린 나이에도 소설 속의 어여쁠 것 같은 소녀들의 등장에 괜스레 가슴이 콩닥대곤 했다. 나는 그렇게 책을 통해 세상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책을 읽고 나면 늘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배운 것을 어떻게 써먹지?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을 읽을 수 없단 걸 깨달은 것은 거북이처럼 느린 나의 독서 속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촉각적인 사람이어서 글을 읽을 때면 문장과 문단 속의 단어를 매만지고 음미하며 씹어먹었다. 단어를 하나 먹으면 그 단어에서 나오는 특별한 맛이 다른 단어에 더해져서 책마다 서로 다른 감정의 향연을 펼쳤다. 서점은 세상에 수도 없이 많은 책이 있단 걸 내게 알려줬고 그래서 서점은 나에게 보물섬이었다. 산해진미가 가득한 맛거리 타운처럼 서점은 내게 진수성찬이었다. 끝없이 표류해도 괜찮았다. 


어린 날의 나에게 있어 책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친한 친구였다. 가장 친한 친구는 나와 함께 야구장에 갔다가 야구공에 맞아 앞니가 부러진 Y라는 친구였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 800만 분의 1보단 높겠지만 야구공 맞아 이가 부러진 친구는 아마 그 친구가 처음이지 싶다. 그 공은 L 선수가 친 파울볼로 기억한다. 아비와 자식이 닮는 게 부전자전이지? 친구와 친구가 닮으면 친전구전인가? 얼마 안가 나도 앞니가 부러졌다. 나는 야구공에 맞아서가 아니라 신발끈을 밟고 앞으로 자빠져서 몸도 날리고 이도 날렸다. 한 동안 나는 웃지도 못했다. 부러진 앞니가 입술 안을 찢어 피가 멈추질 않았다. 칩거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책을 보는 일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 친구 다음으로 이 책이란 존재를 좋아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그 책에 대한 사랑은 자연스럽게 그 책을 읽는 사람에게서 나아가 만드는 사람으로 나를 변모시켰다. 지난 오랜 시간을 준비에 준비를 거듭하고 드디어 작가로서 책을 썼다. 먼저는 직접 책을 써서 작가 겸 편집, 출판 발행인이 되어보고, 그다음으로 타인의 원고를 정말 멋지게 출간해주는 출판인이 되겠다고 나름의 트랙을 짰다. 


신생 출판사가 겪어야 할 첫 번째 고비


파주출판도시. 평온한 겉 모습과 달리 건물안은 치열한 출판기획과 제작이 이뤄진다. 


시간은 12시 30분.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한 K문고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정말 국내 최고 서점답게 파주 사무실 안은 빛이 난다. 분주히 움직이는 본사 직원들을 넋 나간 듯이 바라보며 내 두 손은 힘들게 제작해 드디어 나온 샘플북 2권에 고스란히 놓여 있다. 신이란 신은 다 불러 모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물론 한국어였지. 


째깍, 째깍.


이상하다. 어디에도 벽시계가 걸려있지 않은데 이 시계 소리는 어디서 나는 걸까? 김 디자이너는 긴장이 풀렸는지 반쯤 넋이 나가 옆 소파에 기역자로 꼬꾸라졌다. 사람의 인체는 참 신비하다. 저게 가능한 건가? 정확히 말하면 기역자는 아니다. 부어오른 배가 허락하는 각도 한에서 구부러져 있으니 C자형이다.


유통, 물류 담당자인 스티브 팀장은 준비한 공급계약서를 몇 번이나 뒤적거리며 초조한 지 두리번거린다. 며칠 전 공급계약서에 적힌 내용 파악이 미흡한 부분이 있어 역정을 낸 터라 꼼꼼히 다시 준비해온 서류를 보니 마음이 아린다. 일을 하다 보면 늘 좋은 말을 할 수 없어서 때로는 잔소르리를 늘어놓아야 할 때가 있다. 잔소리꾼은 늘 되기 싫었는데.




오후 1시다. 인터폰으로 신규거래 담당자님께 전화를 건다. 로비에 내선으로 연결된 하얀색 인터콤으로 전화를 하니 수화기 저편으로 아주 차갑게 깔린 25톤 트럭급의 위엄을 자랑하는 신규거래 담당자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들어오세요, 안으로.


몇 달째 컴퓨터 작업에 매달린 우리는 당시 비대해진 몸을 모두 자랑하고 있었다. 콜라와 초콜릿을 흡입한 결과 최소 체중은 3-5Kg 이 불어 있었다. 아니 부어 있었다. 빽빽한 사무실 안으로 다 함께 들어갈 수 없기에 소파에 꼬꾸라진 김 디자이너는 그대로 놓아두고 스티브 팀장과 신규거래 담당과장님을 만나러 들어갔다. 


정말 <미생>에서 본 듯한 사무실과 비슷한 형태다. 빼곡히 들어찬 책상과 서류함 속에서 많은 MD와 거래담당자들이 부서별로 자신의 일을 바쁘게 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면접을 보는 듯이 수없이 많은 출판사의 영업맨들이 나와서 열심히 책을 홍보하고 있었다.


꼴깍! 목 구녕이 막힌다. 목구멍이 아닌 목 구녕이다. 이 단어를 써야 그 감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저기 보니 ○○○ 과장님. 우리가 찾는 그분이다. 우리를 유심히 쳐다본다. 스티브 팀장과 나는 육중한 덩치를 이끌고 그 좁은 책상 틈을 비집고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오르듯 과장님의 책상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참 힘겹다.


안녕하세요, 워드스미스 대표, 000입니다. 이분은 영업당담을 하는 스티브 팀장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스케일링을 1년째 못해 활짝 벌린 웃음이 자신이 없었나?(집 앞 치과에서 1년 전 스케일링을 잘못해 피가 안 멈춰 치과에 트라우마가 생겼다.) 왜 스티브 팀장과 나는 억지웃음을 지었을까? 억지웃음을 띄면 상대방의 불쾌지수가 올라간다던데 그래서일까 ○○○ 과장님은 포커페이스를 한 채 대답하신다. 


아, 네. 대구에서 오셨지요? 먼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앉자마자 5분 동안 그 과장님은 무지막지한 종이들을 레이저 광선 같은 눈길로 훑으신다.


요기조기 도장 찍고 요것 저것 읽어보시고 요리조리 적힌 대로 이해하셨으면 서명하시면 됩니다.


하고 잔다르크처럼 지령을 내리신다. 분당 180 단어의 속도로 말을 하시는데, 스티브 팀장과 나는 반쯤 혼이 넋 나간 듯이 듣고 있었다. 도대체 하루에 몇 건의 계약을 하시는 걸까? 수많은 출판사들이 첫 책을 내면 이 고비를 넘어야 한단다. 


혹시 초도 물량을 한 50권 정도 넣을 수는 없을까요?


내가 김 디자이너와 함께 제작팀에서 혼을 들이붓는 동안 서점가에 첨병으로 나가 스파이 노릇을 한 강 팀장이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약 10개 이상의 매장이 있는 이 서점에 초도 물량 10권을 집어넣으면 책은 책의 '무덤'인 서가에 꽂힌다고 분석했다. 10 나누기 10 하면 1 아닌가. 우리의 소중한 책이 쌍둥이 자매도 없이 홀로 전국의 서점에 배치된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왕따' 된 느낌이다. 그럴 순 없지.


책이 팔리고 사람들에게 읽히려면 서점에 공급되고 나서 매대에 가로로 누워져 있어야 한다. 해수욕장에 선탠을 하는 우람한 남자처럼 아주 넓게 태양을 받듯 사지를 뻗고 표면적을 늘려야 독자들에게 노출이 되고 노출이 되어야 독자들이 한번 책을 펴본다. 


"날 좀 보소" 하고 있는 책과 서가에 꽂혀 겨울잠을 자는 책은 갈 길이 다르다. 뭐든지 뻔뻔하게 펼쳐질 준비가 되어야 펀펀(fun, 재미)하게 고객들에게 읽힌다. 적어도 20~30권은 초도에 입고가 되어야 매대에 진열이 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신생 출판사들의 책은 10권 정도로 신규거래를 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스피치 인사이드(Speechinside, 말하는 능력을 타고난 사람). 분당 180 단어의 스피치 신공이 끝나고 나자 과장님은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가 기습 같은 어시스트 눈빛을 쏘자 스티브 팀장이 죽겠다는 건지 온몸을 비비 꼬며 마지못해 무거운 입을 연다. 


저희가 10권 말고 혹시 초도 물량을 한 50권 정도 넣을 수는 없을까요?


'옳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과장님은 갑자기 다시 책을 요리조리 살피시더니 앞으로의 출판사의 출간 계획에 대해서 물어보신다. 출판사의 책이 서점에 공급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크게 나누면 매절이라는 방식으로, 서점에서 이 책을 사서 파는 거다. 두 번째는 위탁이라는 방식으로 서점은 장소를 임대해주는 것이고 책의 소유권은 팔리기 전에는 출판사에게 있다. 즉 팔리지 않으면 다 반품 처리가 된다.


이런 세세한 조항들이 신규도서거래계약서에는 상세하게 적혀 있다. 이렇게 첫 책은 신규거래 담당자분과 거래를 하게 되고 그다음 두 번째 책부터 입고량은 서점의 부서별 MD라고 불리는, 내가 반드시 잘 보여야만 하는 분들의 손에 달려 있다. 물론 책에 대한 고객의 반응이 모든 기준에서는 가장 중요한 잣대이다. 


글을 쓰는 이는 책상 앞 풍경에 익숙하다. 이곳에서 천국과 지옥을 맛본다.


출판사는 크게 두 가지를 미친 듯이 잘해야 한다. 더도 덜도 말고 두 가지를 잘해야 한다. 그것도 정말 다시 말하지만 황홀하게 말이다.


1) 책을 잘 만들 것!

2) 책을 잘 팔 것!!


'잘 팔 것'에 느낌표를 두 개 둔 것은 파는 것이 만드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랄까? 이 두 가지 조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책은 대중들에게 사랑받지 못한다. 우리는 책을 혼을 들여 만들었다. 이제 잘 팔아야 하는데 잘 팔려면 필히 해야 하는 영업의 첫 관문은 유통판로를 개척하는 것이다.


서점 입장에서는 출판사가 앞으로 책을 어느 정도 낼 건지, 어떤 분야로 우수성을 입증할 건지 등을 꼼꼼히 파악하고 초도 마케팅 계획 등을 바탕으로 초기에 입고시킬 물량을 결정한다. 참고로 매절 방식으로는 서점은 책의 정가의 60퍼센트-70퍼센트에 사들이고, 위탁 방식으로는 60-70퍼센트 정도의 가격으로 책을 공급받는다(도서의 종류마다 세부적 차이가 있다). 


쉽게 이야기를 해보자. 25000원짜리 책이 있다면, 25000원 ×0.65=15000원. 이 가격으로 서점이 출판사에서 책을 구입한다. 그러고 나면 도서정가제 시행에 의해서 10퍼센트 이상 할인을 못하게 되어 있으므로 10퍼센트 할인된 22500원에 고객들에게 제품을 판매하고, 10퍼센트 정도를 적립해서 고객에게 돌려주므로, 결론적으로 고객들은 약 20000원에 책을 사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사들이는 15000원과 고객에게 파는 20000원의 차액 5000원이 25000원의 책을 고객에게 한 권 팔 때 서점이 가져가는 순이익이 된다. 그리고 이 5000원이 오프라인 매장 임대비, 관리비, 인건비 등 오프라인 매장에 필요한 비용을 위해 쓰인다. 


물론 서점은 이것만이 유일한 수입원이 아니다. 서점의 또 다른 큰 수입원은 단연 광고수입이다. 온라인 광고의 경우는 1주당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호가하고, 매장 광고 또한 가격대가 그렇게 형성되어 있다. 얼핏 보면 이 금액이 참으로 크게 느껴지지만 광고가 잘 진행될 시 가져다 줄 효과를 생각하면 사실 그리 큰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소형 출판사는 한 권 책을 제작하는 데 드는 제작 총경 비로도 이미 허리가 휘청거릴 지경이라, 거기에 대량의 광고비를 쏟아부을 형편이 못 된다. 광고까지 하려 하면 유일한 우리의 무기인 삐걱거리는 노트북과 자동차 바퀴라도 내다 팔아야 할 판이다. 


생떽쥐베리, 해결법은 찾아가는 것.


나는 ○○○ 과장님의 '분당 180 단어' 속도보다 조금 빠른 181 단어 정도 되는 속도로, 몇 날 며칠을 머릿속에 준비한 출간 계획을 읊어댄다. 로봇이 따로 없다. 오늘따라 혀가 왜 이리 꼬일까. 


저희 워드스미스 출판사는 영어, 에세이, 교육 분야의 책을 전문으로 출간, 번역하는 출판사이므로 올해 영어 리스닝, 리딩, 라이팅, 스피킹, 그래머(문법)를 테마로 하는 책을 출간할 계획입니다. 총 7~10종 정도의 출간 계획이 잡혀 있습니다."


순간 ○○○ 과장님의 눈이 저 멀리 입구 쪽으로 향한다. 김 디자이너가 책을 두 손으로 고이 감싸 안고 장화 신은 고양이 마냥 이쪽으로 응원의 무지개 광선을 보내고 있다. 진심은 통했을까? 고개를 휙 돌린 ○○○ 과장님은 스티브 팀장과 나를 새초롬하게 쳐다보시고는 총알 같은 속도로 말한다. 


30권 넣도록 하세요.

헐, 30권?! 30권이라면 적어도 몇 매장에서는 매대에 우리 책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인사를 90도로 땅에 닿을 듯이 하고 출입문 밖을 나서자 새로운 자신감이 차오른다. 콧구멍과 입을 동시에 최대한 팽창시켰다. 폐에 파주의 상쾌한 공기가 들어찬다. 긴장과 초조, 불안으로 들어차 고여 있던 부패한 이산화탄소를 내뱉어 낸다. 무언가 잘 풀릴 것 같은 이 이상한 예감.


하지만 그 안도감도 잠시. 우리는 급히 차에 올랐다. 굽이돌아 안드로메다 은하로 이어질 것 같이 멀미를 생산해내는 도로 위에서 김 디자이너의 곡예운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Y 인터넷서점 물류센터다. K문고는 목적 달성! 김 디자이너의 '18번' 노래가 차 안에 쩌렁쩌렁 울린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계약!


평온한 햇살은 파주의 평야를 비추고 내 마음은 덩달아 곧게 뻗은 지평선 너머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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