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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현호 May 22. 2017

출판사 창업 이야기 4

책을 만들다. 세상을 만나다.

종이와 펜, 그리고 노트북. 책을 만드는 필수품


샘플북이 나오려면 앞으로 3~4일은 더 걸려야 한다는 인쇄소 김 부장님의 말은 우리에게 두통의 아지랑이를 피어오르게 했다. 타이레놀 500 ER을 급히 꺼내 생수통을 벌컥이며 먹는다. 두통이 찾아오기 전에 진통제를 먹는다. H 대학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학교 도서관 자판기 안에 타이레놀이 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무슨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길래 진통제를 먹어가며 공부를 할까?! 


배웠다. 진통제를 먹고도 일을 해야만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샘플북이 나와야 서점 공급 계약을 맺을 때 책을 드리고 나올 수 있다.  엠디(MD)의 추천과 초도 물량을 정할 때 샘플북은 필수이기 때문이었다. 


지난 2014. 11월부터 한 해를 넘긴 2015. 2월까지 우리의 일 평균 수면시간은 4시간을 채 넘지 못했다. 그 이유는 600쪽이 넘는 첫 책의 교정, 교열, 편집, 내외지 디자인 등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두꺼운 책은 잘 안 팔린다고 사람들이 만류했다. 나는 안 팔린다는 그 고정관념에 도전했다. 잘 만든 책은 잘 팔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자신감은 접고 그 고정관념을 받아들여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하지만 우린 많은 것을 배웠고 진화했다. 


스티브 팀장은 초도 판매 2만권의 목표를 잡았다. 2만권이면 10 쇄다.(1쇄 1천부 기준)


더 가치 있는 책을 기획하고 출간해야 한다는 배수진을 쳤다. 퀭한 김 디자이너의 눈빛은 얼은 동태가 알코올에 절여진 느낌이랄까? 차마 마주 보고 대화하기가 그래서 먼 산을 바라보며 말한다. 입에서는 녹색의 연기가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 입에서도 그런 냄새가 날까? 마주 앉아 서로 대화를 하면 서로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대구팀에 전화하세요. 파주에 캠프를 차리고 샘플북 작업 기간 동안 일을 진행하고 가야겠습니다.
토니, 지금 대구에 서점 공급 관련 광고 매대 자리도 잡아야 하고, 경북대, 영남대, 대구대, 계명대 책 출간 이벤트를 위해서 각 대학교 입학처에 제안서를 넣고 있는 중인데 팀원들을 파주로 다 소집하면 본진이 위험한데유?" 그래, 김 디자이너와 나는 스타크래프트 광팬이기도 하다. 실력은 비슷. 


시뻘건 눈빛으로 쏘아붙이는 김 디자이너의 째지는 목소리가 고막을 때려댄다. 뚱한 표정이 정말 썩은 미소를 날려대고 있다. 


김 디자이너. 우리 첫 책은 단순히 첫 책이 아닌 모두의 페스티벌이 돼야 합니다. 대구에 있는 편집장님, 스티브, 강 팀장님은 이 파주의 출판도시를 보지 못해서 출판시장이 얼마나 큰 경쟁시장이며 레드오션인지 느낄 기회가 없어요. 


지금 이 시간 불이 켜져 있는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출판사의 유리창 속에 보이는 출판인들의 밤 낮 없는 노동량을 보셔요.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것, 우리 팀원들도 다 파주로 불러서 파주에서 샘플북이 나오는 대로 서점 공급 업무를 한 번에 모두 보고 파주와 서울에서 볼일을 다 끝내고 돌아가십시다. 대구의 웬만한 업무는 이곳 파주에 와서도 다 전화와 인터넷으로 될 테니까요.


덤 앤 더머에 버금가는 개그 수준을 자랑하는 김 디자이너와 나. 뭐라 할 말이 없다.


여러 가지 걱정할 것이 많은 얼굴이다. 김 디자이너는 고맙게도 다음 말을 잇지 않고 대구에 남아있는 팀원들 세 명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오후 5시에 출발한 팀원들은 2월의 추운 겨울날 파주에 오후 11시가 가까워서야 도착했다. 피곤해 보이는 팀원들을 모시고 국물 맛이 끝내주는 짬뽕집으로 향했다.


첫 작품이다... 사활을 걸어야 한다


대구는 산에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라 제법 따뜻하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아주 더운 대구의 기후는 요즘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대구는 따시다. 살을 에는 찬 바람에 먼 길을 달려와준 팀원들을 보니 가슴이 울컥한다. 


우리는 출판단지 안의 한 게스트 하우스에 두 개의 방을 빌렸다. 먼길을 달려와 노곤한 팀원들에게 푹 주무시라 말하고 나는 로비로 내려왔다. 앞으로 펼쳐질 일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리더는 항상 미래를 앞서 살아야 하되 현재를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고 아버지께 배웠다. 아버지는 평생을 사업을 하며 살아오셨지만 아들인 내가 안정된 직장을 가지지 않고 어느 때 보다 불확실한 시대에 불황이라고 모두가 걱정하는 출판 시장에 뛰어든 것을 매우 염려하셨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번 책을 더더욱 성공적으로 출간하고 유통시키고 싶었다. 출판사에게 첫 책은 사활이 걸린 작품이 되어야 한다.  


출판업은 하나의 책을 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다음 제품을 내려면 이전의 제품에서 투입한 자본과 시간에 대한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이 필요했다. 회사의 신제품은 성공확률이 10퍼센트 미만이라고 한다. 책은 그보다 더 낮은 것처럼 느껴진다. 


수 많은 책 중 가장 많이 읽힌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된다.


높지 않은 성공 확률을 가진 신제품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 회사는 고민이 많다. 회사가 유지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10퍼센트의 작은 확률에 자사의 서비스와 제품이 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방법은 10개의 제품을 빠른 속도로 제대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통상 신제품의 성공 확률이 10퍼센트라면 10개의 제품을 낸다면 그중 오직 1개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 원리를 곰곰이 로비에서 생각해봤다. 그저 10개만 낸다고 과연 그중에 저절로 1개의 베스트셀러 제품이 나올 수 있을까? 


토니, 왜 안 자고 내려와 있어요?"


대외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스티브 팀장이다. 한 손 가득 대학교 관계자 미팅 및 이벤트 기획안과 광고 스케줄을 인쇄한 종이뭉치를 들고 내려온 것을 보니 아마 로비에서 일을 하려나 보다. 스티브 팀장은 나의 군대 동기로 워드스미스의 물류, 유통을 담당하고 있다.


피곤할 텐데, 잠자리에 들지 왜 내려왔나요? 로비가 제법 추운데.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잠이 안 오는 것이 아니라, 곧 우리의 첫 책이 출간된다고 하니 설레어서 잠이 오질 않아서요. 파주에 오니 또 새로운 기운이 나는 것 같아요.


다들 잠이 오지 않는 것일까?


대구에서 인쇄 계약을 맺지 않고 사실 파주로 와서 인쇄 계약을 맺은 것은 파주가 단순히 종이 인쇄 공급 가격이 저렴해서가 아니었다. 대구의 남문시장에서 중심지를 이뤘던 대구의 인쇄 메카가 성서출판단지로 넘어가면서 대구 성서 지역에 새로운 인쇄 중심지가 만들어졌다. 거기에서 우리가 제작하려는 하드커버 형태의 620쪽 분량의 단행본 견적을 열 군데가량 비교했던 터라 나는 대구가 결코 파주와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교통비와 수고스러운 시간을 생각하면 대구에서 인쇄를 하는 것이 유리한 점도 있었다. 문제는 배본이었다. 완성된 책을 전국 서점에 유통하려면 대형 서점의 물류 창고에 입고를 해야 한다. 대구에서는 배본 서비스를 마땅히 찾아볼 수가 없었기에 우리는 파주를 최종 선택했다.


나는 파주를 우리가 출판사를 세우면서 반드시 익숙하게 만들어야 할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했다. 지방 대구에서도 지역을 뛰어넘는 글로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물류, 유통, 마케팅 그리고 기획의 퀄리티에 존재한다. 경쟁사를 전혀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름만 대도 알 수 있는 출판사의 건물들이 줄지어서 밤늦게까지 창작과 작업의 열정을 피어 올리는 이 곳, 파주 출판단지를 워드스미스 출판사의 초짜 팀원들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예감은 적중했다. 파주로 온 팀원들의 마음에 새로운 에너지가 도는 듯했다. 


10분 즘 지났을까? 약속이나 한 듯이 팀원들이 로비로 내려온다. 모두들 저마다의 일 뭉치를 들고 말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팀원들은 모두 자신이 맡은 제작, 유통, 물류, 기획, 홍보, 마케팅 파트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첫 책이 전국의 서점에 공급될 시간이 다가왔다. 그들은 전쟁터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의 책이 아니었다. 모두의 책이었다.


인쇄 감리를 거치고 나면 본격적인 책 제작이 인쇄소에서 진행이 된다. 인쇄, 제작 실무자가 인쇄 사고가 나지 않게 관리·감독을 하고 그동안 출판사의 업무는 대단히 바빠진다. 이제부터는 마케팅 전쟁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기억 3C


2003년, 대구의 복현동의 K 대학교 캠퍼스 경영대학 4 합동 강의실. 봄날의 나른한 강의실에서 교수님은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강의를 하신다. 


마케팅에서는 이 4P를 알아야 된다잉. 이 4피가 머냐 하면 말이쥐, Product(제품), Place(서비스장소), Price(가격), Promotion(촉진) 인기라. 이거 4개를 기본으로 하고 거다가 3C 카는걸(하는걸이라는 대구 사투리) 분석해야 되는데 그 3C가 먼지 아는 학생 손들어봐라. 야! 거 꾸벅꾸벅 조는 아, 니가 함 말해보래이~

나는 그때 춘곤증에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검도부 활동으로 기장직을 맡은 터에 날마다 이어지는 운동과 음주가무에 교실에서는 정신을 차리기가 대단히 힘들었다. 그때 대학생활은 그게 대학생활이었다. 취업 걱정은 없었고 90년대 학번 선배들의 무용담과 대학생활 가이드에 따라 충실하게 군대 전은 놀고 있었다. 그날도 나는 강의실 책상에 몇 번이나 침을 드리우고 있었다. 


헬렌켈러의 말이다. 그녀는 졸때도 고개를 들고 졸았겠지. 아마 그랬을 것 같다. 


3C요? 교수님? 3M은 알아도 3C는 모르겠는데요 ㅠ.ㅠ

강의실을 가득 메운 아이들은 표복절도를 하고 교수님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내 이름을 물으신다. 


니 이름이 뭐꼬?


쪽은 쪽대로 다 팔리게 생겼구먼. 품위를 지켜라. CHH! 


03학번 경영학부 CHH입니다. 점심을 주체 없이 먹었더니 위장으로 피가 몰려 졸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예습도 꼬박 해오겠습니다. 너그러이 3C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시오, 교수님!이라고 드라마에 나오는 남주(남주인공)처럼 이야기를 했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내가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

 

기어가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남자라면 어떤 순간에도 앞으로 쓰러질지언정 뒤로 쓰러지진 말아야지. 

12년 전 무의식에 배운 그 이론이 지금 이 시점에 절묘하게 필요할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하였다. 그 3C란 것은 Customers(고객), Competitors(경쟁사) 그리고 Company(자사)였다. 나는 로비에서 그 마케팅 이론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복잡한 현실에서 배우고 익힌 바를 토대로 행동전략을 짜나 가야 했다. 


우리 책을 살만한 고객층의 세부 욕구(needs)를 정확히 다시 파악하고 해당분야의 경쟁 도서목록을 다시 살피며 그들과 다른 우리 제품의 차별성을 꼼꼼히 노트에 기록했다. 이 차별화 포인트가  케팅 전쟁에서 고객들의 뇌리에 우리 책을 잊지 않게 해줄 마케팅 총탄이다. 첫 번째는 세계일주, 두 번째는 꿈, 세 번째는 영어, 네 번째는 학습의 비결이었다. 모두 타깃 마켓인 20~30대가 가장 관심 있는 부분들이었다. 


중용,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책을 만든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2014년에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신간 종수는 4만 7589부이며 총 책 발행부수가 9416만 5930부라고 한다. 이 시장에서 One of Them(그들 중 하나)가 아닌 Only One(특별한 하나)를 꿈꾸며 여기까지 왔다. 걱정 반, 두려움 반 시간이 갈수록 어려움의 강도는 더욱 나를 압박해왔다. 


야, 토니(필자의 미국식 이름)야, 너 설마 지금 쫄고 있냐? 하지만 저 가슴 깊은 곳에서 또 다른 오기가 올라왔다. 


'웃기지 마라. 나는 쫄면이 아냐. 쫄긴 왜 쫄아. 부딪힌다.' 

4일 후. 드디어 샘플북이 손에 놓였다. 이제 진짜 영업이 시작되려 한다. 뜨거운 콧김을 내는 김 디자이너와 2만 부 이상을 팔아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스티브 팀장이 엉덩이를 들썩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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