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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현호 May 18. 2017

출판사 창업 이야기 3

책을 만들다. 세상을 만나다. 

경부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차 안. 창 밖으로는 시골 마을과 터널이 오고 나가기를 반복하고 있다. 내 머릿속에서는 오늘 파주에서 만날 대형서점 공급업체 신규거래 담당자와의 미팅에서 해야 할 말이 반복 재생 중이다. 이제 최종 필름 작업 감리 절차가 끝나면 인쇄에 들어가게 된다. 

문경휴게소만 오면 우리는 한 번은 쉬어줘야 한다. 30살을 막 넘긴 김 디자이너와 그보다 한 살 많은 32살의 나는 20대와 같지 않은 체력에 적잖이 놀라는 중이다. 가끔 나는 차를 타고 간다 간담이 서늘해지곤 하는데 그건 김 디자이너의 눈이 반쯤 풀려 있을 때다. 경차에 몸을 실은 우리 둘 만으로 실내는 이미 꽉 차다. 카트라이더에 올라탄 두 마리의 곰을 떠올리면 그보다 더 적합한 표현이 있을까?

최선에 최선이었기에 과정에서 우리는 결과보다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잠 오는 눈꺼풀이라던데 그 말이 맞나 보다. 대구에서 길을 나선 지 2시간 즈음 차 안의 산소량이 급격하게 줄어든 순간이 온다. 문경에서 충주로 가는 시점을 우리는 '졸음의 새재'라고 부른다. 영호남의 양반들이 한양에 과거 시험을 보러 갈 때 꼭 넘어가야 했던 문경새재의 높은 산세는 지날 때마다 우리에게 장엄한 용태를 자랑한다. 


한양으로 가려면 날 넘어야 하느니라.


나는 일이 힘들면 힘들수록 그 일에서 더욱더 진실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배웠다. 최선을 다하는 그 순간 새겨지는 근육들에 의해서 그다음 단계의 일들이 쉬워진다고 굳게 믿는다. 돈키호테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닿을 수 없는 저 별을 따자'는 명언을 남기지 않았는가? 혹자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룰 수 없는 꿈을 왜 꾸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가슴 아프게 왜 하냐고? 그 대답은 나도 잘 모른다. 완벽에 도달할 수 없지만 완벽 에로의 충동을 가지고 살아내는 삶이 더욱 충실할 수 있어 그런 것은 아닐까?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말자. 실패할지언정 포기 하지는 말자. 



문경새재 휴게소에 도착하면 우리가 꼭 하는 것이 있다. 자칭 라면 천왕이라고 하는 김 디자이너가 1등급 레벨을 준 기가 막힌 라면이 바로 문경새재 휴게소에 있다. 뜨거운 라면을 한 사발 흡입하고 나니 졸음은 더욱 나를 휘어 감는다.


라면 천왕, 김디자이너. 


나는 숫자로 경영하는 출판사 대표가 아니다. 나는 작가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의 마감 시간의 의미를 아는 작가 출신의 출판사 대표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2008년 12월. 첫 책을 내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그 해 겨울, 나는 세상을 알기보다는 뜨거운 열정만 가득한 풋내기 25살의 청년이었다. 배낭 하나에 이런 짐을 넣고 아끼던 몰스킨 메모지와 노트북을 가지고 여행길에 나섰다. 


나는 '나를 만나다'는 조금은 철학적인 슬로건을 가지고 약 2달간 강원도 정동진을 중심으로 하는 여행을 떠났다. 강원도에서 시작된 그 여행은 전라도까지 이어져 남원에서 끝이 났는데, 내 손에 남겨진 것은 약 400페이지에 달하는 자서전이었다. 하지만 그 자서전은 너무도 서정적이고 감정적이어서 누구에게 보여줄 성격의 것이 못 되었다. 그렇게 나의 습작의 첫 번째 결과물은 완성이 되었다. 

배낭을 메고 강을 넘어 산을 오르던 시절, 누구에게나 그런 여백의 시간은 필요하다.



그 안에는 나의 슬픔, 분노, 어려움, 삶의 애환이 담겨있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치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글은 누군가를 치유하기엔 부족했다. 이후 나는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한 연습을 시작했다.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콘셉트가 명확해야 했고 설계도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이 콘셉트와 설계도를 구상하는 일이 '기획'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매일매일 종합일간지 1종과 경제지 1종 그리고 당시 몰입하고 있던 영자신문의 논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베스트셀러들을 분석하고 읽었다. 때론 필사를 하기도 했다. 베껴 쓰는 과정을 거치고 종이에 묵묵히 다른 작가의 글을 쓰다 보니 글에도 호흡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좋은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괜찮은 책을 한 권 공식적으로 내기 위해서 준비를 하던 찰나에 내게 좋은 기회가 왔다. 대학생 시절 2010년 3월부터 6월까지 나는 대구 9개 이상의 대학이 참여하고 대구 핸리 캠프, 캠프워커 등지의 미군가족들이 함께 모여 문화교류 활동을 하는 '한미친선서클(Korean American Friendship Circle)'이라는 프로그램에 전체 학생대표로 활동하게 되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좋은 인연을 유지하였던 기회로 2012년 1월의 추운 겨울날 영어로 미국 장군님과 병사들 그리고 한국 학생과 한국 가족분들에게 스피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가슴은 뛰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고 주어진 시간에 실수 없이 좋은 연설을 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대학생들을 위한 책을 한 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0일 동안 집중에 집중을 거듭하니 영어와 학습이라는 2개의 키워드로 완성된 약 150쪽 분량의 책이 완성되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바깥출입을 삼가고 작품 활동에 집중했다. 그 책의 이름은 '에소테리카 폴 프렌즈십 서클' 20대 대학생을 위한 30대를 목전에 둔 선배의 조언들이 담겨 있었다.

원고를 완성하고 나는 들뜬 마음에 단체의 회장님께 메일을 보내었다. 대구 미플러스 의원 김범대 원장님은 원고를 읽어보시고 원고의 인쇄와 배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고 그 책은 3월에 학생들의 손에 놓였다. 그리고 그날 나는 또 한 번 핸리 캠프 안의 레스토랑에서 약 200명의 미국, 한국 사람들 앞에서 책에 대해서 소개할 출간 스피치를 가지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나의 트레이닝이었다.


이라크 전쟁에서 부대원을 한명도 잃지 않으셨던 장군님은 나에게 진정한 리더쉽이 뭔지 알려주셨다.


그 프로그램에서 만나 나와 4년 동안 미국, 호주, 영국에서 함께 유학하며 세계일주(대서양, 태평양을 횡단하고 동에서 서로 지구를 한 바퀴 돔)를 완성한 김 디자이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나와 함께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출판사 창업 준비를 했다. 출판사를 한다면 모두가 눈을 토끼 눈을 하고 말한다.

"출판사 대표들 내가 몇 아는데 요즘 다 죽어난다 해! 그걸 왜 해?"

나는 그럼 더 큰 눈을 뜨고 속으로 말한다. 

"무엇하나 레드오션 아닌 게 뭐가 있나, 이 사람아. 하기 나름이지."

김 디자이너는 출판사 창업에 대한 나의 계획을 듣고 눈을 반짝인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였다. 그는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출판 디자인 프로그램을 배워갔고 출판에 필요한 디자이너가 되어갔다. 그의 원래 전공은 전자전기 공학이다.  


우리의 첫 만남. 내가 김디자이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2015년 2월.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의 눈에는 첫 책의 출간에 희망과 기쁨의 포효가 가득하다. 

"김 디자이너님, 오늘 신규거래 담당하는 MD랑 만나야 하는데 꿈자리가 어떻던가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하고 앉아있네, 하는 표정으로 졸음을 깨기 위해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던 김 디자이너가 나를 쳐다본다. 

"잠잘 시간을 주셔야 꿈을 꾸지요. -.-;;" 

대구에서 서울까지 3시간 40분 그리고 다시 서울에서 40분을 내비게이션의 알흠다운 목소리를 따라 핸들을 요리조리 돌리며 도착한 인쇄소 앞. 우리는 이전의 방문과는 다르게 제법 여유가 생겼다. 감리를 맡으러 김 디자이너는 들어갔고, 나는 세미나실에서 홀로 앉아 곧 다가올 신규거래 담당자와의 미팅 때 보여드릴 자료를 검토 중이다. 

세미나실의 투명한 유리로 보이는 바깥 휴게 공간에 모여 있는 인쇄소 직원들이 눈에 띈다. 모두 담배를 빠른 속도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퀭한 눈빛과 인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을 보아하니 여기도 뭔가 마감이 걸려있는 듯하다. 알고 봤더니 7일 만에 책을 완성해달라는 워드 스미스 출판사의 요청으로 인쇄소 직원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양이었다. 괜스레 미안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첫 번째 공식 책, 나는 이 책을 성공적으로 만들고 싶었다. 우리는 너무 겁먹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몰랐고, 너무 무모하지 않을 정도로 딱 그만큼만 안 채로 출판시장에 뛰어들었다. 잦은 밤샘과 마감작업으로 출처가 기억이 가물 하여 명확한 출처를 밝힐 수 없는 모호한 한 논문에서는 전문가 집단이 가진 폐쇄성보다 초짜들이 때론 대박을 친다고 한다. 대박을 치려면 아무리 초짜라도 중요한 포인트는 알아야겠지. 


우린 초짜다. 대범했다.


김 디자이너가 세미나실에 있는 나에게 전화가 온다. 

"토니, 오늘 샘플 북이 나오는데요,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샘플북은 말 그대로 샘플북인데 그게 뭔 말이냐 하면요, 껍데기와 표지 디자인은 있지만 속지는 인쇄가 되어 있는 게 아니고 그냥 모양만 갖춘 책이라는 디요? 우짤까요?" 

"뭐? 우야라꼬(어떻게 해라는 대구 사투리)? 오늘 엠디 미팅 날인 거 몰라요? 어떻게든 되게 해봐요. 샘플북 없이 우애(어떻게 해라는 또 다른 대구 사투리) 신규거래 담당자를 만나가 책을 설명한단 말이오!" 

전화기 저편 너머로 투덜대는 김 디자이너의 기운이 느껴진다. 나는 핸드폰의 종료 버튼을 강하게 타격한다. 속에서는 다시 위산이 끓어오르지만 장수 무병을 위해 뇌의 컨트롤 장치를 가동해야 한다. 뇌의 전두옆에 명령을 하달한다. 


'차분해지자.'

결론적으로 그날 우리는 샘플북을 받지 못했고 파주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책을 서점에 공급할 때는 신규거래 담당자와의 첫 대면이 대단히 중요하다. 신규거래 담당자와 MD에게 책을 잘 선전해야만 초도 물량을 좀 더 여유잏게 확보할 수 있다. 초도 물량의 수는 우리의 책이 책의 무덤이라는 서가가 아닌 평대에 깔리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다. 광고 예산이 충분치 않은 소형 출판사에게는 초도 물량이 생명의 젖줄과도 같다.

우리는 샘플북의 정확한 정의를 인쇄소와 협의하지 않았고, 감리 시에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책의 형태 역시 모호했다. 그렇게 첫 번째 MD와의 미팅은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취소되었다. 

파주의 찬 바람은 내 코를 때린다. 다시 콧물은 흐르고 신규거래를 트지 않으면 또 파주로 차를 몰고 와야 할 판인데 대구에서의 마케팅과 판촉활동 일정이 9일 뒤였기에 머리가 아파온다. 

꼬르륵. 

갑자기 왜 나는 현진건 작가님의 운수 좋은 날이 생각나누. 

배가 고프다. 또다시 짬뽕이다. 

"김 디자이너님, 일단 짬뽕집으로 갑시다."

하루 종일 감리 일을 마치고 인쇄소에서 자신만의 전쟁을 치르고 기진맥진한 김 디자이너와 짬뽕집에 마주 앉았다. 또다시 베이스캠프인 대구 대신 며칠을 이곳 파주에서 전진캠프를 차려야 할 모양새였다. 상황은 여의치 않았지만 짬뽕 국물은 끝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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