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현호 May 17. 2017

출판사 창업 이야기 2

책을 만들다. 세상을 만나다.  

다시 지난 내 삶을 살 수 있다면 나는 내가 저지른 모든 실수를 피해 가려한다. 100세 시대에 지금 나이 34. 어느 한 TV 광고에서 보니 여전히 젊다고 이 나이는 아직 낮 12시에 이르지도 않은 아침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기는 조금의 논리적 비약이 있다. 100세를 24시로 환산하면 1시간은 4.XX세가 되므로 내 나이 34살은 오전 8시즘이 넘은 시간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잠을 푹 자고 난 아침 8시는 정말 개운한 아침 8시인데, 내가 살아온 34년은 이리 치리고 저리 치이고 나름은 열과 성을 다해 살아온 삶이니깐, 아침에 일어난 그 개운함과 꿀잠을 자고 난 이후에 뼈마디에서 들려오는 해피송은 없다. 나무 그루터기와 그늘이 있으면 달려가 털썩 앉아 쉬고 싶은 나이, 청년임에도 지난 34년을 살아낸 나는 나름 지쳤다. 


방전이 되었을 땐, 새로운 걸 시작할때이고 새로운 시작은 그 자체로 휴식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내가 지쳤다는 건 무언가 열심히 고민하고 치열히 살아온 증거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이렇게 총 16년을 학교에서 보내며 삶은 마감 시한의 연속이라는 것을 배웠다. 초등학교 방학 때는 줄곧 생활 계획표를 짜야했고, 학창 시절에는 모든 일이 짜인 계획대로 이뤄졌다. 심지어 군대에서는 시간이 곧 법이었다. 나는 줄곧 계획을 고치고 때론 그 계획에 맞춰 살진 못했지만, 세상은 나의 상황과 관계없이 초심을 돌려보내었다. 


출판 사업에 뛰어들어 내가 느낀 것은 늘 시간과의 싸움이다. 원고 마감, 편집 마감, 인쇄 마감, 유통 마감. 


마감. 마감. 마감. 


2015년의  2월 한 겨울날, 파주 출판 단지에서 김 디자이너와 나는 불짬뽕을 먹으며 인쇄소에 최종 원고를 넘기기 전 최종 원고 검토를 하고 있었다. 


책은 나에게 적당주의자가 되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한번 만들어지고 나면 그게 최선이 되니깐.


힘들지만 설렘 가득


매운 짬뽕 국물을 들이켜는 김 디자이너의 눈은 뻘겋게 충혈됐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나의 입술은 창백하게 메말라 있다. 무언가 비장한데 멋있진 않다. 우리는 벌써 이틀째 밤을 새우고 있었다. 대구에 출판사 둥지를 텄지만 거래 인쇄소가 파주에 있었다. 우리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2천 권의 단행본을 만들기 위해 한 권당 620페이지에 달하는 종이를 발주해놓은 상태였기에 약 132만 페이지의 종이에 잉크를 뿌려댈 참이었다. 


"토니, 이제 마지막 원고를 인쇄소에 넘겨야 합니다. 오늘 저녁 6시까지 인쇄소에 윤 과장님이 파일을 넘겨달라고 하더라고요."


이 놈의 원고는 보고 또 보고 이미 넌더리가 날 지경으로 봤는데 볼 때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 눈에 콩깍지가 씐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오타는 그렇게 자주 발견될까?! 심기일전 새로운 마음으로 원고 보기를 15번째, 이제는 정말 농담이 아닌 토(그 토)와 동공 지진이 일어날 지경이다. 그렇게 원고는 너덜너덜해지고 글은 매끄러워지고 있었다. 


"김 팀장님, 오늘 아까 전에 마지막으로 점검한 그 원고, 그거 실수 없이 잘 인쇄실로 넘기도록 하세요." 


짬뽕 국물을 한 모금에 후루룩 마신 김 디자이너는 노트북을 꺼내 최종 원고를 전송했다. 쿨 해 보였다. 그렇게 우리의 첫 책 마감 원고는 파주의 기가 막히도록 맛있는 짬뽕집에서 전송됐다. 모든 게 처음이었기에 우리는 하나하나 해나갈 때마다 모든 게 부족함 투성이었다. 어려움에 마주칠 때마다 우리는 메모했고 다음 책의 작업에 반영하기 위해 기록했다.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한 페이지 그리고 그 다음 한 페이지.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은 온몸에 퍼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다.

약간의 설렘과 두려움은 늘 동반됐다. 


원고를 전송하고 둘 다 진이 빠져 잠시 짬뽕집 앞 주차장에 세워 놓은 차에서 쉬고 있었다. 이제 곧 대구로 내려가야 할 참이었다.


 '카톡(오바마 톤)'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김 부장님이었다.


"김대리님, 감리는 언제쯤 진행하실 건가요?" 


감리란 책을 최종 인쇄하기 직전에 잉크의 농도와 배치 등 색감을 결정짓는 중요한 작업이다대개 실무자가 인쇄소에서 직접 과정을 체크하며 출판사에서 발주한 종이의 질감과 본문의 배치, 색감이 나오는지 파악하는 중요한 인쇄 공정 중 하나다. 감리 과정이 지나고 나면 잉크는 종이 위에 환상적으로 뿌려진다. 


 김 디자이너가 묻는다. 

"토니, 감리 오라는데유?"


때는 2월 시리도록 추운 

파주의 저녁 7시. 

남쪽 지방에서 온 우리는 이틀을 밤을 새워서 원고 마감을 지켰으나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회사는 하나의 제품을 혼을 들여 만들어 내고 고객을 만난다. 그 제품을 고객이 사랑해 주면 회사는 다음 제품을 만들 생명을 부여받고 그렇지 못하면 호흡을 멈춘다. 출판사는 책으로 그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 우리는 첫 책을 냈고 이 책으로 우리 출판사의 역량을 증명해야 한다. 


시간은 늘 부족했지만, 우리는 그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었다.


우리의 책을 수 천 권의 단행본이 쏟아져 나오는 출판의 홍수 위에 돋보이게 마케팅하고 홍보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감리가 이틀 후 예정돼 있었기에 우리는 대구의 조그 마한 카페 귀퉁이에 둥지를 튼 아담한 사무실로 복귀했다. 전국 책의 유통을 쥐락펴락하는 대형 서점들의 영업 사무소가 파주에 있는 경우가 많기에 대형 서점에 입고할 책 계약을 맺는 준비를 이제 해야 했다.


대형 서점과 광고 계약을 맺기 위해 시내 곳곳의 크고 작은 서점들을 돌아다녔다. 대구에서는 지난 시간 몇몇의 큰 지역 서점이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에 기반을 둔 서점들은 문을 닫고, 전국에 지점을 둔 대형 서점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이다. 지역 특색을 가진 서점들이 대형 기업의 자본 싸움에서 무너지고 있다. 대규모 자본과 다양한 사업으로 튼튼한 캐시 플로우를 가진 초우량 기업과의 경쟁에서 영세 서점들이 살아 남기는 무척 힘들다.


이제 이틀 후 인쇄 감리와 동시에 우리는 그 대형 서점들의 MD를 찾아가 우리 책을 서점에 넣을 공급 계약을 맺어야 한다. 대형 서점의 온라인, 오프라인 광고는 1주당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몇 백만 원을 호가하기에 광고 예산이 넉넉지 않은 우리에게는 MD와의 미팅이 절실히 중요한 이유였다. 더군다나 출판사 사무실이 대구에 있었기에 자주 광화문과 강남의 서점을 방문하여 현장 영업을 하기에도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우리의 열정으로 불리한 이 입지를 극복해야 했다.


업무량은 정말 폭발적이었다. 400킬로미터 이상을 운전해서 난 엉덩이의 여드름도 달래줄 시간도 없었다. 다시 진득이 앉아 MD님께 보여 드릴 책을 소개하는 서지 정보와 출간 전 출간을 알리는 언론사 보도 자료를 작성해야 했다. 


첫 책의 작가이자 출판사 대표인 나와, 책의 표지, 내지 디자인을 맡은 김 디자이너, 책의 편집을 맡은 김 편집자님, 책의 유통과 마케팅을 맡은 강 팀장님 그리고 온·오프라인 기획을 담당한 스티브 팀장님, 우리는 원탁에 둘러앉았다. 비장한 음악 대신 썰렁한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그렇게 첫 책을 손에 들었다. 


고향 대구에서 작지만 빛나는 콘텐츠로 글로벌로 나아가자는 모토를 내걸고 시작한 출판업, 이제 진짜 시작이다. 그런데 앞에 앉은 김 디자이너의 코에서 흐르는 코피. 일단 한숨 자고 마저 열정을 태워봐야겠다. 


첫 MD와의 미팅을 기다리는 내 마음은 정말 첫 미팅을 앞둔 설레는 소년의 마음이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별이 빛나는 그 밤에 나는 잠 못 이루며 수십 번 MD와의 미팅을 머릿속에 리허설 했다.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주문과 함께. 

작가의 이전글 출판사 창업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