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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현호 May 16. 2017

출판사 창업 이야기

책을 만들다. 세상을 만나다. 

나만의 일기장, 첫 이야기를 쓰다.


어릴 적 일기장에 비밀을 적어본 기억이 있는가? 일기장을 적을 만큼 바지런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연습장에 무언가를 끄적거려 본 적은 있지 않을까? 우리는 말을 하며 글을 쓰고 살아간다. 어쩌면 이 부분이 멍멍이라고 말하고 발바닥으로 흔적을 남기는 우리의 반려동물과 가장 다른 점이 아닐까? 생각을 적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하나의 책이 창조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마법일지도 모르겠다. 


난 대구의 공업지역에서 굴뚝 연기 속 매연을 매일 보며 자랐다. 그때의 내가 본 하늘에는 늘 가득한 연기가 있었다. 그 속에서 늘 나에게 힘을 주었던 친구들이 있었으니, 이들은 내가 듣고자 하면 늘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다만 필요한 것은 있었다. 진득이 내 엉덩이를 의자에 앉아 붙여야 했다. 그 친구들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사람들은 책을 좋아한다 그러면 나를 조금은 책벌레 비슷한 부류의 사람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책벌레로 불리는 영광을 마다하는 것은 아니지만, ADHD(주의력결핍장애) 수준을 능가하는 초단기 집중력을 가진 나에게 무언가 진득한 책벌레라는 이미지가 스스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누가 나를 뭐라 부르던간에 나는 책과의 미묘한 사랑에 빠졌다. 


책을 펴고 난 이후의 나는 더이상 책을 펴기 이전의 내가 아니다.


세월이 흘러 많은 책들이 나의 손을 거쳐 지나갔다. 그리고 2014년 12월에 대구에서 작은 출판사를 창업했다. 콧물이 코에서 윗 잎술을 덮고 아랫 입술로 내려올 정도로 추운 겨울이었다. 창업의 순간은 무언가 장엄하고 멋있는 결단과 결정의 순간이어야 폼이 날텐데 그렇진 않았다. 출판사라고 해서 거창한 것을 생각한다면 아마 인쇄소와 헷갈린 것일 게다. 


출판사는 책의 기획과 출간 그리고 편집, 디자인, 유통, 마케팅을 총괄하는 곳으로 꼭 인쇄기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출판사는 인쇄, 제작, 가공 등의 종이를 다루는 일을 외주로 맡긴다. 출판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일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제법 의견이 다르겠지만 나는 기획, 마케팅, 디자인 이 3가지를 꼽고 싶다. 내가 이 3가지 일을 주로 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말로 하면 컴퓨터 하나와 머리가 달린 몸이 있으면 출판사를 창업할 수 있다. 


우리 출판사는 대구에 있지만 배본(책을 배송하는 것) 파주 물류단지와 경기도, 수도권의 대형서점에 입고 편이성을 위해서 파주 출판단지에서 한 인쇄사와 계약을 맺고 파주에서 인쇄 외주 업무를 해결한다. 그래서 책을 만드는 때가 되면 발바닥이 땀이 난다. 


400km 이상 운전... 대구에서 파주 출판단지로


대구에도 남문시장 골목이라는 인쇄골목이 있지만, 우리가 파악한 수십 군데의 인쇄소의 견적을 비교해보니 대량 인쇄의 경우 파주가 조금 가격이 저렴하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제작할때가 되면 400km 이상을 운전하는 수고를 거듭하며 대구와 파주를 오가곤 한다. 왜 온라인 시대에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일을 직접 오가는 고생을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렇게 해야 우리가 원하는 책에 더욱 가까운 책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책의 재질과 질감 그리고 인쇄소와의 작업 효율을 위해서는 작업자와 미팅이 필수이다. 


대구 출판산업단지에 둥지를 튼 우리 회사는 대구 토박이 세명의 사나이들과 서울 사람인 것은 분명한데 대구에 눌어붙은 지 오래되어 표준말을 잘 쓰지 못하는 사나이 한 명으로 이뤄져 있다. 자기만의 세계를 가장 포근한 안식처로 생각하는 김 디자이너와 항상 졸린 눈으로 머리만 스티브 잡스와 똑같은 스티브 씨, 그리고 중견기업에서 물류 유통을 담당할 당시부터 최강 친화력을 세상에 입증해온 제임스 씨가 주된 인력이다. 나? 나는 그저 평범한 30대 중년의 남자로 책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출판사를 창업해 2권의 책을 내어 시원찮은 성적표를 받아 들고 한 숨 쉬기를 2년째, 재기를 모색하고 있는 자칭 차세대 출판인이다. 참고로 앞으로 제법 길게 연재될 이 글은 출판사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실패 스토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원래 남의 성공스토리는 배가 지리하게 아프고, 남의 실패 스토리는 코믹한 경우가 있다. 딱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매번 파주를 올라갈 때면 우리는 좁디좁은 경차에 몸을 구겨 넣는다. 4명 중 1명은 90kg이고 나머지 두 명은 80kg 그리고 한 명은 70kg 도합 320 kg의 무게를 담고 달리는 우리의 경차는 문경새재를 넘어갈 때 즈음이면 가쁜 숨을 몰아쉰다. 


고요한 파주 출판 도시. 하지만 이 안은 새로운 창작에로의 열정이 가득하다.


졸린 눈을 비비고 껌을 몇 통이나 꺼내 씹고 턱이 빠질듯한 아픔을 견디며 파주의 인쇄단지에 도착한다. 썰렁한 평야에 군데군데 자리 잡은 인쇄 단지의 모습은 전형적인 한국의 오밀조밀한 대도시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출판단지 안에는 초 현대식의 건물들이 들어서서 "나 출판사 건물이오"라는 느낌의 자태를 뽐낸다. 우리는 언젠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서 우리 출판사도 이 건물 속에 넣어보면 어떨까 하고 눈을 껌벅거리며 광야를 바라본다. 


사람은 미래에 대해서 긍정과 부정 두 가지의 경우로 그림을 그린다. 나는 이왕이면 긍정을 그린다. 멍하니 보고 있노라면 3층의 조그마한 내 방에서 시작한 출판사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이런 곳에 출판사 건물을 내고 싶다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건 가까운 미래가 될지 먼 미래가 될지 모르는 어찌 되었든 지금은 생각일 뿐이다. 


함께 간 팀원 들고 인쇄소의 김 부장님을 만난다. 우리의 첫 만남은 아래와 같았다.  


"어구, 먼 곳에서 오셨네요."

영업부장으로 있는 김 부장님이 새우젓을 잔뜩 넣은 순대국밥을 건넨다. 이곳 사람들은 순댓국을 짜게 드시나, 왜 이렇게 많이 넣는 건지. 


"실례지만, 연배가 저랑 비슷해 보이시는데 40대 초반??"

이건 무슨 말인가. 나는 그해 막 32살이거늘, 어딜 봐서 내가 40대 초반으로 보인단 말인가?! 나는 들었던 숟가락을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 맛있던 순대가 갑자기 목 구녕에 탁 걸렸기 때문이다.


"김 부장님, 저 32살입니다." 

"하하하" 

어색한 웃음이 지나가고 침묵이 온다. 그렇게 우리의 첫 인쇄소와의 거래는 시작되었다. 


책 출간의 프로세스는 크게 보면 작가의 원고 완성 - 출판사의 교정, 교열 - 내지, 외지, 표지 디자인 - 인쇄, 제작, 가공 - 출간 - 마케팅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항상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고 때로는 병렬적으로 함께 동시에 진행되기도 한다. 


손에는 2천 권의 책을 뽑겠다는 인쇄 계약서


우리는 지금 경기도 파주의 인쇄소 앞이다. 그리고 잉크 냄새를 맡고 있다. 이게 잉크 냄새구나. 이것이 황금 냄새로 바뀌어야 할 텐데. 같이 간 김 디자이너는 인쇄실의 두 명의 실무자 옆에서 책 디자인에 필요한 실측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인쇄소 곳곳을 둘러보다 엄청나게 많이 쌓여있는 신간들을 본다. 정신이 멍해진다. 


저건 뭐지? 

한 달에도 1900종 이상의 단행본이 나오는 이 출판시장에 뛰어든 실감이 이제야 난다. 순간 손발이 오그라든다. 갑자기 머릿속에 월트 디즈니의 스튜디오가 그려진다. 1900종의 책들이 손과 발이 달려서 달리기를 한다. 그중에 우리가 만든 책도 레이스 위에 섰다. 


출간과 함께 스타트 총소리는 서점가를 울려대는데, 우리 책은 도무지 움직이질 않는다. 뒤에서 엉덩이를 힘겹게 밀어주지만 출발선에서 몇 발자욱 걸음을 떼다가 다시 넘어지기 일쑤. 우리는 이때 광고와 바이럴 마케팅이라는 아드레날린이 필요하단 걸 깨닫게 된다. 스타트업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품위가 아니라 생존이 아니던가? 기상천외한 기획과 이벤트는 고객을 당황하게 만들고 우리를 겸언쩍게 만든다. 그래도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는 배짱을 가져야만 한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걱정한다고 꿈을 위해 겁 없이 도전하지 않는 것은 맞지 않다. 담대하고 대담하게 우린 인쇄소 밖을 나섰다. 손에 들려진 것은 2천 권의 책을 뽑겠다는 인쇄 계약서. 가슴이 떨린다. 그렇게 2014년 2월의 추운 겨울, 흐르는 콧물을 닦으며 우리는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우린 몰랐다. 2천 권이 얼마나 많은 책인지. 고생은 제대로 우리 앞에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괴테. 책을 낼까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책을 한권 내어보면서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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