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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현호 May 30. 2017

책을 만들다. 세상을 만나다.

출판사 창업 이야기 10 

책이 나오려면 가장 우선은 글을 쓸 작가와 원고가 필요하다. 원고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편집자와 출판 기획을 점검하고, 책이 완성되어 원고가 출판사로 넘어가면 출판사는 편집자를 중심으로 교정, 교열, 내, 외지 디자인 등을 진행한다. 항상 순차적인 것만은 아니고 대개 병행되면서 이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 출판사의 업무이다. 


글을 쓰는 작가의 입장은 어떤가? 작가로서의 하루는 고단하다. 글감이 떠오르고 영감이 차오를 때는 경주마가 트랙을 주체할 수 없는 턱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뛰는 것과 같다. 황홀하다. 기쁘다. 반대로 써야만 하는 시간인데 그 어떤 이유에서건 글이 안 나올 때 작가는 힘들다. 그 '어떤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정신의 방전이든 육체의 방전이든 그 둘 중 하나다. 글이 나와야 하는데 나오질 않는다. X이 나와야 하는 X이 나오지 않는 고통과 비교하는 것이 조금 우스광스러울 수 있겠지만 정말로 괴롭다. 변비에 시달리는 환자만큼이나 괴롭고 힘들다. 


머리를 쥐어짠다고 글이 나온다면 작가들은 모두 대머리여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라도 나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좋은 글을 써내기 위해서 머리를 쥐어짜도 나오는 것은 글이 아닌 머리털이다. 실제로 신진작가뿐만이 아니라 기성작가들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탈모에 시달리는 경우가 심심찮다. 글은 머리를 짠다고 나오는 참기름이 아니다. 글은 살아낸 삶에서 나온다. 삶에서 짜야한다. 아니 삶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그래서 작가의 하루는 때론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보다 더 치열하다. 적어도 마음 안의 전쟁에선 그렇다. 늘 글감을 채집해야 하고 그 글감으로 한 문장, 한 단락, 한 챕터씩 책을 완성해나가야 한다. 


석·박사의 마지막 과정은 논문을 써내는 일이다. 논문 완성에 따라서 졸업과 수료를 구분한다. 논문을 쓰고 자신만의 정연한 논리와 수년간에 걸친 데이터 조사의 결과물을 출판이라는 행위를 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지식 노동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마스터'로 도야된다. 우리는 한 분야의 정통한 사람을 박사라 한다. 석·박사 과정을 막 마친 사람들의 몰골을 보라. 하나의 읽힐 글을 생산해낸 이의 용안은 밝지만 푸석하다. 분명한 것은 선한 눈빛과 지적인 아우라가 그들에게는 넘친다는 것이다. 한 분야에 오랫동안 몰입한 이들에게서 느끼는 기분 좋은 에너지이다. 


김영한 교수님과 함께. 제주도에서 카페를 운영하시는 교수님은 약 70권에 가까운 책을 출간하셨다.


출판사 대표로서 나의 하루는 작가의 고단함을 온전히 품어야 한다. 닭이 달걀을 품듯이 나는 원고를 품는다. 하나의 원고를 바라보며 그 원고의 시장성을 따져야 한다. 하나의 책을 내면서 그 책이 넘을 손익 분기점을 명확히 알고 책값을 매겨야 한다. 그 손익분기점을 최대한 빨리 단기간에 치타가 언덕 넘듯이 뛰어넘어야 한다. 숫자에 밝아야만 한다. 그게 경영이다. 예술성이라는 하나의 잣대, 그리고 시장성이라는 또 다른 하나의 잣대에서 출판사는 중심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 둘을 모두 겸비한 원고가 대박이 나는 경우는 드물다. 상업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책은 널리 읽히는 대중서로 매출 견인에 기여하고, 예술성이 높은 원고는 그 만의 가치를 지닌다. 

출판사는 수 없이 많은 사업계획서를 검토하고 어디에 투자할지를 결정하는 투자자의 마음과 닮아있다. 한편의 원고를 출간하는 것은 때로는 출판사의 사활을 거는 중요한 전환이 되기도 한다. 내는 것마다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를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렵다. 신생 출판사가 그런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 그 속내를 살펴보면 대표가 오랜 기간 동안 대형 출판사에서 출판 업무 전반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형 출판사를 떠나 중, 소형 출판사를 창업해 성공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만큼 출판 또한 다른 기타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블록버스터 전략처럼 자본이 대거 투입된 책이 대중들에게 널리 읽히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나의 대부분의 하루는 글 속에 묻혀 있다. 좋은 원고를 검토하고 좋은 원고를 쓰는 것이 주된 일이다.


대구로 내려오는 김 디자이너의 차 안, 얼마 전 구입한 내비게이션이 지지대 목이 부러져 고정이 안된다. 강 팀장과 급 자리를 바꾸었다. 강 팀장은 한 손으로 내비게이션을 떨어뜨릴 듯 말 듯 두툼한 손에 간신히 걸친 채 고개를 아래위로 흔든다. 모양이 꼭 한낮의 졸음을 참지 못하는 꿩 같다. 뒤에서 보니 절경이다. 김 디자이너는 연신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눈을 부라리며 뜬다. 졸음의 고개인 문경새재 초입이다. 옆자리에 앉은 스티브의 입은 이미 블랙홀처럼 시커먼 목젖을 드러내고 벌려져 있다. 이 차 안에서 나만 눈을 뜨고 있다. 


토니: "어이! 자불지 말고 저짜 옆에 문경 효게소에다 차 좀 세우세요. 라면 한 그릇 묵고 가구로."

라면이란 두 글자에, 강 팀장과 김 디자이너는 배터리 완충된 듯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난다. 

김 디자이너: "라면 이유?"

이미 싱글벙글한 김 디자이너는 먹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런 그가 지난 4일간 하루 3식 밖에 하질 못했으니 얼마나 허전할꼬. 보통사람들은 하루 3식이 정상인데 이 팀원들은 하루 5식 정도는 해야 한다. 잘 먹는다. 심지어 하루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김 디자이너가 이런 말을 한다. 


김 디자이너: 정말 죽으면 억울할 것 같습니다. 이래 맛있는걸 못 묵지 않습니까?


파주로 오매가매, 서울로 오매가매 고속도로를 자주 달렸다. 달리다 보니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맛난 음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A 휴게소에서는 한우국밥이 끝내주고 M 휴게소서는 라면이 끝내준다. 그리고 특정 휴게소만 파는 아이스크림도 있다. 우리는 그 포인트를 기억해뒀다. 그 휴게소는 결코 지나치는 법이 없다.

운전해서 서울로 오가는 까닭이 있다. 1시간 40분 만에 동대구에서 서울로 오는 KTX가 편하지만 서울 내에서 서점을 이리저리 방문해야 한다. 이동이 많고 더군다나 파주까지 오가야 하기 때문이다. 평화롭고 널찍한 1인당 생활공간을 가진 대구에서 온 우리. 많은 사람이 모여사는 서울에 도착하면 답답함을 느낀다. 

시골의 푸른 초원에서 뛰어노는 양이 있다. 그 양이 갑자기 발만 뻗으면 앞 양의 꼬리가 코에 닿는 느낌이랄까? 서울의 지하철 4호선은 우리를 몇 차례 녹초로 만들었다. 나온 배도 흡입해서 서 있어야 할 때는 현기증도 났다. 그래서 이래저래 경비도 아끼고 할 겸 우리는 주로 차를 운전해서 서울과 파주로 출장을 떠난다. 

인쇄소 인연을 바탕으로 파주를 찾았다. 그리고 약 10일 동안 인쇄 계약부터 시작된 감리, 샘플북 작업, 제책(낱장으로 되어 있는 원고 등을 차례에 따라 실이나 철사로 매고 표지를 붙여 한 권의 책으로 꾸미는 일), 가공, 후가공 등의 작업을 거쳤다. 책은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이제 단 며칠 뒤면 2000부의 우리의 소중한 책이 세상에 나왔다. 대구로 내려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제 진짜 시작이라는 무거운 다짐도 든다.

"후루룩"


토니: "거참 맛있게 드시네요. 와, 벌써 다 뭇십니꺼? ('먹었습니까'의 대구 사투리) 내 면도 좀 드실래요?"

김 디자이너는 세 번의 젓가락질로 라면을 바닥냈고 이내 라면 그릇은 헐 빈 하게 국물만 남았다. 그리고 아쉬운 듯 내 그릇만 바라보고 있다. 

김 디자이너: "머, 배는 부른데 안드십니꺼?" 

항상 배가 부르다 한다. 배부르다는 저 말은 반찬과도 같다. 저 말이 나오고도 항상 밥 한 공기는 더 들어간다. 마치 기름 칸에 기름 없다는 사인이 떨어져도 20킬로미터 이상은 가는 것과 같다. '배부르다'는 더는 들어갈 곳이 없다가 아니다. '배가 (밥을 더) 부른다'는 소리로 나는 늘 받아들인다. 

토니: "드시게." 

나는 라면 반을 덜어서 김 디자이너의 그릇에 옮겨 담는다. 함께 고생하고 함께 밤낮을 지새운 팀원이다. 무엇이 아깝겠나. 콩 한쪽이라도 나눠 먹을 게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는 대구에서 앞으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할 전략을 세웠다. 대부분은 마케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케팅과 영업은 다르다. 마케팅은 영업을 포함한 판매, 판촉의 상위 개념이고 영업은 세일즈(판매)를 위해 발바닥 땀나도록 뛰는 과정이다. 


영업이란 해도 성과가 바로 크게 드러나진 않는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바로 안 한 티가 난다. 그게 영업이다. 

J 물류 배본 회사에는 1500권을 입고하기로 했고 대구 출판사로 500권을 주문했다. 약 300권은 국립도서관, 대학도서관, 복지재단, 행사 등에 기증하기로 했다. 어릴 적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봤다. 돈이 없어도 책을 볼 수 있음에 행복했다. 그 책이 나를 꿈꾸게 했다. 비록 많지 않은 책들이지만 우리의 책이 도서관에 꽂힐 수 있음에 감동한다. 읽는 독자도 감동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남은 샘플북 위에 살포시 손을 포갠다. 

스치는 강물 옆으로 저 멀리 대구타워가 보인다.

대구광역시입니다.


서울이 내게 제2의 고향이라면, 대구는 나의 진정한 베이스캠프이다. 이곳에서 이제 스테디셀러를 만들기 위한, 우리가 이름 붙인 진심 마케팅이 시작된다. 



가슴이 답답할때면 일부러 서울과 대구를 왕복하는 기차 여행을 떠난다. 기차안은 최고의 몰입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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