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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현호 May 29. 2017

책을 만들다. 세상을 만나다.

출판사 창업 이야기 9 

서울의 강남 K문고는 참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교통이 편해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 마음을 결정하는데, 

K문고의 강남점은 리노베이션이 된 지 제법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트렌디하다. 


서점 안을 한 바퀴 거니는 산책을 하면 이런저런 책의 표지에 눈길이 머문다. 제목만으로 감동인 책도 있고, 정말 읽기 싫은 느낌의 책도 있다. 그래서 책을 만들 때 책의 제목과 표지, 이 2가지를 결정하는 일에 제작자와 작가는 오랜 시간을 들인다. 


서점 안은 수 많은 책들로 가득하다. 제목과 표지는 정말 중요하다. 


오징어 먹물같이 생긴 (외모지상주의 혹은 비하 발언이 아님) 책으로는 아주 소수의 취향저격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중에게 널리 읽혀야 오르는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의 왕좌에 앉기는 힘들다. 하지만 기존의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를 만든 독특한 특징이나 패턴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만드는 출판업계에는 많은 관행이 있다. 그 패턴과 관행이 존재한다고 믿고 거기에 의지하게 된다. 익숙하기 때문에. 


1인 출판사(5인 이하의 출판사)에서 시작해서 많은 독자들에게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고픈 욕심에 시작했지만, 이런 관행과 패턴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은 어쩌면 무모하고 바보 같은 짓이다. 기획자, 편집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 중에 하나가 오래된 틀에 맞춰진 사고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신진작가의 책과 신진 출판사의 책에 대한 관심은 출판업계 그 자체에서부터 약하다. 그래서 정말 자신만의 비전이나 미션이 없다면 1인 출파사 창업은 조금 더 고민해보시라고 말하고 싶다. 


강남대로. 


탄탄하게 뻗은 길을 보고 있다. Y문고 사무실을 찾아 들어가는 길이다. 김 디자이너의 경차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강남의 도로 위를 답답하게 움직이고 있다. 연신 한숨만 품어대는 김 디자이너와 나의 큰 몸은 이 곳 좁디좁은 차 안에서 불편스럽게 부대끼고 있다. 거리도 답답하고 차도 답답하고 나는 이내 창문을 연다. 잠시 후 쌍방울 계곡의 꾀꼬리 소리가 들린다. 


펑!

김 디자이너: "이게 먼 소리고?" 


김 디자이너가 사색이 되어 소리친다. 차가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김 디자이너호 좌측 상단 바퀴가 날카로운 못 같은 이물질에 걸려 빵구(펑크의 대구 사투리)가 아니라 아예 갈기갈기 찢어졌다. 시큰둥하게 덩치가 187센티에 이르는  강 팀장이 대꾸한다.

"빵꾸 난 거 아입니까? 소리가 우람차던데 멀 밟았길래 이래 되었을꼬..."


김 디자이너는 차를 급히 교보문고 사거리를 막 지난 버스정류장 앞에 댄다. 족히 4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그곳에 우리 김 디자이너의 경형 SUV는 불시착했다. 시간은 12시 30분. Yo문고 MD와 신규거래 담당자와의 미팅을 앞두기 불과 30분 전이다. 



책을 만드는 것은 시작이 아니다. 책을 알리는 것이 진짜 시작이다.


내 마음은 초조한데 말로만 언제든지인 것 같다. 언제든지(A사 브랜드의 한글 해석) 보험회사의 차량 출동은 왜 이래 늦는지... 서울이라 차가 막히는가? 대구에서는 10분이면 총알같이 달려오는데 15분이 지나도 지원 차량이 오질 않는다.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던 한 시민이 손가락질을 해댄다. 나는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고 지그시 세상을 차단한다. 

똑똑..

서울특별시 시민 님: "여기다가 차를 대시면 안 됩니다."

한 시민이 심드렁한 표정과 시큰둥한 말투로 우리에게 혈변을 토한다. 쥐구멍이라도 찾아들어가고 싶다. 차가 오도 가도 못하는 오동나무에 걸려가 바퀴가 빠지기 직전인데 이동도 불가다. 

강 팀장: "대단히 죄송합니다. 지금 차가 빵꾸가 나가 움직이지를 못해서요. 보험회사 지원을 불렀으니 곧 올낍니더. 금방 뺄게요." 

창문을 열고 강 팀장이 응대를 한다. 지금 상황은 좁디좁은 경차 안에 평균 신장 183cm의 몸무게 80kg 후반대의 사내 3명과 호리호리한 스티브 팀장이 탄 상태다. 

서울 특별 시민님: "빵꾸요??" 

 그 시민은 갑자기 요리조리 차를 살피시더니 왼쪽 앞바퀴가 사단이 난 것을 보고 버스정류장을 떠나셨다. 20분이 다 되어가서야 보험회사 차량이 왔고 미팅 시간이 10분도 안 남은 시점이었다. 김 디자이너에게 말했다. 

토니: "차 수리 끝내고, 전문 타이어점에 가서 마무리 지어 놓으세요. 먼저 지금 서점 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김 디자이너가 검붉은 체리 같은 얼굴로 대답한다. 

김 디자이너: "알겠임더."


늘 예측하지 못했던 일은 일어난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


스티브, 강 팀장과 나는 택시를 잡아 타고 약 15분 만에 꽉 막힌 도롯가를 통과해서 이내 Yo문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Y인터넷 물류센터만큼이나 소박한 Yo문고 사무실. 이제 우편으로 신규거래를 마친 A문고까지 합하면 이곳 Yo문고 사무실은 4번째 거래처이자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주변을 살핀다. 

하얀색 인터콤. 또 저놈이구나. 이건 영화 <매트릭스>의 전화기도 아니고 암튼 저놈을 들고 전화를 하면 중요한 분이 내려오신다. 띠링, 띠링.

이내 나타난 신규거래 담당자님께서 우릴 보신다. 지극한 눈빛으로? 기본 거래방식은 타 서점들과 동일했고 바쁘신 와중에도 친절히 하나하나 짚어주며 약 30분 정도를 할애해 설명해 주셨다. 이전에는 조금 모호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서점에서 이벤트를 하면 책을 한 번에 주문을 많이 해서 평대에 깔게 된다. 그 경우에 그 책들은 이벤트가 끝나고 난 뒤에 판매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전부 반품이다. 그런데 출판사 입장에서 본다면 반품된 책을 다시 판매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책이 너덜너덜해지고 이런저런 손떼가 묻은 종이들을 다시 서점에 출고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Yo문고에서는 50권을 초도 물량으로 받아주었다. 대구 반월당역에 위치한 Yo문고에 우리 책을 좀 더 많이 입고시키는 방향으로 계약을 매듭지었다. 


4군데가 넘는 서점과 계약을 맺으며 일관되게 느낀 것은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갑과 을의 명확한 계약관계였다. 구조상의 문제였다. 중소형 출판사 그리고 신진작가들이 나오기 힘든 그런 문제처럼 보였다.


"카카오톡(오바마 톤)"

폰을 연다. 김 디자이너다. 

김 디자이너: "토니, 빵구난거 타이어 결국 여기 전문 타이어 센터에서 갈고 있는데 사람이 원체 많아서 시간이 2~3시간 걸릴 것 같다는데유? 조금 기다리셔야 할 듯합니다." 

2월은 춥고 갈 데는 없다. 이럴 땐 작지만 아늑한 우리의 아지트가 그립다. 이런저런 짐을 드느라 손가락이 빨갛게 언 강 팀장의 손을 보니 따뜻한 곳으로 어서 들어가야 할 듯싶다. 

토니: "강 팀장 저기 앞에 순댓국집 있네. 저리 갑시다."

이제 4곳의 서점과의 신규거래를 마쳤다. 이제 본격적인 영업전쟁이 시작된다. 

존밀턴, 무언가를 잘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니깐.


참고: 

*Y문고는 최근(2017년 5월 기준) 10종 이하의 책을 출간한 소형 출판사와는 직거래를 하지 않는 것으로 정책을 바꾸었다. 10종 이하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가 Y문고와 직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B총판과 중간 거래를 맺어야 한다. 중, 소형 출판사의 유통망이 축소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책은 잘 팔리고, 못 팔리고의 상업적 가치도 있지만 책 그 자체로도 예술적, 사회적 가치를 가지는데 이러한 일들은 중, 소형 출판사들의 기획, 제작, 유통의 동력을 상실시키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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