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현호 May 26. 2017

책을 만들다. 세상을 만나다.

출판사 창업 이야기 8 

대한민국의 역사는 많은 곳에서 큰 격변을 겪었다. 공화문 광장도 바로 그곳이다. 2015년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나는 광화문 K문고, Y문고를 각각 찾았다. 서점의 시, 에세이 분야 부분 의자에 앉아 3시간째 사람들의 동선을 분석했다.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나는 철저한 외톨이였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관찰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바쁘게 나의 몰스킨 메모지는 채워지고 있었다. 


작가와 출판사의 창작과 제작의 고통이 커질수록 독자는 더욱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진심전달.


"고객 관찰"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직장인들은 한창 직장에서 시간을 보낼 순간이었고, 이 시간 서점을 방문한 수많은 사람들은 사업을 하는 자영업자, 프리랜서, 주부, 학생, 백수 혹은 간만에 반차 내지 휴가를 얻은 직장인일 테다. 평일이었지만 과연 서울은 서울이다. 어마 어마한 인파가 길거리에 있었고, 그보다는 적지만 제법 많은 수의 사람들이 서점 안을 채우고 있었다. 


누군가를 빤히 바라보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자칫하면 신고당할 수도 있다. 나는 눈에 띄지 않으려는 생각과 또 다른 목적인 다크 서클을 가리기 위해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1. 사람들은 표지를 얼마간 볼까?

2. 책을 집어 들고 난 다음에 어떤 페이지를 펴서 얼마간 볼까?

3. 책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매한다면 구매하기 이전에 어떤 행동을 할까?


독자들이 어떻게 책을 읽는지 관찰했다. 고객들은 어떤 책에 눈을 기울이고 책을 바라보는지 부지런히 몰스킨 노트를 채워나갔다. 워드스미스 출판사는 먼저 자신의 스토리를 내고 타인의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 본연의 목적을 달성해 나가는 성장 플랜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직접 원고를 작성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보는 것만큼이나 작가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이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 캐피탈리스토와 같다. 벤처 투자자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투자 잠재자들을 만난다. 그들의 입장에서 수많은 벤처 회사는 one of them이다. 돈이 필요한 벤처회사에게 투자자는 어쩌면 only one일 수도 있다. 신진작가에게 자신을 알아봐 주는 출판사의 느낌도 그렇다. 수 없이 많은 원고, 그 원고 속에서 자신의 옥고(귀한 원고)를 잘 대우해주고 최고의 모습으로 독자 앞에 내어놓는 그런 출판사를 작가는 원한다. 작가의 어려움을 생생하게 겪는 것, 나는 그것이 제대로 된 출판사로 긴 안목을 가지고 나아감에 있어 필수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삶을 경험하지 않은 출판사 대표는 작가를 비즈니스 파트너로만 대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셜록홈스 뺨치는 포즈로 엉덩이에 쥐가 날만큼 눌러 붙여 앉은 시간 동안 이뤄진,

관찰을 통해 먼저 두 가지 부류의 독자가 있음을 확인했다. 

말 그대로 이미 어떤 책을 살지 완벽하게 책을 정해온 독자들이었다.
검색대에서 책이름을 입력하고 하얀 종이를 손에 들고 서가의 이 곳, 저곳을 누벼 황금의 손을 책으로 뻗는다. 이미 이 독자들은 서점에 들어서기 이전에 책의 구매 결정을 내리고 서점에 들어섰다.


다른 한 부류는 요리조리 움직이면서 여러 책을 뒤적거리곤 했다. 평대에 놓인 책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마음에 드는 책들은 한 권, 한 권, 겨드랑이에 꼽았다(그 책 꼭 사셔야 해요..) 


대부분의 독자들은 서가에 꼽힌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평대에 놓인 책을 주로 살펴봤다. 그중에서도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분야별로 고객들의 눈에 띄게 진열된 곳에 90% 이상의 고객이 몰려 있었다.

독자들에게 노출되려면 책은 어디에 자리 잡아야 하는지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서가에 꼽힌 책이 아니라 평대에 꼽힌 책이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러고는 평대에 놓여 쌓인 책들의 권 수를 헤아려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최소 5권 이상은 되어야 평대에 책이 쌓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매장별로 책이 5권 정도는 초도 입고가 되어야 최소 평대 전시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는 매대 위 책이 팔려서 현재 5권이 되었을 수도 있으므로 10권 이상은 들어가야 매대 진열이 가능하다고 유추해 볼 수 있다. 나의 주름진 뇌는 빠르게 돌아간다. 현상을 관찰하면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질문은 다시 한번 간단해졌다. 


이 친구가 평대에 놓여야 한다. 


어떻게 하면 평대에 우리 책을 상추 씨 뿌리듯 뿌릴 수 있을까?

머리가 팽팽하게 이륙 엔진 증상을 보인다. 부쩍 30이 넘기니 체력이 달린다. (거기 계신 40,50대 분들 돌던지지마세요ㅠ.ㅠ) 엔진과열되면 냉수를 들이켜서 열을 식혀줘야 한다. 두리번거리며 정수기를 찾던 중 김 디자이너와 스티브, 강 팀장이 뚱한 표정을 마주한다. 잊고 있었다. 여기 지금 회사 사람들이 모두 와 있다는 것을. 


토니: 머 문제 있나요?

김 디자이너: 이제 이동을 해야 하는데요? 서울은 뭔 놈의 주차비가 이리 비싼지, 부담시러버서리. 주차비가 비싸서 차 빼야됩니더." 


열이 솟구쳐 오른다. 지금 제작비로 3천만 원 쓴 책이 모두 창고서 바퀴벌레와 쥐들 틈에서 갉아먹힐지도 모르는 판이다. 그러고 보니 주차장에 김 디자이너의 경차가 주차되어 있다.  

토니: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김 디자이너님은 여기 광고 걸린 책들 광고 포스터들 한번 다 찍어봅시다. 포스터에 트렌드가 있을 것 같으니 어떻게 대형 출판사들이 광고 포스터를 만드는지 보고 우리도 광고 포스터를 한번 만들어봅시다. 스티브, 강 팀장은 평대에 깔리는 책들이 온라인에서 지금 베스트셀러 순위가 어느 정도 되는지 한번 봐 보세요. 분명 뭔가 연결고리가 있을 겁니다. 평대에 놓인 책 이름을 리스트업하고 온라인 베스트셀러 순위 안에 드는 것들 체크해봐요" 

김 디자이너와 스티브, 강 팀장은 미션 수행을 위해 쏜살같이 사라졌다. 대구에 있는 다른 팀원으로부터 대학 입학 시즌에 맞춰 학교별 오리엔테이션에 책을 납품하기로 계획을 짰는데 시기를 놓쳐서 초도를 넣지 못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막 받은 터였다. 그리고 나는 잠시 머리를 부여잡고 벽에 기대앉는다. 


반나절이 넘는 시간 동안 광화문 대형서점의 구석진 카펫에 쪼그리고 앉아 공책에 날짜별로 우리 회사가 해야 할 일을 적어 보았다. 옆에는 아이들이 뛰어논다. 한 아이가 집어던진 공이 하필이면 내 얼굴을 강~타! 한다. 

난 지금 얻어터지고 있다. 그것은 누가 때리는 게 아니다. 겁 없이 뛰어든 출판시장의 압력에 이리저리 정신없이 얻어터지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의문과 시장의 압력은 내 자신감을 좀 먹는 질문을 연속으로 만들어 낸다. 나는 출판시장에서 제3의 사춘기를 맞고 있다. 스스로를 정의하고 다시 분류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이랄까. 질풍노도의 출판사 대표. 내일은 논현역에서 위치한 본사 Y문고 신규거래 및 엠디(MD) 미팅이 있다. 

지금 겪는 많은 감정들이 나에게 가져다 줄 궁극의 목적지는 깨달음 이리라. 


토니: 우선 숙소로 복귀합시다. 내일 Y문고 신규거래 관련 서류도 정리하고 우선 차를 빼지요. 


주차장에서 차를 뺀다. 주차비가 2만 원이 넘었다. 


김 디자이너: 대표님 주차비 정산하셔야 됩니대이.

김 디자이너의 펑퍼짐한 (김 디자이너는 sang 남자) 엉덩이를 걷어찰 정도로 얄밉다. 지갑에 남은 현금을 다 털고 나니 16000원. 설렁탕집에서 각혈을 했더니 헐 빈한 자금사정, 돈이 없을수록 창의성을 발휘하라고 누가 이야기했던가?

토니: 저희가 출판사 거래 때문에 지방에서 왔는데 현금이 이거밖에 없는데 주차비 좀 깎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주차정산요원 각하: 카드 됩니다. 

깜박 잠이 들었다. 


나는 지금 출판 명량해전을 치를 판이다. 코에 들러붙은 긴 수염과 펑퍼짐한 한복을 보니 나 지금 조선시대로 타임머신 주전자를 타고 이동한 듯하다. 가진 배가 없고 적은 많다. 거기다 지난날 불까지 나 배가 몇 척 타서 없어졌다. 장수들에게 오라고 초호기를 울려대지만 김 디자이너와 스티브 팀장은 저 뒤에서 홀로 싸우고 있는 내 배를 보고 있다. 화살이 빗발친다.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가 결국 화살에 맞고 땅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하고 있다. 하늘에서 쩌렁한 고함이 들린다. 


김 디자이너: 일어나시소.(일어나세요의 대구 사투리), 숙소 왔심더.

멍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임시로 머물고 있는 강남의 한 호텔(말이 좋아 호텔이지 여관)이다. 이렇게 하루가 다시 간다. 내 서른의 치열한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간다. 김 디자이너가 맥주 3캔을 어디서 구해왔는지 손에 드는데. 

스티브: 오늘 맥주 한잔 합시다. 덥네요 ^ ^ 


해맑은 팀원들을 보니 문득 함께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다시금 초심을 떠올려 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책이 좋아 출판사업을 한 것도 맞는데,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아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더 컸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봐! 함께 할 수 있게 해주는 회사가 있어 감사한 일.


작가의 이전글 책을 만들다. 세상을 만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