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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현호 May 25. 2017

책을 만들다. 세상을 만나다.

출판사 창업 이야기 7.

여의도 Y인터넷 서점 본사 옆에 위치한 설렁탕집이다. 소금을 들이붓다가 뚜껑이 통째로 들어갔다. 왜 하필 그날이 오늘인가? 순댓국을 먹다가 후춧가루 뿌리다가 후추 뚜껑 날아가서 검붉은 순댓국이 되는 일상 다반사가 왜 오늘 설렁탕에 일어나는가?

'아, 돌겠네~에.  진짜 -.-.'


살다보면 돌 것 같은 순간은 자주 돌아온다.


나의 혼잣말에 같이 설렁탕 그릇에 소금을 넣던 김 디자이너와 스티브, 강 팀장이 눈을 돌린다. '히스테리 도졌네'라는 표정이다. 곧 그들만의 방어막을 친다. 그 방어막의 실체는 내가 잘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잔소리가 시작될 것 같으니 머릿속으로 딴생각을 하겠지. 고개만 끄덕이면서 부지런히 숟가락으로 국물을 퍼 퍼 나른다 into 입. 


소금통이 통째로 설렁탕 국물에 들어간 것은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실은 생각이 많아서였다.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엠디(MD)와의 미팅에서 반드시 준비되었어야 할 보도자료가 대단히 길었다. 남들은 1~2페이지로 다 준비해서 깔끔하게 내던데, 우리 것은 무려 7페이지나 됐다. 구구절절 여러 이야기를 써놓은 그 보도자료는 받자마자 분명 쓰레기통으로 골인할 게 분명했다. 차갑고 도도했던 MD님의 도마에서 꽁치 머리 날아가듯이 싹둑 잘릴 판이었다. 

보도자료란 책이 처음 나올 때 책의 차별점을 부각하여 언론사에 있는 기자에게 보내는 1~2페이지 분량의 자료다. 회사가 신제품을 만들면 언론사 기자들을 불러 신제품 발표회도 하고 그런다. 삼성, 애플 세계의 유수 기업들이 해마다 최신 스마트폰을 출시할 때 하는 그런 설명회는 정말 오랜 시간 치밀하게 준비된 사전 홍보 활동이다. 

계약은 시작도 아니다. 서점에 신간이 입고 되어 팔려나가는게 시작이다.


출판사도 마찬가지이다. 책이 나오기 전부터 마케팅은 이미 시작이 된다. 하지만 책이 출간되기 1-2주 직전의 보도자료 배포와 언론 보도는 그 책이 초반 힘을 받고 세상에 나아갈지 말지를 결정한다. 중요하다. 신제품(신간)은 언론에 노출되고 보도가 되어야 고객들에게 노출이 된다. 이 노출의 횟수와 강도가 강할수록 잠재고객에게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고객이 모르면 고객의 입에 오르내릴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일은 대단히 신중하고도 전략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문화, 독서와 관련된 기자 리스트를 인터넷에서 찾아 작성하였다. 그 기자들이 쓴 책 서평을 분석해서 우리 책을 실어줄 것 같은 기자에게 일일이 정성 들여 보도자료를 보내기로 했다. 힘들게 원고를 탈고하고 탈모에 시달릴 정도로 글을 쓰고 제작했다. 하지만 보도자료를 보낼 이 타이밍을 놓쳐버리면 책은 대중에게 읽히기도 전에 마케팅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다. 대체로 신간의 수명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출시 1달 이내로 난다고 한다. 그 안에 이슈화를 시키지 못하면 책은 무덤인 서가로 들어간다. 그리고 오랫동안 봉인된다. 

K문고에서는 신규거래에 만족해야 했다. MD님의 '용안'을 뵙지 못했다.  MD사마께서 워낙 바쁘고 미팅이 많다. 이 보도자료만큼이나 절대신공을 발휘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MD의 추천이다. 각종 대형 서점 포털에서 책을 노출시키는 유료 광고, 자연스럽게 베스트셀러가 되어 리스트 되는 경우 이외에는 MD 추천이 강력한 광고의 수단이 된다. 

Y인터넷 서점은 온라인 마켓의 절대강자이므로, 반드시 온라인 홈페이지 엠디(MD) 추천란에 책이 떡하니 걸려줘야 한다. 하지만 레이저 광선과 같은 그 검열을 통과하려면 짧은 미팅은 강렬해야 하고, 책과 보도자료는 그 미팅을 뒷받침할 만큼 정갈해야 한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한 것 없이 MD 추천작이 되겠다고 기대하는 것은 근거 없는 낙관에 불과하다.


희망과 낙관이 뭐가 다르냐고? 희망은 뭔가 일이 잘될 것 같은 그럴듯한 씨앗이 원인으로 뿌려져있어 개연성이 있다. 낙관은 그저 잘된다는 식이다. 무비판적 낙관 지향적인 사고는 사업을 하는 이가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종기 같은 것이다. 이 종기를 그저 놓아두면 일을 말아먹는 과정을 맛보게 된다. 긍정은 중요하지만 근거 없는 낙관은 망자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싣는 것과 같다. 


저 개님은 낙관론견인가? 긍정론견인가?


엠디(MD)분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게 홍보와 광고가 많이 돼야 될 건데요, 아무튼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적인 말인지, 절망적인 말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보도자료와 함께 드리고 돌아오자 내 마음에는 '이건 아니다' 싶은 감이 왔다. 

사업가는 긍정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데이터 없이 무조건적으로 낙관적이어서는 안 된다. 무언가 개선할 여지가 보이면 바로 그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방식을 바꿔 나가야 한다. 즐겁게 열심히 해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일은 틀어진다. 


아침부터 바쁘게 함께 움직인 김 디자이너와 스티브, 강 팀장이 설렁탕과 깍두기를 먹음직스럽게 보고 있다. 숟가락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듯하다. 난 소금덩이가 빙하처럼 채 녹지 않아 떠있는 그릇을 외면한 채 머릿속에 마케팅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반드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이리저리 거래처를 다녔다. 서점 공급계약 건으로 바쁘게 움직인 탓에 오장육부가 "밥"을 외쳐댄다. 그래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밥은 먹어야지. 이번 책의 성공은 나에게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이번 책을 통해 당당하게 출판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거, 첫 수를 뭔가 잘못 둔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미 마케팅 전쟁에서 지고 있다는 감이 왔다.



품위와 생존. 늘 사업에 있어서 우선순위는 생존이다. 생존이 곧 품위이다. 


"드십시다."

강 팀장과 김 디자이너는 저 소금 빠진 설렁탕을 어찌 먹지? 하는 표정으로 게슴츠레 날 보며 혹시나 내가 설렁탕을 바꿔 달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 눈치다. 심드렁하게 그릇을 자기 쪽으로 들 끌어당긴다. 먹음직스러운 김 디자이너의 그릇을 바라본다. 

"국물아 너 참 뽀얗구나"

뽀얀 게 정말 맛있을 거 같다. 

"김 디자이너, 거 짜븐 거(짜운 거의 대구 사투리) 좋아하지요? 나랑 바꿔 먹읍시다. 소금이 좀 많이 들어간 지 이거 좀 짜다." 

시큰둥한 김 디자이너가 이칼낍니까? (이럴 겁니까의 대구 사투리)의 표정으로 날 본다. 

"그 소금탕을 어찌 드시려고 합니까? 새로(새로 이의 사투리) 한 그릇 더 시킵시다."

순간 번쩍이는 머릿속에 생각이 들었다. 새로!

하나의 책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과 같다. 아주 조금 멋있는 거 같다. (오글)

그래! 얼마 전 밤늦게 날 찾아온 2번째 책이 떠올랐다. 이미 원고는 완성되었고 교정이 진행 중이었다. 늘 가방에 넣어 다니는 수첩을 꺼낸다. 2번째 책 출간? 그리고 2번째 책에 1번째 책의 홍보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넣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출판사의 사활은 3년 안에 20종의 책을 내는 것에 달렸다고 이야기들 한다. 빚을 내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비용의 구조를 최소화해야 한다. 밥알이 어떻게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 위벽에 골인했는지 모르겠다. 먹는 둥, 마는 둥 김 디자이너에게 소리쳤다. 


"광화문 서점으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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