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현호 Jun 01. 2017

책을 만들다. 세상을 만나다.

출판사 창업 이야기 12 

앞선 11부의 연재 글을 잠시 다시 되짚어 보자. 

책 제작과 관련한 일들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과정으로 이뤄진다. 


<출판사 입장>

출판 제작 제안서(출간 기획서) 작성하기 -> 초판 제작부수를 결정 -> 인쇄업체를 선정 -> 표지, 본문, 면지, 종이 규격, 종이 결, 절수와 대수 결정 -> 종이 소요량 계산 -> 감리 -> 라미네이팅 및 후가공 처리 -> 제책 작업 (제본 작업), 띠지 작업 -> 인쇄 사고 발생 시 감리부터 다시 시작 -> 가제본(샘플북) -> 보도자료 작성과 배포 -> 서지정보를 작성 -> 서점과 신규거래 계약 맺기, 서점 MD와의 미팅 -> 국립중앙도서관 납본 -> 책 홍보 및 지속적인 영업.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플 거 같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지레 겁을 먹지만, 사실은 별것 없다. 저 과정을 근사한 레스토랑 정식 풀 코스라고 생각해보자. 사실 저 코스 앞에는 작가 섭외 원고 기획, 소비자 욕구 분석 등의 애피타이저가 있다. 그리고 저 메인 코스를 제대로 밟고 나면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라는 달콤한 디저트가 나올 테다. 메인 코스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나와 우리 팀원들은 셰프가 되어 코스의 요리마다 혼을 불어넣는다. 온라인 독자들은 미슐랭 3 스타가 될 책을 감별한다. 좋은 책은 결국 입소문을 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출판에는 블록 버스터 전략이 작용한다. 블록 버스터는 많은 자본을 투입해서 만든 작품으로 시장에서 승리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작품보다 월등힌 높다. 주요한 이유는 반복된 노출로 독자의 뇌리에 강하게 인식되기 때문이고, 광폭 배급(광범위하게 뿌려진 책)으로 어디서나 그 책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가 책을 만나는 확률은 대부분은 출판사의 고강도 마케팅에 의해서 높아진다.


어떤 이들은 책은 만들고 나면 알아서 팔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책이 나오기 전보다 사실 책이 발매되고 나서부터가 정말 바빠진다. 책이 나오면 우리는 정말 더 바쁘게 움직인다. 


강 팀장이 갑자기 코를 풀었다. 

응어리진 피가 묻어 나온다. 


토니: "강 팀장, 코에 피 나온다. 이거 머꼬?" 


스티브 팀장이 옆에서 호들갑을 떤다. 


강 팀장: "아, 아까 코를 후벼 파다가 손톱으로 머를 긁었는지 혈관이 터졌나 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코를 부여잡은 강 팀장이 모두를 안심시키려는 듯 대답한다. 차로 한 시간이나 달려 D대학 캠퍼스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부터 캠퍼스를 돌며 포스터를 붙이던 때였다. 차 안에서 책을 요리조리 살피던 김 디자이너의 인상이 굳어지더니 똥 씹는 표정을 짓는다. 


토니: "와카노, 인상이 와그라노(왜그렇니의 대구 사투리)? 머 어디 불편하나?"


내 앞에서 마케팅 계획을 점검하고 있던 김 디자이너가 깊은 한숨을 푹푹 몰아쉰다. 차 안이다. 차 안. 금방 분명 양치했는데도 창자가 썩는 냄새가 난다. 고생이 많군. 김 디자이너.


김 디자이너: "진짜 창자 썩겠네. 미치겠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라이선스로 구입한 Y서체로 폰트를 집어넣었는데, 바깥에 야(이것이의 대구 사투리, 김 디자이너는 사물을 의인화하는 경향이 있음) 폰트가 다른 디유?"


토니: "머?! 폰트가 달라? 이거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폰트가 다르면 우짜노. 빨리 확인해서 폰트 알아보고 문제없게 조치하세요. 강 팀장, 옆에 잠시 차 세워봐요."


가로수길의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선 김 디자이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는 인쇄소의 김 부장님과 통화한다. 손짓 발짓하는 것을 보니 열심히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가 보다.


김 디자이너: "토니, 인쇄 과정에서 그게 폰트가 잘 못 들어가가 그 폰트로 되었다는데유? 그래가(그래서의 대구 사투리) 폰트를 알아보니 A폰트던데 구입 비용이 100만 원정도 더 든다고 합니다. 우짤까유?"


좌심방 좌심실의 혈액이 머리의 전두전야와 편도체에 동시에 폭풍 흡입된다. 람볼기니의 엑셀을 힘껏 밟아 엔진에 가솔린이 들어차고 있는 느낌. 분노의 호르몬이 튀어나올 입질이 온다. 심호흡을 하자. 


토니: "김 디자이너, 저작권 문제는 정말 심각해질 수 있으니 일할 때 체크를 잘 해야 돼요. 이번 건은 우리 과실이 아닌 인쇄소 과실이니 김 부장님께 폰트 구입 건에 대해서 이쪽 상황을 말씀해 주세요."


남 앞에 싫은 말을 하는 걸 꺼리는 김 디자이너는 이 상황을 어찌 되었든 모면하려고 요리조리 눈을 돌린다. 3년 전 미국 시골마을에서 김 디자이너와 나는 함께 유학을 했다. 몸무게가 0.1톤을 향해가는 위기감에 우리는 운동을 시작했는데, 스포츠센터에서 회원비 관련 부당한 일을 당했다. 금액은 10불로 미비했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고 스스로 피해를 당연하다는 듯이 감내하려는 김 디자이너에게 제대로 화를 냈던 적이 있다. 부당함에 정당함을 요구하는 것도 중요한 사업가의 자질이기 때문이다.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도 중요한 스킬이다. 


다시 나가서 전화하는 김 디자이너. 내 창자도 썩는다. 


김 디자이너: "토니, 다 해결 했심더. 김 부장님이 이번에 폰트 구입을 지원해준다고 합니다. 다음부턴 이런 실수가 발생치 않도록 더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토니: "그래요. 거래처 관리는 영업맨만 하는 게 아니고 제작 부서는 인쇄소, 마케팅 부서는 서점과 모두 해야 하는 일이에요. 다음에 파주에 가면 김 부장님과 순대국밥 한 그릇 드시면서 서운함 없게 잘 처리해 주세요." 


김 디자이너: "네, 그렇게 할게유."


이런 일이 인쇄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인쇄 사고 시에는 출판사와 인쇄소가 슬기롭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제작시에 사고가 발생치 않도록 명확히 주문을 넣는 것이 필수이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실수가 생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대처이다. 이런 인쇄 사고를 대처하는 또 다른 방법은 인쇄 발주 시에 미리 인쇄 사고에 대한 처리 조항을 넣어두는 것이다. 계약과 서면 작성은 서로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의 믿음과 신뢰를 객관하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보조 수단이다. 


리더는 항상 팀원들이 한 곳을 향해 정렬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오랫동안 무언가를 준비했다고 생각해 보자. 그 생각한 무언가가 정확히 시장에서 호응을 이끌어낼 때, 기획자와 비즈니스 제공자는 황홀한 기분이 든다. 시장에서 호응을 이끌어내려면 기획안 단계에서 가지기로 다짐했던 완성도가 실행을 하는 과정에서 장애물을 만나 떨어지면 안 된다. 미친 실행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미친 실행력이 고퀄(high quality)로 유지되는 부분이다. 경영자는 실행을 하면서 지치고 힘들어지는 와중에도 초반 프로젝트를 진행할 시에 목표로 했던 퀄리티에 지속적으로 팀원들을 정렬해야 한다. 각 부서별 능력이 극대화되어 전체 결과가 우리 회사의 최고의 능력이 집약된 제품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시장에서 고객의 선택을 받고 입소문을 낼 수 있다. 


출판사도 책을 독자에게 제공하는 하나의 사업체다. 모든 사업체의 운명은 창업해서 폐업하기까지의 라이프 스타일이 있다. 기업은 하나의 생명이게 창조-성장-쇠퇴-폐업이라는 순환을 반드시 겪게 되어 있다. 시장에서 사랑받는 좋은 책은 이 라이프 사이클의 고저를 형성하고 출판사의 생명선을 길게 한다. 


우리는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드는 게 목표다.  우리 출판사는 사회적 가치가 있는 좋은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사회에 제공하기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책은 새로운 세상으로 통하는 또 다른 하나의 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책을 만들다. 세상을 만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