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창업 이야기 14
삼각대에 설치된 카메라는 돌아간 지 1시간이 넘었다. 열띤 질문과 답을 이어가던 난 K 대학교 신문사에서 온 2명의 기자들을 바라봤다. 개인적으로 돌이켜보니 대학 신문은 학교 다닐 때 읽은 기억이 많이 없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번 기회에 대학 신문도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애독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인터뷰 내내 풋풋한 신입생들의 열띤 에너지가 느껴진다. 문득 12년 전 2003년 대학 신입생 때가 아련히 떠오른다.
기자: "혹시 토니 씨는 요즘 꿈을 꾸려하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다. 그리고 어려운 질문이다. 그렇지만 난 이렇듯 나를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 참 좋다.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도 답이 쉬이 나오지 않는 오픈형 질문이 참 좋다. 이런 질문은 그런 질문이다.
그리고 경영도 그런 것이다.
토니: 글쎄요, 꿈을 꾸려하는 젊은이들에게 제가 전하고픈 말은 이런 거예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2가지 차원에서 좁혀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꿈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과 그 꿈을 어떻게 찾고 이뤄가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 결국 꿈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안다면 꿈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앞선 문제는 해결될 테니 생각은 꿈을 찾는 'How'에 집중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토니: 남들에게는 조금 무모해 보이는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가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나름의 노하우라는 게 있는데요, 우리 한번 이렇게 생각해봐요. 꿈은 대개 조금은 무모하고 지금은 아주 적은 가능성에 기인한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처음에 꿈을 꿀 때는 'Why'(왜)에서 시작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다음 'Why'에서 시작해 'How'를 찾아가는 거죠. 처음부터 'How'를 너무 따지다 보면 겁이 나요. 그래서 '처음엔 의미를 찾고 그다음에 방법을 찾으면 어떨까'란 말을 전하고 싶어요."
옆자리에 앉은 클레어 팀장님이 시간이 다 되었음을 내게 알려준다. 한 시간, 약 10개의 질문에 쉴 틈 없이 답변한 나의 목이 조금씩 건조해지고 숨이 차고 있을 때였다. 겁 없이 원대한 꿈을 꿨지만, 세상 앞에 두려움도 있었고 막막함도 있었던 12년 전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잠시 2015 학번의 풋풋한 신입생을 만나고 있으니 그때의 나를 만난 듯했다.
무엇이든 끝은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조금은 부족한 듯한 그 아쉬움이 더욱 나로 하여금 다음 만남을 기약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냐'라고 기자는 내게 물어봤다.
토니: "전 꿈을 이뤄주는 사람이 되고픈 꿈이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 선택한 저의 'How'가 출판업입니다. 앞선 것은 저의 비전이고 뒤의 것은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한 미션이에요. 이 출판업의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갈증을 느끼는 교육 파트와 여행 파트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파트이기도 하구요. 지금은 비록 1권의 책을 냈을 뿐이지만 3년 동안 30종이라는 책 출간을 목표로 열심히 달려가 보려 해요."(2017년이 된 지금 워드스미스 출판사는 이 목표에 한참 모자라지만 여전히 달려 나가고 있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대학 기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젊음, 청춘, 열정의 3 단어가 내 가슴에 아로새겨진다. 고개를 돌리니 피곤, 노화 그러나 더욱 열정이라는 3 단어를 내게 떠올리게 하는 김 디자이너와 스티브 팀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무언가 잔뜩 내게 이야기를 할 태세다.
김 디자이너: "토니, 거 좀 쉬면서 말하시지, 숨도 안 쉬고 그래 내뱉어되마 머리 안 어지럽소?"
김 디자이너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짓는다. 몸 상한다고 아끼는 나름의 그의 애정 표현이다.
토니: "머리 어지럽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하나라도 더 나눌 수 있는 게 있으면 나눠야지요. 기자님들 기사 쓰시기 편하시라고 미리 인터뷰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적어둔 대화지를 지금 메일로 보내려던 참입니다. 다들 고생했어요."
오늘은 대학 신문사에서의 인터뷰와 연이어 우리 출판사를 통해서 책을 내려고 하는 한 청년 무리와 또 다른 인터뷰가 잡혀있다. 책을 판매하는 일은 콘텐츠를 판매하는 것이고 그 콘텐츠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사람은 사람을 만남으로써 일을 성사해나간다. 그래서 책을 내고 난 뒤에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적극적으로 만나야 한다. 원고 – 집필 – 강연, 인터뷰 등이 고루 갖춰질 때 더욱 책은 잘 판매된다.
고맙게도 우리의 책이 대구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갖춘 K문고 대구, 경북 작가 코너 및 화제의 신간에 배치되었다는 '굿 뉴스'도 들려왔다. 책의 판매 양도 신간발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예상한 속도보다 조금 빠르게 판매되고 있었다.
책의 판매는 이렇게 이뤄진다. 서점에서 고객들이 책을 구입하면 빠져나간 물량을 보고 서점 현장에서 근무하시는 MD 님들이 주문량을 조절한다. 이는 오프라인 매장의 경우다. 온라인 매장은 고객들이 주문을 하는 만큼 배본사(책을 유통해주는 전문 업체)에 발주서를 보내게 된다. 이래나 저래나 매일 아침 8시에서 9시 사이는 팩스를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팩스로 들어온 주문서를 바탕으로 배본사에 발주를 하게 된다.
제품은 만들어지고 나면 공급업자의 입장에서는 재고가 된다. 재고는 창고 보관비 및 유지 관리비가 들게 된다. 고로 책은 만들어지고 나면 독립해서 독자의 서가로 골인해줘야 한다. 한때는 우리가 낳은 자식이지만 서점에서 독자를 만나 독자의 손을 꼭 잡은 독자들의 귀여운 내 새끼로 바뀌어 누군가의 책장에 꽂혀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와 출판사 사이에는 팔려는 사람과 한번 읽어볼까 말까 하는 독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밀당'이 존재한다.
시내로 다음 미팅을 향해 가는 나에게 김 디자이너가 말한다.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는지 오늘따라 김 디자이너 얼굴이 억수로(아주 많이의 대구 사투리) 뽀얘 보인다. 뽀얀 김 디자이너. 먼가 안 어울린다. 잠을 좀 덜 재워야지. 나만 동태눈이고 자기는 생태 눈이다.
김 디자이너: "토니, 지금이야말로 다음 책을 낼 베스트타이밍이 아닌가 싶은디유. 1번째 책이 잘 진행이 되고 있을 때 그 흐름을 타서 2번째 책도 출간 시기를 앞당겨 내는 게 어떨까요?"
뜨겁게 달아오른 양철 냄비 뚜껑이 수증기를 뿜어내는 것처럼 김 디자이너가 콧김을 내쉰다.
토니: "바로 내는 건 문제가 아닌데 사람 하는 일이 선택과 집중이 있는 거 아니겠어요. 우선 지금 라볼(첫번째 책의 줄임말)에 집중하고 한 달 정도 후 출간 회의 진행해서 타임 라인대로 진행합시다. 일이란 도모하기 전에 오래 생각하고 도모하기로 결정하면 그때부터는 로켓이 중력을 거꾸로 직립 상승하는 것처럼 돼야겠지요."
뜨거운 양철냄비에 찬 물을 들이붓는 격인가? 아니다. 이것은 오래도록 뜨거워질 솥뚜껑을 유지하기 위한 나의 철학이다. 쉽게 달아오른 것은 쉽게 식는다. 오랜 시간 천천히 달궈 주어야 열을 오래 머금고 품는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Why(왜)'에서 명확히 시작하고 'How(어떻게)'를 찾아나가야 한다.
첫 번째 책은 그저 우리에게 첫 번째가 아니다. 우린 기억한다. 우리의 첫걸음을. 어설프고 때로는 부족함 많았던 그 첫걸음은 그다음 여정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되어주었음을. 배움이 되어 주었음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담한 용기와 그 일을 통해서 다음에 적용할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첫 책을 출간하고자 하는 두 남자와의 시내 미팅은 어떤 여정이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