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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현호 Jun 08. 2017

책을 만들다. 세상을 만나다.

출판사 창업 이야기 15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모여 산다. 사람이 많은 곳은 중심지도 많다. 반면 그렇지 않은 곳은 중심지도 작고 그 숫자도 적다. 대구에는 서울의 명동, 강남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동성로라는 곳이다. 이 곳은 청소년, 청년, 중장년들이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일상에서 소소한 약속을 할 때 모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어릴 적 동네의 친구들과 크리스마스니, 새해니 특별한 날이면 정처 없이 동성로에 나가 배회한 추억이 떠오른다.  


내가 사업을 시작하고 난 후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최우선 관심지역이 되었다. 도심 상권은 바닥금(권리금)이 높다. 이 곳에서는 사업을 개시했다가도 빠른 시간 내에 손익 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하면 바로 가게를 정리한다. 그래서일까? 시내 곳곳은 항상 새로운 공사 현장으로 가득하다. 


사업 초창기에 상권 분석에 대해서 몇 차례 강의를 들었던 일이 있다. 사업에 따라서 다르지만 사업 아이템에 따라서 장소가 중요한 사업들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창업하고 운영했던 대부분의 사업체들은 그런 장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구의 동성로는 상점 변화가 빠른 곳이다. 대구의 경제, 소비 중심지이다 보니 소비 트렌드를 어느 곳 보다 빠르게 체감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대구에서 사업을 하는 이들은 반드시 상시 체크해야 할 비즈니스워킹 루트이다. 나는 한 달에 몇 차례 이상 아침 일찍 동성로를 찾아 한적한 시내 길의 곳곳을 메모지와 사진기를 들고 돌아다닌다. 새로 생겨난 곳, 공사가 진행되는 곳, 비즈니스 모델이 궁금한 곳들을 살피고 시장조사를 하는 것이다. 궁금한 사항이 생기면 직접 부동산에 연락해 여러 가지 것들을 물어보기도 한다.



몇 해 전부터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노라고 생각한 두 커피업체의 경쟁을 상징하는 동성로의 어느 한 곳에서 결국 지역의 모 브랜드가 폐점을 하기에 이르렀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영업이 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일요일 2시간가량을 나는 맞은편 레스토랑에서 손님의 출입 유무를 살펴보았다. S브랜드에는 창가 좌석 모두에 고객들이 앉아 있었고, 끊임없이 새로운 고객이 출입문을 향해 들어갔다. 놀라운 것은 50미터도 안돼 S브랜드의 또 다른 점포들이 2개나 더 있었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S브랜드를 찾아 들어갔다. 반면 지역의 카페인 다른 곳으로의 손님 출입은 없었고, 출입문 주위에는 갖가지 프로모션 홍보 포스터가 붙었는데 가격 할인이었다.  


고객이 없다는 것은 들어오는 돈이 없다는 것이고, 돈이 없다는 것은 회사에게 유지하는 그 자체로 매달 적자를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요일 손님이 없다. 시내 한복판에". 그리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오늘 나는 한 지역 브랜드의 상징적 플레이스에서 폐점을 보았다.


그런데 로컬 카페와 모 대형 브랜드의  마주 보며 하는 이 경쟁은 마치 독립 출판사의 책과 대형 출판사의 책이 한 평대에 나란히 놓여 고객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형 출판사와 소형 출판사의 운명은 너무도 쉽게 예측이 된다.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수억 원의 돈이 이미 밑에 깔려 있는 한 권의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은 출간 직후에 급격한 차이를 보인다. 수많은 1인 출판 혹은 독립 출판사들이 한 권의 책도 제대로 내어보지 못하고 신고만 한 상태로 있다가 폐업한다. 용기를 내어 출간을 하더라도 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우리가 망한다면 사람들은 무리한 도전이라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성공한다면 사람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리라. 사업 그리고 경영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출판에서도 이 원칙은 똑같이 적용된다. 


2·28 공원을 지나치면 나오는 골목 귀퉁이 자리는 내가 몇 년째 한국의 엘리펀트 하우스 카페(Elephant House Cafe)를 세우고픈 곳이다. 

한국의 코끼리 집이라고? 코끼리 집이 아니다. 엘리펀트 하우스는 영국의 에딘버러에 있는 카페다. 그곳에서 조앤 롤링 이모님께서 해리포터를 쓰셨다. 헤르미온느와 론, 해리포터가 그곳에서 태어났다. 유모차를 앞에 세워두고 커피 한 잔씩 마셔가면서 말이다. '쿨'하지 아니한가? 


나는 작가들이 몇 시간이고 저 마다의 작업실에서 작업하다가 답답할 때면 찾아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공간. 그 공간의 이름으로 'Quiet Time In A City'를 생각했다. 집의 전세 자금을 빼서 2013년도에 작은 카페 하나를 대구의 실내 체육관 근방에 차렸다. 조용한 곳에 있는 조용한 카페다. 간판을 보는 사람은 말한다. 


"진짜 조용한 데 카페가 조용하면 망하는 거 아닙니까?"

한국에서는 상권이 가장 중요한 카페의 입지 조건인데 이를 거슬렀다. 


본점을 아주 조용한 주택가에 차렸다. 편안히 오래 머물며 글을 쓰고 생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모두의 'Coffice'를 만들고 싶은 그 꿈은 2013년에 이뤄져 지금 순항하고 있다. 이 카페의 조그마한 세미나실을 지금 워드스미스 출판사가 잠시 쓰고 있다.  4년이란 시간을 버텼고 지금 본점은 점심시간이면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성황이다. 여파를 몰아 대구의 침산네거리에 2호점을 얼마 전 오픈했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지수이지만 힘든 본점에서 4년간 한 트레이닝의 결과인지 2호점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얼마전 오픈한 2호점. 우리는 생존이 가장 우선이다. 


토니: "김 디자이너, 대구백화점 맞은편에 공차라고 있는데 거서('거기서'의 대구 사투리) 오늘 인터뷰가 진행될 거예요." 


'공차' 홍콩에서 즐겨 마시던 밀크 티 음료 브랜드다. 

출장 중이던 클레어 팀장이 보내준 약도를 보며 길을 더듬어 찾고 잇는 김 디자이너가 말한다. 

김 디자이너: "토니, 공차에 가면 공짜인가유? 크크" 

토니: "그런 개그 하지 말아요. 장가 못 간다. 그러다 진짜."

개그를 받아주지 않고 탁구공 치듯 역 스매시를 날린다. 개그 신공을 부리던 김 디자이너가 졸도할 모양새다. 

오늘은 대구의 성공인들의 스토리를 인터뷰해서 자신만의 책으로 공저하고 있는 두 명의 사람을 만난다. 인터뷰 시간은 한 시간으로, 미리 이야기를 나눈 상태였다.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인터뷰하는 건데 왜 성공 안 한 내가 인터뷰에 꼈냐고? 글쎄 나도 그게 의문이다. 


'아마도 이제 곧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서 미리 자료를 받아두려는 모양이다'라고 기분 좋게 생각했다. 

약속이 정해지면 나는 최소한 상대방에 대한 공부를 해서 그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그 첫 만남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 진중하게 경청한다. 평가와 비평 없이 있는 그대로 경청하는 것, 그것은 쉽지 않지만 중요한 일이다. 이내 인사를 나눈 2분의 인터뷰어께서 하얀색 종이를 꺼낸다.  

저자: "대표님, 저희가 준비한 인터뷰 질문 리스트입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생각해보시는 시간, 정리하는 시간 갖도록 하시죠?"


토니: "아닙니다. 두 분께서 제게 미리 지금 주신 이 자료를 따로 먼저 보내지 않은 것은 즉흥 인터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도라면 지금 제가 질문을 미리 보고 생각하는 것보다 주어진 각각의 질문에 그대로 제가 즉흥적으로 답변하겠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에서는 즉흥적인 것이 때론 숙고한 생각보다 낫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질문이 나올지 모르는 그 기분 좋은 떨림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누군가는 이런 모습을 코 파서 튕기고도 웃을 수 있는 자만심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모습을 자신감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내겐 이것은 코딱지만 한 자만심이 아니다. 한 시간 동안 일반적인 인터뷰에서 질문될 경우의 수를 훨씬 뛰어넘는 수를 준비한다. 더 긴 시간을 고민하고 자신만의 답을 내렸다는 확신이 없다면 인터뷰에 응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인터뷰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래리 킹의 CNN 인터뷰에 빠져 사람과 '사람의 대화'를 공부한 적이 있다. 진정한 토론이란 사람은 사라지고 그 사람이 내놓는 의견이 다른 의견과 서로를 정반합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2명의 인터뷰어들은 이공계열 출신 이어서일까? 내게 요구한 질문들은 끊임없는 숫자를 논하는 문제들이었다. 

"한 달의 회사 매출이 어떤지?" 

"손익분기점 전환 시점은 언제가 될 것인지?" 

"자산 자본 부채 비율은 어떻게 되는지?"  

가슴에는 뜨거운 열정을 머리에는 차가운 이성을 책을 만들려고 하는 분들은 반드시 고민해봐야 한다. 


이 책을 내면 어떤 숫자가 만들어질지.



반드시 출판사 대표가 스스로 답을 내놓아야 할 질문 리스트이다. 그래서 늘 경영자는 사색하고 고민해야 한다. 머리를 쉬어서는 안 된다. 머리가 닿을지언정 열이 나서 탈모가 올지언정 머리가 쉬어서는 안 된다. 대표의 머리는 회사의 엔진이고 심장이다. 그 심장이 늘 펌프가 되지 않는다면 조직 부처에 신선한 열정의 피가 순환되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질문, 나는 차별화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제품과 서비스 중에 왜 하필이면 고객인 내가 당신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지 알려줘야 한다. 그게 마케팅이고 영업이며 그 자체가 사업의 또 다른 꽃이다. 

1시간으로 예정되었던 인터뷰가 끝난 시간은 1시간 40여 분이 지난 늦은 오후였다. 인터뷰어 입장에서는 의미 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판단했는지 많은 질문을 제시하셨다. 카메라를 접으면서 김 디자이너가 내게 쏘아붙인다. 

김 디자이너: "토니 1시간 인터뷰면 1시간에 끊어야지, 완전 방전 다 되었구먼. 먼 인터뷰를 물도 안 마시고 2시간을 가득 채워서 합니까? 아까 손짓 발짓할 때 마감하라는 표시였는데..."

심드렁한 김 디자이너의 목소리가 저편으로 넘어간다. 나인들 왜 모르겠나. 힘이 드는데. 


부처님 왈: "한 잔의 차를 따름에도 최선에 최선을 다하고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열정은 쓰면 쓸수록 끊임없이 올라오는 무한정 에너지 소스는 아닌 것 같다. 열정이 있으면 방전이 온다. 최선을 다하고 싶어도 때론 최선을 다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때가 있다. 휴식을 통한 재충전을 하지 못했을 때다. 책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그 책을 시장에서 움직이게 하는 것은 엄청난 집중과 지속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걸 잊으면 실패한다. 힘든 게 당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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