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창업 이야기 16
세상의 시각에서 수많은 책 중 하나는 그저 한 권의 책이지만, 한 개인에게는 책의 출간이 가지는 의미가 남다르다. 그런데 E-book을 내는 것과 또 Paper-Book을 내는 게 느낌이 많이 다르다. 최근 빅뱅의 GD가 자신의 앨범을 USB에 담아 발매를 했다. 음악이라는 콘텐츠가 CD라는 디스크에 담겨 대중들에게 전달되다가 전자 다운로드 형태로 변했는데 USB에 담아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담되 시대의 트렌드에 맞춘 기가 막힌 기획이다. 팬들로서는 CD를 소장하고 싶은 마음 모두를 충족시켰다.
2015년.
평온한 토요일 오후, 아침부터 비가 왔다 개어서인지 날씨가 제법 선선하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조금은 짧아 보이는 상의를 입은 김 디자이너가 앞에서 분주하다. 자신의 보물 1호인 N사의 카메라를 요리조리 세팅하고 있다. 이마에는 "예민 중"이라는 LED 등이 표시된 듯하다. 프로로 가기 직전에 있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극단적 예민함, 오늘은 김 디자이너의 활약이 조금 필요한 날이다.
카페에 큰 카메라 한 대가 설치됐다. 오늘은 G 신문사에서 취재를 나왔다. 대구에서 일어나는 몇몇 일들 중 이슈화된 일을 주로 해외로 송출하는 일을 담당하는 지역 신문사였다. 책의 출간과 청년 창업가에 대한 스토리를 담기 위해서 취재를 나왔다. 인터뷰가 예정된 시간은 오후 5시.
그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클레어 팀장님의 지인 몇 분과 개인적인 인터뷰 또한 예정이 되어 있었다. 시간은 3시부터 4시까지. 앞서 말한 지역신문사의 기자님은 조금은 일찍 카페에 도착하셔서 반대편 좌석에 앉아 본인의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이런저런 질문과 의견에 진지하게 최선을 다해 답을 달고 있는 나를 관심 있게 지켜보신다.
기자님: "대표님, 참 힘들게 돈 버시네요. 열정 있는 모습 참 보기 좋습니다."
기자님이 김 디자이너에게 이어지는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는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신다. 김 디자이너가 옳소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펭귄처럼 아래위로 제깍 돌린다.
김 디자이너: "네, 기자님. 저희 대표님 진짜 힘들게 돈 법니다. 사람이 요령을 좀 몰라요."
토니 귀는 당나귀 귀. 안 듣는 척하면서 김 디자이너의 입이 돌아가는 모양을 보고 저 대화의 속속을 듣고 있다.
토니: '돈 쓰는 거야 쉽지. 돈 쉽게 버는 게 어딨나. 이 사람아.'
연이어 카메라 앞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하려 하니 기자님께서 기자수첩을 흔들면서 이야기한다.
기자님: "추대표님, 거 물도 한잔 마시고 한 15분 쉬시다 오세요. 거 열 좀 식히고 해야지 바로 인터뷰해가 되겠습니까? 앞에 인터뷰 2시간 동안 그래 하고 또 바로 인터뷰를 어찌하겠습니까?"
프로다움이 돋보이는 배려였다. 2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질문들에 답변을 하고 나니 황사 먼지가 끼어 안 그래도 컬컬한 목이 시루떡이 들어찬 거처럼 꽉 막혔다. 세상에 그게 머든 콱 막히면 대개 사람은 불쾌함을 느낀다. 목을 부여잡고 인상을 돌리고 있으니 김 디자이너가 새초롬하게 나를 쳐다본다.
김 디자이너: "토니, 목이 불편 습니까?"
토니: "그래, 모가지 아프다. 이 사람아. 우짜꼬?"
김 디자이너: "갔네, 갔어. 거 보이소. 내가 무리하지 말라 안 캅디꺼?"
그 날의 인터뷰는 정작 1시간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30분 만에 끝이 났다. 책을 쓰며 힘들었던 점 , 책에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점, 책의 특정 구절을 쓴 이유들에 대해서 답변했다. 이제껏 지역 대학 신문사, 작가들, 출판 의뢰 부탁 개인들만을 상대로 인터뷰를 하다가 본격적으로 인터뷰가 업인 프로와의 인터뷰를 하고 나니 몇 가지가 달랐다.
우선 인터뷰 시 상대방을 돋보이게 하고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를 해주셨다. 처음이라 모든 게 낯선 나를 위해 편안하게 대화를 리드해 주셨고 답변할 때 맞은편에 앉으셔서 긍정의 피드백을 해주셨다. 프로다움이란 상대방에게 더 많은 여유를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일을 하며 일의 과정에서 이전에는 몰랐던 많은 부분들을 배워가니 즐겁다. 배움의 달인이 되어 보고 싶다. 새롭게 시작하는 분야의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속에서 매일 배우며 그 배움으로 벗 삼아 다음 제품을 더욱 황홀하게 만들고 싶다. 첫 책을 내고 나서 약 2주간 5건의 인터뷰를 했고 2건의 강연 제의를 받았다. 책은 내가 잠을 자는 시간에도 나 대신 어느 누군가의 책장에서 펼쳐져 내 이야기를 대신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기회를 가져다주고 있다. 물론 책을 낸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자동으로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그런 것처럼 부풀리고 현혹하여 무절제하게 책을 출간해주고 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책 쓰기 코칭이라는 명목으로 받는 사이비들이 있다. 책을 내면 벤츠를 타고, 강연이 폭주하고, 유명인이 될 것처럼 광고를 하고 사람들을 현혹한다. 책을 낸다고 해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책을 내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알려질 만한 경력 혹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책을 내기 전에 이미 강의 제안이나 유명해질 씨앗이 있는 것이다. 책은 그런 씨앗이 있는 사람들에게 부스터 역할을 해주는 게 맞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문학이나 시, 에세이 같은 경우는 책을 내는 그 자체로 문학적 의미가 있다.
인터뷰 한 기사가 누군가의 폰 화면에서, 컴퓨터 화면에서 내가 잠을 자는 순간에도 읽힐 것이다. 마찬가지다. 하나의 책을 쓴다는 것은 작가가 인터뷰했던 많은 내용들이 편안히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기사가 더 장편으로 작성된 것이라고 보면 좋겠다. 작가가 자신을 특정 주제에 대해서 인터뷰한 내용이 책의 모음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잠깐 화제를 돌려 책을 쓰면 좋은 점을 살펴보면 어떨까? 책을 쓰면 무엇보다 삶의 구체적인 목표가 생긴다.
글을 쓰기 위해서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아무런 생산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면서 보내는 하루는 제법 다르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 먼저 작가는 목차를 설계한다. 집으로 치자면 척추 뼈와 자잘한 뼈들을 구성하는 골학이 집대성된 설계도랄까? 이 설계도를 바탕으로 머릿속에서 수 없이 많은 글감과 자료들이 합해지고 빠지고를 반복한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드러나기 이전에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수십 번, 수백 번 그려진다. 책도 그러하다.
작가는 글을 쓰기에 앞서 무작정 써 나가지 않고 그 설계도에 맞게 자신을 가둔다. 글 감옥이다. 글 감옥에 갇힌 작가는 퇴고와 동시에 그 글 감옥에서 퇴소한다. 그 독방에서 작가는 매일 읽힐 만한 글을 쓰던가 아니면 쓸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벤저민 프랭클린 할아버지가 이야기하신 바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목적이 삶에서 구체화되는 것과 같다. 내가 출판사 대표여서가 아니다. 한 권의 책을 낸다는 것은 한 개인을 재정립해주는 진실로 좋은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