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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현호 Jun 10. 2017

바닷가에서 만난 그녀가 읽은 책

출판사 창업 이야기 17

매일을 축제 속의 사람처럼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은 삶과 축제와 분리되어있다고 생각한다. 고된 일상 그리고 꿀맛 같은 휴식이 있는 일과 후 그리고 주말의 삶에 우리는 익숙하다. 하지만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일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사람은 매일이 축제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까? 천직을 찾으면 혹은 꿈같은 일을 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말 그대로 축제 속의 사람처럼 살아가려면 자신이 매일 축제를 여는 사람이 되면 된다. 아름다운 생각 속에 가득한 채로 살아가려면 아름다움을 봐야 하는 일을 자신의 직업으로 삼으면 된다. 작가는 한편으론 고되지만 아름다운 미를 추구하는 예술성에 집중해야 하는 점에서 축복받은 직업이기도 하다. 


토니: "거기 물 좀 줄래요?"


목이 탄다. 습관적으로 말한다. 휑한 옆자리. 김 디자이너가 옆에서 뚜껑을 열고 시원한 생수를 전해주는 것 같다. 매일 보다 보니 이제 헛것이 보인다. 김 디자이너 데자뷔(deja vu) 현상. 어딜 가나 최초의 현상임에도 김 디자이너가 옆에서 씩씩거리고 있는 모습과 겹쳐 보임. 


해운대 바닷바람이 나를 새롭게 할까


K문고 부산 센텀시티점. 새벽 고속도로를 달려 오랜만에 홀로 운전을 해본다. 고요함. 카 오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던 라디오의 방송도 대구를 벗어나자 잡음으로 바뀐다. 몇 차례 주파수를 맞추려고 해봤지만 도통 라디오 신호음이 잡히질 않는다. 시원찮다. 이내 라디오마저도 끄고 오랜만에 운전에 집중해 본다. 


오른쪽 발끝으로 전해지는 엑셀. 

누르는 대로 치고 나가는 차체. 

<좋은 차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발에 쥐가 날 정도로 밟아보니 나가긴 나간다>


인생도 이렇듯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핸들을 쥐고 원할 땐 가속페달을 밟고 지나갈 수 있어야 한다. 또다시 조금은 멈춰 서야 할 때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몫이 아닌가 보다. 우리 앞에 자주 신호등이 놓여 있으니깐, 달리고 싶어도 서야만 할 때가 있고, 서고 싶을 때 달려야만 할 때도 있다. 세상의 수많은 확률의 조합이 바로 우리 인생이 아닐까?


때론 그 인생이라는 핸들도 내가 쥐고 있지 않은 듯하다. 내가 원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았던 방향으로 일이 진행될 때 우리는 당황한다. 너무도 일이 술술 풀릴 때 우리는 기뻐하고 간절히 원했지만 일이 더디게 진행될 때 우리는 불안해한다. 내가 스스로 멈춰 서서 돌아봐야 할 브레이크를 나 대신 누군가가 밟아줄 때 우리는 피해의식에 시달린다. 


글을 쓰는 사람은 이렇듯 매 순간 의미를 찾게 된다. 피곤하지 않냐고? 피곤하다. 피곤한데 왜 그래 피곤하게 사냐고? 피곤해도 의미가 있으니깐 그래 산다. 


시골에 가면 푸세식 똥통이 있다. 이 똥통에 빠지면 똥독이 오른단다. 그 똥통 속 똥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꿈을 꾼 적이 있다. 사람들에게 말했다. '개꿈'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똥독은 똥통에 빠질 일이 별 없기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글을 늘 대하는 사람이 오르는 독이 있으니 이름하여 글 독. 작가로서 출판사 대표로서 늘 글만을 바라보고 살기에 나는 활자에 시달리면서 살아간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주기적인 'Cooling Down(쿨링 다운)', 냉각이다. 엔진도 과열되면 냉각수를 뿌려야지. 파란 바다보다 더 큰 냉각수는 없는 듯하다. 오늘은 해운대를 찾아가는 길이다. 가는 길에 센텀시티 K문고에 들러 도서 상태와 진열 상태도 체크할 요량이다. 


약 한 시간 반쯤을 달렸을까. 이내 도착한 부산의 센텀시티. 벡스코 앞 S백화점이다. 이 안에는 부산의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K문고 센텀시티점이 있다. 나는 오늘 이곳에 책의 진열상태와 납품된 책의 재고상태를 파악하러 왔다. 


Motion Brings Emotion(모션 브링 이모션). 


움직임은 감정을 만든다. 매일매일 똑같은 장소에서 매일 똑같은 일을 하다 보면 딱 그만큼의 감정이 내게 새겨진다. 하지만 새로운 장소에서 나를 돌아보는 과정, 그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 동안 나는 잠시 나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우리의 세계에서 나를 돌아본다. 


K문고의 개점 시간을 기다리며 복도에 서서 매일 아침 들어오는 주문량을 체크하고 있을 때였다. 책 주문이 모자란 날에는 의기소침할 때도 있다. 분명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한 것보다 시장의 반응이 미지근할 때 그럴 땐 실망감이 살며시 고개를 든다. 팀원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 늘 에너제틱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한다. 하지만 불태운 열정이 지나고 난 자리에 실망스러운 결과가 있을 때는 타고 남은 재처럼 흉흉한 피로가 찾아올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으레 자신감보다는 두려움이 올라오기도 한다. 


개점시간이 되어 책이 진열된 곳으로 간다. 그리고 아직 팔리지 않고 고객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책을 이리 만지고 저리 만져 본다. 책에게 고맙고 감사한 순간이다. 


이 책이 있었기에 지난 내 삶의 하루하루는 최고의 하루였다. 열정적이어야 했고 간절했기에 나의 최선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내 역량의 최고를 다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결과를 기대치로 정하고 그 기대를 맞추기 위해서 노력한 기억들이 가슴 깊은 곳에서 떠오른다. 오전의 2시간은 그렇게 책 서점에 앉아 우리가 만든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한 권의 책을 내고 나니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도전의식이 더 생기게 됐다. 공자 할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했다고 한다. 최고의 용기는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음이 아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마음이다. 그것이 진정한 용기다.


우리 책을 읽는 독자를 목격하다


나는 요즘 늘 우리가 만든 책을 들고 다닌다. 김성오 대표는 5평도 안 되는 약국을 알리기 위해 3년 동안 택시만 타면 '육일 약국 갑시다'하며 약국을 택시기사들에게 홍보했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성공 이야기만을 들으며 그들의 성공에 대리 만족하는 건 내 취미가 아니다. 삶에 적용하고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적용한다. 난 책이 나오고부터 하루도 빼먹지 않고 내가 걷는 매 순간마다 다이어리와 책을 손에 들고 다닌다. 가까운 곳에 장을 보러 갈 때도 편의점에 갈 때도 책을 들고 다닌다. 


해운대. 

오랜만에 찾은 바닷가다. 산은 내게 새로운 시작을 앞서 찾는 장소라면 바다는 나에게 하나의 여정을 끝낼 때 찾는 목적지다. 산은 내게 오를 준비를 하게 하지만 바다는 내게 내려놓을 준비를 하게 한다. 


한창 생각의 나래를 펼치며 광안대교를 달리고 있다. 

바닷바람이 사정없이 나의 귀뺨을 때린다. 정신줄 놓지마라고 때린다. 

아프다. 몹시 아프다. 그러니깐 청춘인가? 

이제 청춘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어중간한 나이가 되었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한 카페의 창가에 앉았다. 

맞은편에 커피를 마시며 무언가 열심히 읽는 한 여성분을 본다. 

손에 입을 지긋이 가져다 대고 읽는 책의 두께가 눈에 익다. 


바닷가에서 만난 그녀,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우리의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라이프 볼륨 2.?!


'어?! 저거 우리가 만든 책인데?'


부산의 해운대의 바닷가에 월요일 아침 차를 마시는 한 여성 분이 우리의 책을 읽고 있다. 가슴속에서 행복한 감정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이 올라온다. 나는 그날 그 독자분이 책을 읽고 자리를 뜰 때까지 그 카페에 앉아 예의 주시했다. 고객이 주는 피드백은 답이다. 우리가 가진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다시 오른 부산-대구 고속도로. 이 고속도로가 생기고 부산을 오가는 시간이 몇십 분이나 단축되었다. 새로운 길은 더 단 시간에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게 나를 안내해준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더 나은 효율을 추구하기 위해 늘 고민한다. 나는 책의 기획, 제작, 유통, 물류, 마케팅에 대해서 각 분야마다 매일 더 나은 워드스미스 출판사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T자형 회사. 이 T자를 뒤로 뒤집으면 ⊥가 된다. 폭넓은 인프라가 있지만 그 넓은 밑변이 있어야 높은기둥을 세울 수 있다. 


무언가에 미쳐서 무언가만을 생각하며 살다 보면 사람은 전문성이 깊어진다. 하지만 때론 이런 전문성이 그로 하여금 생각의 너비를 좁고 깊게 만든다면 이는 좀 더 생각해 볼 일이다. 생각은 T자형으로 먼저 너비가 넓어야 하고 그다음 그 넓은 너비 중에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 대한 깊이가 있어야 한다. 그때 왜곡이나 편견이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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