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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현호 Jun 12. 2017

죽음이 남긴 의미

출판사 창업 이야기 18 

슬프게도 첫 책을 출간하고 마케팅을 하는 동안 스티브 팀장의 소중한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한 명은 아직 세상을 떠나기엔 너무도 이른 서른 한해의 삶을 살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그 친구를 나는 2007년 겨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해말게 웃고 수줍음이 많던 그 친구는 프로 골퍼 선수로 활약을 했던 멋진 친구였다. 누구보다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았는데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다른 한 분은 스티브 팀장의 외할머니로 뇌졸증으로 쓰러지신 후 병원에 계시다가 수면중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탁트인 평지도 있고 내리막도 올거야. 스티브.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스티브 팀장. 너무도 마음이 아파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덩달아 숙연해진다. 말없이 가만히 안아주었다. 12년 전 군에서 처음 만나 2007년부터 함께한 그는 오랜 시간 함께 동고동락을 했다. 


삶과 죽음은 결코 동떨어진 별개의 일이 아니다. 그 끝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붙어있다. 죽음은 다른 누군가의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웃 또는 나에게도 곧 일어날 일이다. 하지만 그런 죽음으로 인해서 이 삶에 허무함을 느끼고 속절없는 체념을 하며 보내기에 우린 너무 젊고 삶은 너무 짧다. 끝이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허무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특별함을 선물해준다. 


바쁘게 현재에 매몰되어 살아가다가 이런 일을 대하게 될 때에 나는 숙연히 삶을 바라본다. 


그래도 다시 일어서야 한다.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아무리 슬프고 힘든 일이 우리를 세차게 밀어내도 우린 꿋꿋이 앞과 옆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살아내야 한다. 살아지는 삶이 아닌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토니: "스티브 팀장님, 상심이 크겠지만 3일만 실컷 목놓아 울고 마음껏 슬퍼하세요. 일주일 정도는 회사에 나오지 말고 발인까지 다 잘 마치세요. 잘 보내야 마음에 남은 추억도 상처와 함께 잘 여뭅니다." 

굵은 눈물을 흘리는 스티브 팀장이 소리 없이 흐느껴 운다. 내 마음도 꺼이꺼이 운다. 

그렇게 서울로 올라가는 KTX에 스티브 팀장을 보내고 동대구역에서 출판사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나는 몸과 마음을 다진다. 

감정은 대뇌변연계에서 일어나는 호르몬 작용이다. 이 번연계는 뒤통수에 자리 잡는다. 뒤통수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어해내려면 명확한 앞통수에서의(전두엽) 명확한 활동이 필요하다. 혈액을 뒤통수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앞통수로 보내야 한다. 

차를 세우고 나 또한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모든 선은 이어져 연결되어있다. 누군가가 떠나면  남은 이들에게 깊고도 넓은 파동을 일으킨다. 연결된 선이 강하고 굵을수록 더욱 그러하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본다. 친구에게 감사하다, 외할머니에게 감사하다 말을 한다. 그리고 다시 지금 집중해야 하는 일의 리스트를 바라본다. 슬픔을 이겨내고 저항하지 말고 그래서 억누르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의식을 전환해서 묵묵히 나의 일을 해나가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만이 잠시 트랙을 벗어나 흔들릴지도 모를 팀원들을 굳게 목적지로 재정열 할 수가 있다. 


죽음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삶에 대한 집착이 아닌 뜨거운 삶에 대한 애착이어야 한다. 무념과 무관심과 집착의 그 어느 중간지점에 위치한 애착이어야 삶이 더욱 보람 있다. 

책을 내면 좋은 것은 이러하다. 어쩌면 마지막 날 내가 하고픈 말이 종이 한 장에 급히 씌어 남겨지기엔 턱없이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생의 초를 태워 배우고 깨달은 바를 기록에 남겨 읽힐 만한 가치가 있는 글로 매듭 지어놓는 것은 삶의 정리에도 탁월한 방법이 된다. 

기계의 대명사로 불리는 컴퓨터도 작동하면서 찌꺼기를 남긴다. 이곳저곳 널 부러진 컴퓨터 파일 조각들을 정리하는 디스크 조각모음이 있듯이 삶을 살아가며 남겨진 여러 조각들을 모음 하는 것이 바로 글쓰기이다. 그 글의 꼭지가 모이고 모여 하나의 책이 된다. 그리고 책은 손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온몸으로 온 존재가 쓰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작가의 존재에 직,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세월의 고된 삶이 지나며 새겨낸 주름이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뺨에 파여 있다. 일을 할 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일의 내용이 아니다. 똑같은 물고기 잡이라도 어부에겐 그것은 Labor(노동)이나 낚시를 하는 이에겐 그것은 Leisure(취미, 여가)이다. 같은 L로 시작하는 Life(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두 축이지만 그 일을 대하는 태도가 경험의 질을 결정한다.  

죽음을 앞두고도 변함없이 묵묵히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지속적으로 하고픈 일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 답을 아는 이라면 분명 행복한 이다. 그런 점에서 서점으로 향하고 있는 나의 눈엔 흐르는 눈물은 고이 멈추고 새로운 오늘의 희망이 태동한다.

석가모니께서 말씀하셨다. 

삶은 고다. 
이 고(苦:쓰디슴)에서 희(喜:기쁠 희)를 찾아 의미를 더하는 매일이야 말로 영원히 사는 하루가 아닐까?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 책을 낸다는 것은 그런 의미와 같다. 

건강해야 한다. 천재성은 지속성을 의미하므로 건강해야 오래 일을 지속할 수 있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고 일의 강도가 높아지면 꼭 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몸 관리이다. 사람이 일이 잘 안 풀리면 성인군자 혹은 동자 빼고는 열을 낸다. 열은 화를 동반한다. 몸에 열이 나면 몸이 아프다는 증거다. 

손발이 차갑게 식어도 혈액순환이 안 되니 그것도 몸이 안 좋은 증거겠지. 셰익스피어 형님은 말했다. 육체는 마음이 노니는 정원이노라. 매일을 건강한 생각과 식단으로 장수하길 바라본다. 그저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자는 게 아니다. 의미를 만드는 장수. 그걸 하고 싶다. 오늘은 그 첫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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