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현호 Jun 12. 2017

꿈꾸는 사무실

출판사 창업 이야기 19 

세무서에서 사업자 등록을 받을 때의 일이다. 

담당 직원: "그래, 출판사가 뭐하는 데라꼬요?" 

날카로운 눈초리로 세무공무원이 묻는다. 묵직한 샘플 책을 들고 간 나는 대답한다. 


토니: "책을 기획하고 제작해서 마케팅하고 유통시키는 전체 일을 하는 곳입니다."

요리조리 관련 서류를 살피고 가져간 샘플원고를 보며 이내 말한다. 

담당 직원: "이거 책 좀 복사할게요. 과장님, 결제받을 때 필요하니깐 좀 쓰도록 할게요. 그리고 최종 승인은 근무일 기준으로 3~4일 정도 걸리니깐 그때 다시 오세요."

3~4일을 거북이 목 빼듯이 기다려도 세무서에서 답이 없자, 나는 옷을 동여매고 칼바람을 헤치고 북대구세무서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돈이 오가는 모든 일을 합법적으로 하려면 사업자등록을 해야 한다. 거래처에 세금계산서도 발행해줘야 하고 각종 업무에 사업자등록 번호가 필수로 요구된다. 

각 관할 구청에서는 출판사 신고업무를 맡고 있으며 출판사 신고를 마치고 나면 출판사 신고증을 가지고 사업자등록을 하게 된다. 드넓은 사무실 안에 20분쯤 기다렸을까, 아주 분주해 보이시는 세무공무원이 나를 부르신다.

담당 직원: "오래 기다리셨지요? 이거 지금 과장님한테 다시 결제를 좀 받아야 하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때마침 전자책의 미래에 관한 자료를 검토하고 있던 터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다시 15분쯤 기다렸을까, 저기 담당공무원이 과장님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이거 쉽게 해결될 줄 알았더구먼 머가 문제지?' 답답해서 출두해야겠다는 본능이 안에서 올라온다. 얼굴을 새초롬히 들이밀고 '저 여기 있습니다'하고 옆에 서니 땀을 흘리시던 공무원님이 나를 과장님께 소개를 해주신다.

토니: "안녕하세요. 출판사 사업자등록을 내려고 하는 추현호입니다. 혹시 제 신청 서류에 문제가 있나요?" 

날카로운 눈빛의 세무과장님은 나를 보시고는 이내 말씀하신다. 

세무과장님: "요즘 허위로 사업자 등록을 내고 사업도 안 하면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이 많아서요. 그래 이건 머(뭐) 사무실도 제대로 없고 거래처 명부도 없는 것 같은데 출판사 일이 뭐 어떤 거라고요?" 

저 밑에서 올라오는 '이거 먼 소리야! 멍멍 @.@ '하는 분노의 감정을 일축하고 하와이에서 한 달을 원주민과 함께 살고 나면 입가에 지어지는 코나 미소를 입에 머금고 이야기를 10분간 했다. 

요지는 출판사의 일은 인쇄소의 일과 다르며 출판사야 말로 지역의 문화콘텐츠 사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코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사업자등록을 내고 사업을 하지 않는 허위 신고자들과 다르게 나는 최종 원고가 이미 완성이 되어있고 사업자등록과 동시에 물류단지, 인쇄소 거래를 맺게 된다고 과장님께 웅변을 토악질했다.


카페를 낼 때 사업자 등록이 원활히 이뤄졌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출판사 사업자등록에서 시간이 지체되어 마음이 급했다. 한번 거절을 받으면 더 신경 쓸게 많아지기에 무슨 일이든 처음 할 때 제대로 준비해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신경이 쓰였다. 

무언가를 할 때 상대방이 궁금해할 요소들에 대해서 명확히 인지하고 답변을 만들어 둔다면 거래 시의 신뢰감을 더 쌓을 수가 있다. 과장님의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답변을 한 탓일까 승인 도장이 떨어지고 사업자 등록증이 나오기까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손에 놓인 사업자등록증을 들고 북대구 세무서를 나서니 우리의 코피스(Coffice: Coffee와 Office의 합친 용어)에서 작업 중인 팀원들이 떠오른다.

조그마한 카페 세미나실에서 출판사 사무실을 차릴 때 이 단칸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4개의 책상을 모으고 컴퓨터를 모으니 제법 사무실 느낌이 났다. 

어떤 사람들은 일하는 사람이 중요하지 무슨 공간이 그리 중요한가? 일하는 태도와 정신만 바르면 어디든 멋진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맞는 말씀이다. 정신이 바르면 어디에서든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하지만 환경이 도와준다면 일의 효율과 성과는 더욱 높게 올라간다. 

사무실 안을 바라보고 있자니 처음 우리의 컴퓨터를 하나하나 들이던 생각이 난다. 무거운 쇳덩어리로 된 Unibody(유니바디, 한 몸) iMac 컴퓨터를 들고 기분 좋게 웃던 김 디자이너와 스티브 팀장, 가장 많은 디자인 작업과 소셜마케팅 작업을 해야 하기에 창도 크다 27인치. 교정, 교열, 윤문과 편집을 총괄하는 클레어 팀장과 유통, 물류를 맡고 있는 강 팀장은 21.5인치 화면을 사용하고 있다. 나? 나는 여러 가지 자료도 분석 비교해야 하고 동시에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저런 화면을 번갈아 가며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 PC보다 MAC이 편하다. 기분좋은 스티브 팀장과 살찐 김 디자이너

밀폐되고 가장 구석진 자리는 독립성이 중요한 나 건들지 마의 김 디자이너의 공간이고 그 옆자리는 성격 좋은 스티브 팀장의 자리를 배치했다. 고집과 성격이 강한 두 사람이 밀폐된 공간에서 오래 호흡하다 보면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 상사. 공감이 쉽게 될 법하다. 

부드러움과 대명사인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의 스티브 팀장과 강함의 대명사 김 디자이너는 얽히고설킨 드렁칡 마냥 매일을 사이좋게 지낸다. 문을 열고 모두를 바라보는 메인석에는 클레어 팀장님의 자리가 놓였고 강 팀장은 사무실 안보다는 카페 로비가 편한가 보다. 항상 카페 로비의 벽을 벗 삼아 일을 한다. 팀원들의 일하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 팀원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배가 고파진다. 

출판사 일을 하며 다양한 인쇄소 그리고 출판사, 디자인 회사 등의 사무실을 갈 일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일을 하는 공간, 회사원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사무실 풍경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조그마한 1인 출판사(5인 이하의 출판사는 1인 출판사로 분류됨) 사무실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국영방송 KBS에서 취재를 나오게 된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죽음이 남긴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