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창업 이야기 24 마지막
운명 에로의 회귀: 나의 운명은 출판사 대표
저는 대구에서 워드스미스라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34세의 조금은 젊은 출판인 추현호입니다.
지금은 현재 5명의 동료들과 함께 출판업을 하고 있고 620쪽 분량의 The Life Vol.2와
신입생 장봉식이라는 2종의 에세이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2016년에는 책을 출간하지 않았고 2권의 책 기획에 참여를 했으며 2017년에 워드스미스 출판사
이야기와 함께 책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영어교육과 자기계발 에세이, 외서 번역서 등
총 7종을 출간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3년 내 20종의 책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출간 종류는 투고 원고, 기획 원고를 영어교육, 여행, 자기계발 에세이 부분에 집중해 전문 출판사로 발돋움하려 합니다.
외국 번역서의 경우에도 저희 출판사는 단순히 외국의 영어 원서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의 책을 외국어로 번역해 수출하는 시장을 개척하려고 합니다.
지방 대구에서 출발해 한강을 벗 삼아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워드스미스의 비전이 태어난
스토리를 시작하려 합니다.
책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
저에게 있어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수없이 많은 창이었습니다.
대구에서 태어나 대학교도 고향 대구에 있는 경북대학교에 입학했기에
줄곧 지방에서 학업을 하고 생활을 하였습니다.
대구는 인구 250만의 도시입니다.
분지지형인 탓일까요?
조금은 보수적이고 고집이 센 사람들이 많은 특징이 있다고도 합니다.
때로는 경직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평도 듣습니다.
그런 대구에서 태어난 제가
40여 개국의 세계를 누비고 하나씩 작지만 의미 있는 꿈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책에서 받은 깨달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자녀들에게 학생들에게 책을 통해 꿈을 찾는 나침반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곳에서 강연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수술실에서의 첫 만남. 오디오북
1997년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 기간을 일주일 앞두고
유리컵을 밟아 발바닥의 신경이 절단될 뻔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대구 서구의 집에서 중간고사 공부를 하다가 집으로 온 전화를 받기 위해 수화기를 들러 가는 중에
방바닥에 놓인 유리컵을 차마 보지 못하고 밟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고통스러운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피는 흘러넘쳐 온 방바닥을 적셨습니다.
겁에 질린 채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아버지였습니다. 당시 섬유업에 종사하시던 교통사고를 당하여
성모병원에서 무릎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 중이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상황을 말씀드렸고
당시 시장에 잠시 장을 보러 간 어머니를 기다리기는 너무도 출혈이 심한 상황이었기에
근처에 계신 큰아버지가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대구의료원에 가니 상처가 너무 깊게 베여 전문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하며
신경손상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신경이 손상될 시 평생 발을 절어야 하는 위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계신 정형외과 전문병원으로 저를 오도록 큰 아버지에게 부탁했고
응급지혈을 한 후 다시 급하게 이동하여 성모병원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찢어진 상처 사이로 의사 선생님은 유리조각을 찾기 위해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상처를 벌리고 왼발의 상처부위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유리조각이 들어가 있진 않았습니다.
곧이어 하반신 마취를 하고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허리 아래로는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었지만
수술도구들이 부딪히는 쇳소리와 마취약이 퍼져 나무 목석같은 제 몸을
이리저리 수술하고 있는 의사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져서 너무도 불안했습니다.
바로 그때 한 명의 간호사가 제 옆에 앉아서
약 4시간 동안 이어진 하반신 마취 수술기간 동안 틈틈이 한 권의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제 생에 태어나 처음으로 읽은 오디오북이었습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한 가지 명확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책이 한 사람의 운명과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갈매기의 꿈에서 시작한 책 사랑은 나의 책사랑에 더욱 불을 붙였습니다.
당시 저는 조금 이른 나이에 경제 경영서로 제 관심이 집중됨을 느꼈습니다.
사업가이신 아버지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며 책 속에 수많은 경영자의 삶 속에 저를 대입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책에 대한 사랑이 우수한 성적으로 나를 이끌다.
1997년 중학교 1학년 때 발바닥에 큰 상처를 입고
평생의 후유증을 앓을 수도 있었지만
아주 미세한 차이로 신경이 손상되지 않아 장애는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체의 장애보다 더 큰 마음의 장애 또한
저는 병원에 있는 동안 겪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투혼을 발휘해 대구 성모 병원 안에서 저는 열심히 공부했고
일주일 후 시험을 위해 퇴원한 중간고사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책을 보거나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독서에 빠져들어 당시 대구의 지역 서점이었던
제일서적에 틈이 나면 찾아 드넓은 서가와 매대 곳곳을 누비는 탐험가가 되어 책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김영사에서 나온 장승수 씨의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는
중학교 때의 공부를 바라보던 저의 시각을 온전히 바꿔놓았고
방학 때마다 대구의 서부도서관에서 봉사활동과 글쓰기 프로그램,
독서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면서 책과의 열애는 깊어져만 갔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책 사랑으로 저는 공부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고
중리중학교에서 상위 1프로의 성적으로 졸업을 하여
대구의 특수 목적 고등학교인 대구외국어고등학교 영어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대구외국어고등학교에서 문화적 자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다.
대구 서구 지역의 공단지역에 태어난 저는
대구의 교육열로 유명한 수성구에서 온 아이들과의 첫 교류에서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그들의 세계는 저와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도 사뭇 달랐습니다.
대구외고에서 보낸 학창 시절은 제 인생에서 가장 재밌고 행복했던 순간들 중 한 부분이었습니다.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한 고교 친구들은 여전히 제 삶의 보석이고 고마움 가득한 존재들입니다.
저는 어려움이 있고 답답할 때마다 교과 공부 외에 다양한 독서를 통해서
답을 찾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고등학교 1학년인 저에게는 다소 어려운 감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프랑스 철학자 브뤼디에의 “문화적 자본(Cultural Capital)”이란 개념을 접하게 되었고
이 개념이 그 당시 저의 의문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는 중요한 힌트가 되어주었습니다.
문화적 자본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경제적 자본이나 외형의 자원이 아닌 그 사람 내부에 흐르고 있는
철학, 심리, 가치관 등과 같이 내면적인 프레임이라고 쉽게 나름의 정의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외국에서 살다온 아이들, 상류층 그룹의 친구들 틈에서도
꾸준한 독서를 통해 스스로 문화적 자본을 계속해서 축척해나가면서
열등감을 느끼기보다는 제 자신을 바로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타인과의 비교보단 스스로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춘기의 정신을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책은 실로 저를 행복하게 하는 소중하고도 중요한 벗이었습니다.
고등학교는 기숙사 학교여서 학교도서관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저는 매일 도서관을 방문하면서
다양한 신간도서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좋은 생각이라는 월간지에 깊은 매력을 느끼게 되어 사연을 보내 채택되기도 하였으며
학교 교지인 향연이라는 교지에 글을 기고하고
편집 과정에도 참여하며 책을 쓰고 나누는 것의 의미에 대한 고찰이 시작되었습니다.
글을 읽고 이해하며 사색하던 차원에서 나아가서 타인에게 생각을 전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나누는 것이
너무도 매력적인 일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출판사 창업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이 17 소년의 꿈은 시작되었지만 삶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연이어 찾아온 시련에 저는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친구분의 회사에 서준 재정보증이 넘어와 아버지의 사업부도로 이어졌고 가세는 기울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기숙사에서 돌아와 빨간딱지가 온 집에 붙어있는 모습을 마주 하고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저는 그 딱지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서울의 대학에 입학하는 대신 장학금을 받고
국립대학교인 경북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입학식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도 없이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고 어려움에 직면한 제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다시 독서에 몰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책 속에 답이 있다고 누구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제 삶에 큰 방향을 잡아준 책은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출판사에서 나온
앤서니 라빈스의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라는 책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곤 매료가 되어 그 책을 부여잡고
대학생활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대학생활은 대단히 바쁘고 버거웠습니다.
2003년도에 입학한 경북대학교 경영학과에서의 생활은
학교-아르바이트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책을 늘 놓지 않았습니다.
책에 대한 사랑은 2005년 군 입대 시기에 절정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군입대 전 한편의 글을 썼습니다. 내가 지킬 우리 황토를 직접 밟아 느껴보고
우리 국토를 지키며 매일 군 생활을 하는 동안 기억하고 싶다는 내용의 에세이였습니다.
진심을 눌러 담아 쓴 그 글이 제게 약 1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동아제약에서 주관하는 박카스 국토대장정의 대원으로 선발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저는 600킬로미터를 마산에서 서울까지 횡단하며 약 100가지의 중요한 질문을 만들었습니다.
2달 후 다가온 군입대 후 제 스스로 꼭 답변하고 제대하고 싶은 질문 리스트였습니다.
질문이 답을 만든다는 것을 책을 통해 배웠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만든 질문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출판사를 만들까 였습니다.
2005년 8월 11일 저는 육군 현역으로 50사단 훈련소에 훈련을 받고
전라북도 임실 신평면에 위치한 제 6 탄약창에서 탄약 취급병으로 배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의 임무는 탄약 창고 주변을 관리하고 하나에 수억 원에 이르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등을
잘 보안 유지하는 중책이었습니다.
이등병 신병 기간 동안 보인 성실함과 정확한 일처리를 인정받아
탄약 취급병에서 행정병으로 보직이 인사이동되었고
그 이후로는 부대 내의 모든 사항을 기록하는 부대 일지를 도맡으며
대대급의 부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 미디어를 관리하는 인사, 서무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중학교 3학년 내내 서기를 맡으며 학급일지를 썼던 과정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저의 삶은 기록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기간에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군입대 전 첫 포문을 연 해외연수 일정이었습니다.
2005년 싱가포르 커뮤닉아시아에 학교 대표로 선발되어
군 입대 전 세계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영어에 대한 강한 갈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드넓은 세상에서 영어를 통하지 않고는 도저히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군 생활 2년, 약 300권의 책과 10권의 몰스킨 노트를 채우다.
저는 날마다 책을 틈틈이 읽고 메모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소 형편이 어려워 비싼 노트를 쓸 여유는 없었지만
소중한 한 페이지마다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아둔 돈으로 2만 원 정도 하는 몰스킨 노트를 구입했습니다.
톨스토이와 다빈치가 아이디어를 쓰고 집필했다는 노트의 역사가 너무도 와 닿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군에 있으면서 저는 전라도 부대 내의 병영문화 개선을 위해서
연등 제도를 대대장님께 기획안을 써서 보고를 드렸고
그 기획안에 근거한 것인지 어떤 이유인지 연등제도가 시행되어
10시 취침시간 이후에 2시간 동안 희망자를 받아 자기계발과 독서 및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로 몇몇 병사는 군대 기간 동안 자격증과 공무원 시험에도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밤 10시부터 12시까지
야간 초소 근무와 불침번 근무가 없는 날은 연등을 신청해서
그날 배우고 익힌 것들을 글로써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의 군 생활은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때 매일 저와 함께 연등에 참여했던 부대 내의 PX병인
김승범 군은 2007년 군대를 전역하고 난 후 고향인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와
같이 일을 하며 시기를 준비해 2010년부터 함께한 김진희 디자이너와 함께
2014년 12월 마침내 출판사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첫 책을 기획, 집필, 뽑다. 2009년 2월. The Life Vol.1
군을 전역한 2007년 8월.
저는 글을 쓰는 물리적인 행위가 온 존재로 하는
정신적인 행위와의 교집합이 많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 진심이 전해지고 더 살아있는 생동한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던 터에
군 생활 동안 많이 읽고 심취한 심리학 저서들을 읽던 중에
NLP(Neuro Linguistic Programming)이란 대체 심리치료기법을 매료되었고
그 분야에 가장 뛰어난 한국인 트레이너분들에 대한 책을
모두 휴가 때마다 나와서 읽고 틈틈이 메일을 보내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연락드린 Y 교수님, S 소장님, S 박사님과는
군 전역 전 마지막 휴가를 모두 서울에서 보내며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수없이 드린 편지에 모두가 손발을 드셨습니다.
그중 서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 맞은편에 위치해있던
S 박사님의 연구소에서 원한다면 일을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저의 열정과 노력에 감동하신 박사님과 사모님께서
제게 특별히 기회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휴가를 보내고 부대에 복귀해
전역 시까지 생각을 정리했고 군 제대 후 바로 서울로 가서
한번 일과 심리상담의 중심에서 현 상황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전역 날 아버지께 제 뜻을 말씀을 드리고 이튿날 짐을 싸서 서울에서의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연구소에서는 다양한 영어책을 번역하고 기획하고
국내에 책을 내는 일을 또한 자체 출판사로 하고 있었는데
저는 실장으로 일을 하며 영문들을 번역하기도 하고
시장에 마케팅하고 연구소를 찾은 고객들에게 판매를 하는 역할을 보조했습니다.
전화상담뿐만이 아니라 연구소를 내방한 고객들에게
기초 심리상담 역할을 하는 것도 저의 몫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7시, 한남동에 얻은 지하방에서
명동으로 출퇴근을 하며 서울을 한껏 느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연구소는 MBC 무한도전에 출연하기도 해서 저는 언론의 힘과
출판의 힘에 대해서 상당히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게 잘 진행이 되고 있었지만 여러 사람들의 심리 상담이 주된 업인 연구소의
일보다는 교육과 출판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세상에서 역할을 하고 싶다고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거제도에서 홀로 계시던 어머니가 산에서 미끄러지셔서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겪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회복기간까지 곁에서 머물며 밥상을 차리고 몸을 돌보았습니다.
3개월 동안 제게 수없이 많은 기회와 사랑을 주었던 연구소에서는
일을 그만두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2007년 11월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연구소의 박사님의 아내 셨던 국장님은 눈물로 저를 배웅해주셨고
그 소중한 인연은 아직까지도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박사님과 국장님은 제 인생의 은인이십니다.
한 달이 지나고 어머니가 깁스를 풀고 부러진 뼈가 붙을 때 즘
청소년위원회의 두바이 정책 사절단으로 선발이 되어
두바이에서 7일간을 연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두바이에서 보낸 7일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2005년 5월 싱가포르에 이어 2007년 12월에
두바이에서 제가 느낀 것은 영어에 대한 갈증이었습니다.
훗날 영어로도 책을 내서 우리나라의 출판물이 해외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대구외고 영어과를 전공했고 학부에서는 영문학을 복수전공으로 공부를 했지만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영어에 대한 갈증은 쉽사리 줄지 않았습니다.
7일간의 전국에서 모인 뛰어난 청년들 틈에서 저는 가슴속에 영어정복에 대한 목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영어를 배우는 것에서 나아가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 되고자 다짐했고
그 다짐은 약 10년간 저의 가슴에서 핵심이 되었습니다.
출판사를 경영하고 창업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자본력이 필요했습니다.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서 드는 제작비와 유통, 물류, 광고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이미 시장조사를 통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9년에 창업한 피자가게를 병행하며
틈틈이 영어를 가르치며 돈을 모으고 영어로 관련된 책도 내고 거기서 시작해
자기계발 에세이, 여행, 배움에 대한 책을 내자는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두바이에 다녀와서 2008년 2월 저는 대구로 내려올 것인지
서울에서 조금 더 남아있을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경북대학교 경영학부의 추천으로
서울대학교 경영학부에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2008년 1학기를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류학생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매일이 열심이었습니다.
대구의 캠퍼스와는 다른 캠퍼스에서 공부를 하면서
저는 다양한 캠퍼스에서 공부를 해보는 것이 젊음에는
큰 사고의 전환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화두였던 영어정복과 넉넉지 않은 형편으로도 해외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교환학생 제도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열심히 준비한 결과 경북대학교 학생 최초로
슬로베니아 류블랴냐 경영대학(섬머스쿨), 미국 미시시피주립대학교(1년), 호주 퀸즈랜드 대학교(6개월)
3 대륙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며 경북대학교 총장님 명의의 글로벌 리더상을 수여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교와 지역 정부의 후원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부를 졸업하기 위해서 언어학과 관련된 학점을 이수해야 했지만
도서관과 대학 출판사 등을 전전하며 출판의 생태와 제작과정에 집중을 놓지 않았습니다.
이 일련의 모든 과정을 적은 책을 한 권 내겠다고 마음을 먹고
2008년 12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책을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The Life Vol.1 나의 삶, 꿈 그리고 열정이라는 부제로
집필한 그 책은 결국 두 사람의 독자에게만 읽히고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책을 읽은 제 소중한 사람들은
저의 열정을 그 책을 통해서 확인했고 제 진심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결 같이 세상의 부침과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그들에게 워드스미스 출판사를 창업하겠다는 제 자신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북대학교 미국 미시시피주립대학교 학생대표로 선발되었으며,
한미친선 서클 학생대표로 미국 장군님 표창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미국과 맺은 인연은 2014년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섬머스쿨에서 수학하게 되면서
더욱 깊어지게 되었고 미국의 교육시스템과 유학 시스템 및 출판 시스템에 깊은 이해를
할 밑바탕인 문화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미 연합이 한국에 가지는 중요한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 편파적인 시각을 가지는 것은
출판업에 종사하려는 저에게 대단히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유럽과 호주에서 균형 잡힌 교육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경험해야 할 필요성을 늘 실감하고 있었고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냐 경영대학과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섬머스쿨에 참여해서
비즈니스 영어와 영어 교수법을 연수받으며 영어교육 전문 서적을 번역, 출간하는 비전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영국에서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의 직원들과
함께 2주를 동고동락하며 보낸 기간 동안 한 권의 명저가 어떻게 출간 기획이 되고
마케팅이 되며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읽히는지를 옆에서 짧게나마 볼 수 있는
중요한 모멘텀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호주에서는 브리즈번 주의 퀸즈랜드대학교에서 노벨상을 받은 생물학자의 강연에 참가하기도 하고,
한영 통번역과 미디어에 대한 수업을 받으며
외국 출간물과 미디어의 교차 출간 및 번역 검증에 대한 비전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출판업에 대한 비전을 생생히 할 수 있었던 것은
런던의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The School Of Life의 섬머스쿨에 참여해 일주일 동안
유럽인들과 함께 했던 삶에 대한 세미나에서였습니다.
The School Of Life의 1층에는 다양하게 전시된 책들이 있었는데
그 책들을 보며 제가 세우고 싶었던 명문장가라는 뜻의
워드스미스 출판사의 전체적인 방향을 기획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행복에 기여하는 철학을 퍼뜨리는 출판사
Good to Great이라는 비전이었습니다.
아시아인은 오로지 저 혼자였고 모두가 유럽, 미국, 아프리카인 속에서
저는 한국어로 된 수많은 문학작품과 소설들이 해외로 번역되어 나가는 꿈을 그리고 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제가 호주에서 유학하는 동안
전 세계 붐을 이끌 때 저는 제 인생의 영웅 중 한 명이었던
호주의 수영 금메달리스트 이언 서프를 그의 자서전 출간 기념회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I want to publish my biography in the very near future. You give me a lot of inspiration and spirit of challenge. (저도 가까운 시일 내에 자서전을 쓰고 싶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많은 도전의식과 영감을 주었어요.)”
이언 서프는 그런 나의 이야기를 듣고 꾸준히 준비해야 하는
올림픽 선수의 일상처럼 작품을 쓰는 활동도 매일 꾸준히 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매일 책을 제작하는 또 다른 스필버그 감독이 되어 새로운 구상과 새로운 기획으로 설레는 나날을 보내었습니다.
교육과 심리 그리고 유학시장에 대해서 소비자들의 필요를 만족시켜주는 출판시장을 개척한다.
오랫동안 저의 관심사는 왜 누구는 성공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선택을 하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가? 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에 대한 답으로 상황과 환경에 의해서
그리고 자신의 수의적인 또는 불수의적인 의지에 의해서 형성된
마음의 프레임 즉 의식에 의해서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중간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형성된 마음의 틀을 바꿀 수 있는 방법으로
저는 개인이 또 다른 개인을 만나는 것보다 더 강력한 것을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위대한 통찰을 줄 수 있는 세상의 많은 지성들과의 접촉, 교류
그런 순간들은 사람의 의식에 혁명을 불러일으켰고
그런 의식혁명이 삶을 더 나은 차원으로 이끌어준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그랬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있어 그 의식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책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다양한 외서를 접하면서 접한 영감과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그리고 도전의식을 가슴속 깊이 새길 수 있었습니다.
한국 문학과도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적인 준비를 하다.
전 세계 40여 개국을 여행하고 유학하며 겪은 다양한 경험들과
10년이라는 학부 생활 동안 경험한 4대륙의 학교에서
경험한 마음의 데이터들이 하나의 목적에 의해서 정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이제 시작해야 한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출판사를 창업하기 위해서
저는 오랫동안 작가로서의 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저 숫자로 계산만 하는 경영가가 아니라 출판사의 꽃인 편집자,
작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출판사 대표가 되고 싶었습니다.
매일 글을 쓰고 그 글을 타인에게 나누고 그런 과정에서 피드백을 받으며 자신을 가다듬었습니다.
출판사 대표로서 누구보다 작가를 이해하는 대표가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숫자와 데이터만으로 경영하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소통하길 원했습니다.
작가와 제작자, 편집자와 유통, 마케팅, 기획 모든 파트의 속 속을 알고 있는 대표여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출판사에 들어가서 인턴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현업을 경험해보라고 충고해주었습니다.
저는 그 충고가 대단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지만
결혼을 빨리 한 저에게 아르바이트나 인턴쉽으로 나오는 경비로는
가정을 지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 제가 사회에 낼 수 있는 서비스 중 가장 값이 나가는 서비스인
피자 사업부를 지속하고 영어교육을 제공하면서 현실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되
지속적으로 출판사 창업을 위한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작가: 먼저 2013년 2월에 약 13명의 패널진을 모집하여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사람들은 열의에 차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이내 3달이 안되어 모두들 삶의 바쁨과 일상의 노곤함에 지쳐
글을 쓰는 횟수가 떨어지더니 다들 결국 한 권의 책을 내는 것을 포기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지방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며
다양한 출간을 돕는 저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는 제게 필요한 것이
작가 지원 프로그램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위해서
저는 하버드대학교에서 유학하는 동안 외국대학에서
Creative Writing(창의적 글쓰기)을 청강하면서
글쓰기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받은 결론은 글이 하나의 책이 되기 위해서는
글쓰기가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그 글이 긍정적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확신이 있을 때
지속적인 글쓰기가 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집필은 끈기를 요하는 마라톤이기 때문입니다.
글쓰기의 최고의 보상은 그 글이 출간되어 타인에게 읽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출판사를 세우고 싶었습니다.
교정, 교열, 윤문: 이 과정에 대한 개인적인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서
국어교사로 재직 중인 몇몇 친구들에게 제 글을 보내고
지속적이고도 간헐적인 허심탄회한 첨삭을 받았습니다.
빨갛게 도배된 글을 보고 있노라면 속도 상했지만
점차 그 빨간 벽지가 하얀 벽지로 바뀌어가는 기쁨은 매우 컸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편집자로서의 감각도 배워가게 되었습니다.
현재 대구경북 출판인쇄 전문인력양성과정에 참여하며 이 부분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제작: 책의 표지, 내지 디자인 등을 위해서는 다양한 감각이 필요했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도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맥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면서 퀵 익스프레스와
어도비사의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다루는 법을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유통, 물류: 이 부분은 책에서 이론으로 경험한 것보다
책 한 권을 실제로 배송시켜보고 창고에 입고하며 매일매일 발주를 하면서 알게 된 부분이 더 컸습니다.
모든 게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고 자신감도 가득 차 있었습니다.
힘든 출판시장에 뛰어들었는데 마음에서부터 주눅이 들 것이었다면
시작을 하지 말아야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자만하지는 않았습니다.
힘든 걸 알기에 긍정적으로 노력하는 자세를 잃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닌 열심히 노력하는 긍정의 자세
출판사를 창업한 2014년 겨울, 차 안에서 제게 보내는 편지로 메모했습니다.
2014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둔 23일 날 저는
대구 북구청에 출판사 신고증을 접수하고
3일 이후인 27일 날 사업자등록증을 신청하러 북대구 세무서에 들렀습니다.
추운 겨울날 제 손에는 워드스미스 출판사 사업자 등록증이 놓여있었습니다. 눈물이 아렸습니다.
마침내 작은 첫 번째 꿈을 이루다. 2014년 12월
세상에 나온 첫 번째 책 The Life Vol.2는
그렇게 2월 16일경 파주의 정진 물류사에 입고되어 거래처인
교보문고, 알라딘, YES24, 영풍문고로 배송되어 배치되었습니다.
대구 교보 점에서는 대구 작가 코너에 자랑스럽게 진열되었으며 청소년을 위한 교양 에세이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기 위해 비공식적인 책을 2권을 집필했고
그 과정에서 배우고 익힌 모든 바를 3번째 책이자
첫 공식 책인 The Life Vol.2로 집약하게 되었습니다.
이날을 위해 중학교 시절 3년 내내 학급일지를 썼고,
군에 있는 시절 2년을 부대 일지를 썼으며,
2008년 The Life Vol.1을 쓴 시점으로부터 매일 글 요정은 저를 새벽마다 잠을 깨웠나 봅니다.
참으로 감동이었습니다.
이 감동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출간의 기쁨이란
상자에 담아 선물로 주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늘어나는 독자 수만큼 늘어나는 책임감과 출판업에 대한 매력
2009년도 2월에 3명에게 읽힌 The Life Vol.1.
2012년도에 2월에 200명에게 읽힌 에소테리카 폴 프렌즈 쉽 서클.
(대구 대학생에게 배포됨, 출간 지원:한미친선 서클)
2015년 2월에 전국의 서점에 출간된 The Life Vol.2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며 순항하고 있습니다.
늘어나는 독자 수만큼 기쁨도 책임감도 늘어납니다.
저는 The Life Vol.2의 출간을 맞이하여 전국 50개의 도서관에 책을 기증하는 일을 시작했으며
대구의 약 9개교의 학생들을 위해 핸리 캠프 출간 스피치에서 100권의 책을 기부하였습니다.
첫 책의 판매 양과 책 리뷰를 보면 첫출발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독립출판사, 1인 출판사로서
저희는 제법 괜찮은 시작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심한 갈증을 느낍니다.
출판업 전반에 대한 더욱 깊이 있는 이해로
대구에서 한강을 벗 삼아 세계를 무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Stay hungry, Stay foolish의 자세로
정진하고자 하는 저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게 불타고 있습니다.
출판업의 미래가 어둡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스마트폰의 비상과 태블릿 피씨의 인기와 동반해 등장한 전자북 시장과
다양한 대체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독서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 몇몇 통계자료는 이야기합니다.
얼마 전 발표된 전국 대학생 도서관 사용 실태도 심각하게 이를 논증하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굳건히 출판업의 미래를 믿습니다. 그래서 출판업에 도전장을 내었고 제 젊음을 바칠 각오를 다지고 오랜 준비와 수없는 재다짐의 연속의 갈무리에 출판사를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대구에서 출판사를 경영한다는 것
사람들은 지방에서 제가 출판사를 창업한 것에 대해서 대단히 걱정을 많이 합니다.
정보와 휴먼네트워크(인맥구축)에서 오는 불리함이 출판업계의 트렌드를 따라가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해내기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들도 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지방에서 제가 출판사를 창업한 것은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저는 지역의 균형 발전이 국가가 가진 난제 중 하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방에서 출판 산업을 일으킬 수 있다면
지역인재의 수도권 과밀을 막고 출판 산업에서 나아가
관련된 인쇄, 유통, 물류, 마케팅 등과 그에 종사할 사람들에 대한 일자리 창출 등
부가적인 효과와 잠재성이 대단히 긍정적이라고 확신합니다.
뛰어나고 우수한 인재들이 더 도전함을 주저하지 않는 전도유망한 분야.
그런 분야로 다시 매김 해 더 많은 책과 양질의 콘텐츠가 생산되어 유통되고
나아가 국경을 넘어 수출된다면
국익에도 필히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는 그 날을 기다리지 않고 출판사 창업과
책의 출간 과정을 다소 유머스럽게 풀어낸 대구 촌놈의 좌충우돌 첫 책 출간기를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로 기사를 연재하였습니다. 총 23부의 연재가 되었습니다.
총 누적 조회수가 20만에 이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었습니다.
저희 출판사의 이야기는 꿈을 출간하는 출판사의 특성에 맞게 출판사 창업 3개월 만에
KBS의 메인 9시 뉴스와 아침 7시 뉴스를 장식했습니다. 대단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지금 준비하고 기획 중인 "나도 작가다" 프로그램은 2017년 중에 시작이 됩니다. 나도 작가다
프로그램이 이뤄질 콰이어트 타임 인 어 시티 카페의 플래그쉽 스토어가 개장했기 때문입니다.
이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책과 꿈이 출간되어 세상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영어 해외원서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시장은 포화.
하지만 한국어 서적을 해외로 보내는 시장은 이제 시작!
미국에서 크리스(Chris)라는 친구의 한국어 선생님으로
1년간 그 친구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었습니다.
크리스는 그 수업을 인연으로 한국에 와서
경북의 양산외국어고등학교 교사로 3년간 엮임 한 후
한국에서 결혼도 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아름다운 추억을 안고 미국 스탁빌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미국에서 민간 한국 홍보대사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를 미국인 친구에게 가르칠 때 저는 참으로 안타까운 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국의 우수하고 아름다운 많은 스토리와 콘텐츠가 생각보다
영어로 번역된 자료가 많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호주에서 유학하며 한국 미디어의 이해와
한영 통번역 과정을 수업을 들으면서도 또한 마찬가지로
해외 시장에서의 한국어-> 영어 번역 데이터베이스가 충분치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무료 대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나 유튜브의 짤막한 동영상이 아닌
한국의 고유의 멋과 지방적 특색을 잘 드러낸 많은 도서가 출간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해외에 한국을 알리고 한국스러운 미를 알리는 방법 중
하나가 미디어이고 그중 의미 있는 매체가 책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학계에서 쓰는 논문 형태의 글이 아닌
단행본 형태의 많은 책들이 영어로 번역되어 해외시장에서 유통되고
해외에서 소비가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면 충분히 출판 경기가 재 활성화되고
출판계의 싸이와 같은 그런 ‘대박’ 글로벌 작가 또한 배출이 가능하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 출판시장의 형태와 출간 프로세스를 명확히 파악해야 함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비를 들여 예일대 출판 리더십 과정에도 연수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대구의 청년 실업률이 전국 최고, 1위라고 합니다.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고 가치 있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출판하는 과정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속경영을 하고 싶습니다. 더디 갈 순 있겠지만 저와 워드스미스에 포기는 없습니다.
아래 11가지의 질문과 분석은 워드스미스 출판사가 앞으로 3년간 집중할 연구분야입니다.
1) 수출목적으로 기획 중인 대한민국의 지역 도시 소개 도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The Pursuit of beauty in Korea (부산, 대구, 경주, 전주, 제주도, 충주)를 홍보하고
출판 홍보 및 관광마케팅을 위한 휴먼네트워크를 구축합니다.
계약 체결 시 지방자치 단체 도청, 시청과 업무 협력을 하여 출판물을 제작,
유통 배포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에 한국을 알리는 도서를 공급함으로써 관광(travel) 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합니다.
2) 현업에 종사하면서 출판 언론 경험을 3년간 축적하고 지속적인 러닝 프로세스와 실무과정을
병행하여 국제화 출판 현황에 맞는 이슈와 현안들에 대한 해결책 모색 및 대한민국 출판업에 적용하기 위한 사례를 연구합니다.
집중하고 있는 연구파트
1) 고객 직접 판매 방식에 대한 전략:
서점과 총판 등의 유통을 통하지 않고서도 고객과 직접 거래를 할 수 있는 전략에 대해서 준비 중입니다.
2) 고객들이 구독 방식으로 책 내용을 부담 없이 열람할 수 있는 전략:
출판사에 독자들이 회원가입을 해서 일정 금액을 다달이 납부하게 되면
출판사의 정기적인 간행물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교보문고의 전자책 Sam 비즈니스 모델이나 아마존의 책 대여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위한 실질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합니다.
3) 전통적인 방식에서 탈피해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책 판매 방식에 대한 전략:
한국의 E-Book store인 교보문고, 리디북스 등의 온라인 전자북 시장 이외에도
애플의 itunes-ibooks나 아마존의 Playbook의 시장 진입을 분석합니다.
4) 아웃소싱(외주)을 줄 때 비용을 절감하면서 제작하는 법:
소형 출판사로서 저희는 설비나 특별한 전문성이 필요한 부분은 외주를 주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외국 출판업계에서는 외주(아웃소싱)할 시 주요 부분에 대한 비용절감을 어떻게 이뤄내는지 파악합니다.
5) 1인 출판사에 도움을 주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법:
한국에서는 최근 1인 출판사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글을 쓰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출판사 창업을 정보를 공유하며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성이 결여되어 창업을 하고도 책을 1종도 출간을 못하거나 사업자 등록증만 내고
사업을 영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부분에서 1인 출판사를 도우면서 윈-윈 하는 상생의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 분석하고자 합니다.
6) SNS와 Video(동영상)을 이용한 마케팅 전략:
서점 공급과 종이신문(일간지, 주간지)의 노출광 고만으로는
잠재고객에 어필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시기입니다.
대중들이 매일 이용하는 Social Network Service와 Youtube 등의
네트워크 매체를 통해서 마케팅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연구합니다.
7) 출판시장의 실질적인 경제상황:
한국 사람들은 출판시장이 불황이라고들 합니다.
실질적으로 세계 출판시장의 현 상황은 어떤지
수익성과 경제성 부분에서 구체적인 수치로 분석을 하고자 합니다.
8) 종이 서적물을 스마트기기에서 만족스러운 독서경험으로 변환시키는 법:
아마존의 kindle이 전문 E-book reader로 2007년 11월 19일 나올 당시 5시간 30분 만에 매진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아마존의 E-Book reader는 해마다 새로운 기기를 업데이트하며
미국의 전자책 시장을 선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 1월 27일 애플이 아이패드를 내어놓으면서 대중화된
태블릿과 이전에 나와 이미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아이폰의 여파로
itunes의 ibook시리즈도 이미 대중화되었습니다.
대형 메이저 신문사들도 종이 일간지, 주간지 발행부수를 대폭 줄이고
전자시장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교보문고가 Sam이라는
전자책 월정액 서비스를 내어놓았지만 아직까지는 콘텐츠의 부족과 대중의 인지도의 결핍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종이책은 전통적인 출간의 영역이었다고 한다면
앱북 등으로 대표되는 전자북 시장은 차기 시장으로 반드시 진입해야 하는 곳인데
저희 출판사는 지방에 있어 오히려 이런 전자 마켓의 활성화가 성장 가능성에
핵심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의 물리적 거리를 온라인상에서 극복하려는 저희에게
전자책을 더 완벽히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과 노하우에 대한 정보는 필수입니다.
또한 종이책과 전자책의 출간 시기 조율과 비율에 대해서도 분석을 통하여
이상적인 출판사의 전자시장 의존도 비율을 분석 하고자 합니다.
9) 국제화시대에 글로벌 시장에 출간하기:
한국 출판물이 번역되어 외국 시장에서 유통 거래 되기 위한 절차 및 필요 조건들을
살펴보고 도전시나리오를 작성할 것입니다.
10) 출판시장 변화에 따른 조직관리:
출판사 또한 전문적인 경영을 필요로 하는 조직입니다.
이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출판사에서 특히 집중하고 유념해야할 경영방법에 대해서 연구합니다.
11) 작가와 출판중계자 그리고 도서관과 서점의 관계변화에 대한 고찰:
전자책시장의 성장 등으로 시장의 상황이 급속도로 변해 전통적으로
지켜지던 작가와 출판사 그리고 서점의 관계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변화추이를 전문가들과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출판사들의 분석을 공유하여 향후 전략을 수립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