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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현호 Mar 12. 2020

우리 아이를 구해주세요

괜찮아 

2014년, 약 4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을 교육하고 관리하는 어학원의 원장으로 저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의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알게 된 한 학생의 극단적 사례를 알게 되고 난 이후였어요. 제 마음속에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깟 성적이 뭐길래?!" 한 아이의 삶을 비관속에서 끝낼 만큼 이것이 중요한 것이고 삶의 전부일까라는 생각이 저를 괴롭혀 왔습니다. 


H는 밝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싫은 말 한마디 못하는 선한 아이였죠.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는 법도 없었습니다. 학생들을 만나서 지도하다 보면 오히려 감정을 분출하고 화를 내는 아이들은 마음이 놓입니다. 세상을 향해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평소 늘 순종적이고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학생들은 지도하면서도 늘 조심스럽고 또 마음이 불안할 때도 있습니다. 마음속에 힘든 것들을 누구에게도 털어내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이니까요. 


성적비관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적지 않습니다. 교육부 자료를 살펴보면 한 해 평균 116명, 한 달에 10명 내외의 학생들 그중 70% 고교생 27% 내외의 중학생이 성적비관 및 가정불화 등의 이유로 목숨을 끊습니다. 극단적 선택에 이르러 결국 목숨을 잃는 경우가 이 정도이고 목숨을 가까스로 구하기는 하지만 자살시도와 미수에 그친 사례와 알려지지 않은 잠재적 불안까지 가중한다면 그 숫자는 결코 무시할 만한 양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성적이 그저 숫자에 불과할 수 있지만 자신이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고 지나친 관심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바닥난 자존감과 자신감에 의해서 감정적 한계를 넘게 되면 정서적 지지기반이 약하고 회복탄력성이 부족한 학생은 극단적 선택으로 치닫게 될 수 있습니다. 


2014년 여름 하버드대학에서 수강할 때 썼던 학생의 자살에 대한 리포트


저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오랜 시간 고민을 했습니다. 


성적이 비관이라면 -> 성적을 올려주는 게 가장 좋은 솔루션일까?

가정불화라면 -> 가정이 화목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좋은 솔루션 일까?


질문은 꼬리를 물고 제 마음속을 휘저었습니다. 성적비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들이 모두 성적이 나빴던 것은 아닙니다. 성적이 절대적으로 우수했지만 자신의 상대적인 만족감에서 뒤떨어져 있거나 지나친 불안과 압박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부분이 강했습니다. 점수가 몇 점 오른다고 해서 그 불안감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즉 성적을 올려주는 솔루션이 근본 해결책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가정의 불화는 청소년에게 아주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아직 미성년의 청소년의 삶은 성인인 부모가 이끌어가는 가정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정서적 민감 위치에 있습니다. 부모의 정서와 가정의 문화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이러한 구조속에서 가정의 지속적 불화와 상처를 반복적으로 주는 상황에서는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계속해서 "정신적 살해"를 당하는 것과 같은 정서적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인문학은 우리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보여줍니다



(1) 중학생과 고등학생에게 인문학이 중요한 이유 


삶의 의미에 대해서 우리는 함께 생각해봐야 합니다. 단어 공부 몇 시간,  수학공식 몇 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서, 살아있음에 대해서, 행복함에 대해서 비록 이러한 주제들이 성인들도 다루기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라 하더라도 정서적으로 취약하고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사회인으로 정서적 안정감을 갖추며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고민과 탐색이 필요합니다. 정서적으로 튼튼한 안전망을 갖추기 위해서 우리에게 인문학과 예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노숙자들의 삶을 바꾼 그리고 시카고대학에서 폭발적으로 그 효과성을 전 세계에 입증한 인문학 교육이 우리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입시 기술과 전략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인간성이 상실되는 어려움속에서 불특정 다수에 의해 무방비 비난과 자극에 노출되는 청소년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삶의 자양분이기도 하죠. 마주치는 다양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길러주는 인문학 교육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인문학의 효과 / 출처: clement course.org


삶의 다양한 순간에 우리가 선택을 내려야만 할 때 참고할 기준과 논거를 제시해주는 다양한 간접 사례가 인문학의 큰 갈래인 역사 속에서, 철학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살아가고 있고, 어떤 삶을 살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게 하고 함께 생각해보는 것, 반드시 청소년 시기에 병행되어야 할 커리큘럼입니다. 


(2) 가정의 불화에 대처하는 청소년의 자세 


자극과 반응 사이에 우리의 선택이 존재함 / 빅토르 프랑클: 아우슈비츠 수용소

날마다 싸우는 부모님, 경제적으로 늘 궁핍한 가정, 환영받지 못하고 늘 눈치만 봐야 하는 집안 분위기, 마음 둘 곳 없어 결국 학교 밖, 집 밖을 맴돌게 되는 우리 위기 청소년들은 어떤 마음의 방어벽이 필요할까요? 


얼마 전 모 복지재단의 강의장에서 만난 청년이 떠오릅니다. 그 청년은 청소년기부터 아버지와 단둘이 지내고 있었는데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오랜 시간 학대를 당해야 했습니다. 그 트라우마는 성인이 된 지금도 마음속에 선명히 자리 잡아 남아 있었고 세상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아주 방어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청소년기의 지속적인 가정에서의 폭력과 학대가 청년의 삶을 송두리째 집어삼킨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그 청년은 제게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했습니다. 이런 극단적 형태의 청소년 학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바빠 아이와 소통할 시간이 전혀 없어 아이가 늘 무관심 속에 놓여있다고 놓여 있는 것, 아이의 마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성적만 잘 받아 대학만 잘 가면 괜찮다는 부모님들도 현장에서는 놀랍게도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은 아이들에게 많은 상처가 새겨지고 있다는 것을 모른채 말이에요. 때로는 무던해서 때로는 너무 바빠 겨를이 없어서 가장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은 돌볼 여유가 없는 거죠. 


지속된 가정 불화로 청소년이 마음의 문을 닫으면 비행청소년이 되거나 학업부진을 통해 학교 밖으로 벗어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현장에서 청소년들을 만나면 저는 항상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너라는 인식을 나눕니다. 미성년자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을 통제받고 있다고 느껴지지만 사실은 보호받고 있는 것일 뿐 그 보호라는 것도 성인이 되는 몇 해 후부터는 모두 사라질 것이고 온전히 네가 선택한 대로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친구들은 제 이야기를 듣고 왜 보호가 아닌 통제를 받고 있다고 자신이 느끼는지 긴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저는 진로 탐색과 입시 준비의 과정이 아이들에게 하나의 몰입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희망이 없고 절망만 가득한 청소년들은 이러한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왜곡된 프레임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준비를 시작하면 지금 뿌려진 씨앗이 그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미래를 바꿔나가게 됩니다. 작은 성공의 경험, 작은 성취를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한 이유입니다.


언어를 바꾸고 

생각을 바꾸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생각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좋은 생각과 에너지를 나누는 것, 교육이 해야 할 일입니다. 교육자는 그래서 좋은 생각과 에너지로 자신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 어떤 형태로 우리가 우리의 삶을 마감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살아가는 매 순간이 행복함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직 꽃 피우지 못한 청소년들의 삶이 그 어떤 이유로든 스스로 저무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최전선에서 따뜻한 볕과 물을 뿌리는 일을 오늘도 이어가야 합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해내야만 하는 일이죠. 교육이 가진 가능성을 그리고 그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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