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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공간을 바꿔야 하는 이유

몸으로 배운 것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한때 잠시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때가 있었다. 창문이 없는 방은 5만 원 정도 더 저렴했다. 고민 끝에 조금의 사치를 한 것이 노트만 한 크기의 작은 창이 있는 방이었다. 그 후로도 조금이라도 아낀다고 창문이 아예 없는 방에서 지낸 적도 있었는데, 어둠의 끝을 발견했다. 자려고 불을 끄면 정말 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방으로 변한다. 지옥이란 이런 느낌일까 할 정도로 고요하고 어둡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작은 빛이 그렇게 밝은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시원에는 고시생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들이 많았고, 40~50대가 대부분이다. 사실상 주거형 공간이다. 밤에 다들 일을 마치고 들어오면 옆 방의 작은 소리도 들리기도 하는데, TV 소리에서 나오는 방청객들의 야유 소리와 웃음소리가 당시는 그렇게 싫었다. 그 이후로 나는 TV를 보지 않는다. 주인아저씨는 밥통에 밥을 해놓으셔서 반찬만 있으면 공용 냉장고에 보관하며 끼니를 때울 수도 있었다. 간혹 주방에 가서 밥통을 열어보면 오래된 듯한 누렇고 굳은 밥이 소량 남아있을 때도 많았다. 냉장고를 열면 노란 전구 빛에 이름이 쓰여 있는 반찬통, 봉지들이 자기들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난 방구석에서 햇반을 먹으며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다.     


그 시절 이 사회는 뒤처지거나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을 위한 안전망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나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았고, 그냥 남들보다 조금 느린 정도로 치부했지만 사회는 느리면 뒤처진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청소년기에는 늘 사회에 대한 불만과 투정으로 살았던 난 입에 욕을 달고 살았다.      


“어느 날 그 고시원 방구석에서 깨달은 점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불만과 분노는 절대 현실을 고쳐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며 공부를 열심히 했다던가, 장래를 위한 노력을 조금이라도 했을 테지만 그래도 하루라도 이르게 깨달은 점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고시원을 나오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작은 자취방을 구하고,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에는 장학금을 받고, 스위스 로잔으로 교환학생 갈 기회를 얻었다. 그곳에서 내가 머물던 곳은 작은 방이 다섯 개가 있는 원형 모양의 기숙사 건물이다. 프랑스, 포르투갈, 캐나다 등 다양한 국가에서 남녀가 섞여 지내는 신개념 공간이었다. 방안에는 침대와 책상뿐이었지만 책상 앞에는 내 키만 한 긴 창이 있었다. 처음으로 갖는 큰 창문이었다.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대형 창문. 들어오는 빛만큼 나는 상상할 수 있었다.     



그 마법 같은 창문 너머로 나는 새로운 세상과 만났다. 영롱하고, 신기한 광경을 매일 아침 마주했다. 집 건너편에는 레만 호수가 있었고, 그 호수를 넘으면 프랑스 알프스가 펼쳐졌다. 산 정상에는 눈이 덮여 있을 정도로 높았다. 빗방울이 창문에 미끄러져 내려가는 모습도, 한 달에 한 번씩 정원사가 제초 작업을 하는 광경도 모든 장면이 다 아름다웠다.      

놀라운 점은 공간이 바뀌니 생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창이 예쁘니 책상에 더 자주 오래 앉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평소에 쓰지 않던 글도 써보고, 읽지 않는 책도 읽어보고, 처음 가보는 웹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뇌 속 어딘가에서 생각만 하고 있던 것들이 ‘팡‘하고 터지며 행동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해 나는 세계 일주를 꿈꾸며 후원 제안서를 만들기 시작했고, 마침내 한 여행사로부터 후원을 받아 80일간의 

유럽 일주에 성공했다. 처음으로 마라톤 대회에 신청하였고, 두 발로 40km를 뛰었다.      


공간이 바뀌면 자연스레 생각의 폭이 달라진다. 끊임없이 새로운 장소에 던지고, 적응하기 위해 온 세포를 사용하다 보면 그때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아무렇게나 살면 결국 아무렇게나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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