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 나의 '감정 버튼' 지도 그리기

반복되는 감정의 패턴, 그 스위치는 어디에 있을까?

by 이지현

평온하던 당신의 마음에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동료의 특정 말투 하나에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불안에 휩싸이고, 파트너의 무심한 행동 하나에 걷잡을 수 없는 서운함과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머리로는 '이럴 일이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감정은 제멋대로 폭주하여 결국 당신을 지치게 만듭니다. 그리고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 우리는 어김없이 자책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 격렬한 감정 반응을 없애야 할 '문제'나 '결점'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이 감정들은 결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가장 깊은 내면에 숨겨진 보물, 즉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처나 채워지지 않은 중요한 욕구를 가리키는 가장 정직한 나침반입니다. 당신의 감정 버튼이 눌렸을 때의 그 격렬한 아픔은, "바로 여기야! 이곳을 돌봐줘!"라고 외치는 내면 아이의 절박한 목소리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이 나침반을 부수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바늘이 가리키는 곳을 용기 있게 따라가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은 종종 안개처럼 모호하고, 때로는 너무 고통스러워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이때, '향기'는 우리의 무의식이라는 낯선 지형을 탐험하는 가장 안전하고 지혜로운 안내자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향기를 감정을 '진정시키는' 도구로 사용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향기를 '이해하는' 도구로 활용해 보고자 합니다.




'감정 버튼'의 정체: 왜 나는 그 말에 유독 흔들리는가?

과거의 기억이 현재를 지배하는 법

'감정 버튼'은 우리의 뇌에 깊이 새겨진 '자동 반응 회로'입니다. 과거에 강렬한 감정을 동반했던 경험(특히, 위협적이거나 고통스러웠던 경험)은, 뇌의 기억 저장고인 해마(Hippocampus)와 감정의 경보 시스템인 편도체(Amygdala)에 하나의 세트로 저장됩니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이 과거의 그 경험과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유사점(예: 비슷한 목소리 톤, 특정 단어, 장소의 분위기)을 보이면, 우리의 뇌는 현재와 과거를 구분하지 못하고 "위험!" 신호를 보내며 과거의 감정과 신체 반응을 그대로 재현해 버립니다. 이 과정은 이성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을 거치기 전에, 거의 빛의 속도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채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게 되는 것입니다.


초민감자의 민감한 안테나: 더 많은 버튼, 더 강한 반응

초민감자(HSP)가 유독 더 많고 민감한 '감정 버튼'을 가지게 되는 데에는 기질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깊은 정보 처리(Depth of Processing)' 특성으로 인해, 우리는 모든 경험을 더 많은 감정적, 감각적 디테일과 함께 저장합니다. 이는 과거의 기억이 더 생생하고 강렬하게 남아, 현재를 자극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높은 감정 반응성(Emotional Reactivity)'으로 인해, 한번 버튼이 눌렸을 때의 감정적 폭발력이 비초민감자보다 훨씬 더 큽니다. 셋째, '미묘함 감지(Sensing the Subtle)' 능력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아주 사소한 단서(상대방의 미세한 표정 변화 등)에도 우리의 감정 버튼은 쉽게 눌릴 수 있습니다.


채워지지 않은 그 시절의 결핍

우리의 가장 강력한 감정 버튼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채워지지 않은 중요한 심리적 욕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자신의 감정을 무시당했던 경험이 많은 사람은, 현재의 대화에서 자신의 의견이 가볍게 여겨지는 듯한 뉘앙스만 느껴져도 극심한 분노와 무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 과거에 존중받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지르는 비명에 가깝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트리거는 종종 '안전', '인정', '사랑', '존중', '자율성'과 같은, 어린 시절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던 보편적인 욕구의 결핍을 가리키는 중요한 신호등입니다.




향기는 어떻게 감정의 단서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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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 기억의 서랍을 여는 가장 빠른 열쇠

특정 향기를 맡는 순간,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 아주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프루스트 현상'은, 후각이 뇌의 기억 및 감정 중추와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감정 버튼이 눌렸을 때, 우리는 종종 현재의 감정에만 압도되어 그 뿌리가 되는 과거의 기억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특정 향기는 우리의 논리적인 방어기제를 우회하여, 굳게 닫혀 있던 기억의 서랍을 부드럽게 열어주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향기로 마음을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문득 어린 시절의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감정 버튼의 기원과 연결된 중요한 단서일 수 있습니다.


향기의 '선택'이 말해주는 것: 내 마음의 결핍 신호

감정적으로 힘든 순간,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갈망하고 선택하는 향기는, 지금 나의 신경계가 무엇을 가장 필요로 하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 몸이 특정 영양소가 부족할 때 특정 음식이 당기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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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아로마테라피스트 이지현입니다. 법학과와 스포츠의학을 전공한 뒤, 현재는 국제 아로마테라피스트로 활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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